여자 화장실이 왜.
얼마 전까지 내가 담당했던 업무는 매년 연말이나 새해 연초만 되면 기간 내 처리해야 할 업무의 양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늘어났었다.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정부 세종청사 각 부처나 공공기관 등에 그 결과를 통보해야 되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을 해야만 한다.
담당 업무 성격상 여러 제약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법률적인 책임까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퇴근한 후 조용한 가운데 보고서를 검토하곤 했었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직원들은 자기네들도 담당 업무가 따로 있고 내 업무의 성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퇴근 후라도 휴식을 권했다.
< 내가 '일벌레'도 그렇다고 '일중독'인 환자도 아닌데 왜 일찍 퇴근하고 싶지 않겠는가! >
그러나 상대 기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받기 원한다.
지난 1월 초도 담당업무 이관도 있었지만 처리해야 할 보고서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걸 못 보는 소심함 때문에 기일 내 담당 업무를 끝내기 위해서는 야간 근무를 해야만 했다.
손으로 남자 화장실을 가리켜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허둥대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화장실로 들어갈 생각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내 딴에는 친절하게 안내를 해드린다고 했던 게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기분을 불편하게 한 거 같았다.
<뒷간이 다 같은 거지. 경찰서라 그런가? 여기는 따로 쓰나 보네 그려. 우리 집은 말여. 할망구 하고 같이 쓰거든.>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에서 가족끼리 사용하는데 남녀를 구분해 따로 쓴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할아버지께는 죄송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웃음이 터졌다. 내가 복도가 떠나갈 듯 웃자 할아버지도 멋쩍으셨는지 웃으시며 남자 화장실 안으로 사라지셨다.
화장실 앞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시길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사무실로 올라왔다. 참 나도 어쩔 수 없는 가보다.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창가로 달려가 경찰서 마당을 내려다봤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밖으로 잘 나가시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잠시 후 허리춤을 만지작 거리며 정문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혼자 다니시는 게 맘에 걸렸지만 그래도 화장실을 찾아 경찰서로 들어오실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할아버지가 경찰서에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생각이 났다. 일에 쫓겨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나에게 그날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은 웃음뿐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나, '세대 간 시각(視角)의 차이'에 대하여 한번 더 생각할 여유까지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동안 내가 '공무원'이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표정이 어두웠었다. 그들은 내가 '꽉 막힌 사람' '규정만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나 보다. 스치듯 짧은 한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인해 나는 오늘도 그 차이를 좁혀 보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