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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May 07. 2019

꿈속의 연인

2. 바람이 분다.

그는 인천 공항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으로 인해 눈을 떴다. 창 밖을 쳐다봤다.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며 구름 너머로 붉은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래를 쳐다보니 길게 뻗어 있는 공항 활주로의 백색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픽사 베이 - 여행. 비행기. 지평선


긴 비행에서 오는 후유증으로 귓속이 먹먹하고 관절마다 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창밖으로 비행기가 활주로로 진입하는 게 보였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렸다. 빠른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청사를 빠져나왔다. 가슴을 펴고 아침 공기를 크게 들여 마신 후 정차 중인 택시에 올랐다.

"서울 한남동이요."

택시 기사는 뒤에 앉은 그를 백미러로 힐끔 쳐다봤다.  

"오래간만에 들어오셨죠? 뒷좌석도 안전벨트를 하셔야 합니다."

그는 안전벨트를 잡아당기며 들뜬 목소리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5년 만입니다."

택시가 출발하자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됐다. 그는 창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어오는 거처럼 설렘으로 가득했다. 점점 낯익은 거리에 가까워지자 가족들을 만날 마음에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한남동입니다."

"저기 '파스텔' 앞에 세워 주세요."

"알겠습니다."

 택시가 정차하자 그는 빅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파스텔'이란 간판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입구에 정기휴일이라고 붙인 안내문을 확인하고는 아쉬워하며 그곳을 지나 골목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가 유일하게 편안히 숨 쉴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대학 선배였던 용하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용하 또한 형의 49제 기간이 지나자 '파스텔'을 운영하겠다며 잘 다니던 대학까지 자퇴하였다. 그리고 늘 그의 곁에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며 그의 친구와 든든한 형이 돼주었다. 그는 그런 용하에 대하여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 앞에는 꽤 비싸 보이는 노송의 나뭇가지가  낮은 담장에 반쯤 걸쳐져 있었다. 그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저택의 인터폰을 눌렀다. 인터폰을 통해 톡톡 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인터폰 속의 여성을 불렀다. 인터폰 속의 가야는 그가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대문을 열어주었다. 가야는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그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진입로를 지나 가야가 기다리고 있는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를 향해 뛰어오는 가야를 보고 두 팔을 벌려 가야를 품에 안으며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뒤따라 나온 윤 회장과 그의 부인 민 여사가 흐뭇한 얼굴로 오누이의 반가운 재회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가야의 손을 잡고 윤 회장과 민 여사 앞으로 걸어갔다. 윤 회장은 그에게로 걸어오더니 그를 안았다. 어른스럽고 단단해진 아들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아버지! 저 돌아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민 여사 역시 그를 안으며 그의 등을 토닥토닥거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볼을 어루만졌다.

"우리 아들! 고생 많았지?"

윤 회장은 바닥에 놓인 그의 빅팩을 들고 민 여사의 팔을 잡아당겼다.

"여보! 일우 피곤할 텐데 안으로 들어가 얘기합시다."

"내 정신 좀 봐."


픽사 베이 - 거실. 주방


민 여사는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오래간만에 거실에 마주 앉은 윤 회장과 그의 가족들에게서는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윤 회장이 민 여사와 가야를 바라봤다.

"아침 준비는 다 되었소?"

"깜빡했네. 식사 준비 좀 도와주겠니?"

민 여사는 가야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컨디션은 어떠세요? 김 박사님께서는 미국 지사 신사옥 오픈 행사 참석은 걱정 없다고 하시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우야! 미래전략기획본부장으로 발령 날 테니 준비해라."

"네. 알겠습니다."

"일우야! 너는 단계를 밟으면서 네 능력을 인정받고 싶겠지만 시간 끌 거 없다. 들어와서도 얼마든지 너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으니 일단 들어와라. "

"네. 아버지 실망하시는 일 없도록 잘하겠습니다."

"고맙다. 일우야!"


가야가 앞치마를 두른 채 거실로 나왔다.   

"아빠! 업무 얘기는 회사에서 나누고 집에서는 식사부터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 알았다. 이래서 아빠가 매일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는다. 하하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야의 뒤를 따랐다. 윤 회장은 오랜만에 듣는 가야의 비음 섞인 말투에 환하게 웃으며 식당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는 민 여사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머니!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집에 온 게 실감이 나네요.”

민 여사는 그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니까 미리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이렇게 도깨비처럼 나타나 놀라게 하지 말고.”

“하하하. 어머니 제 원망은 그만 하시고 집안일 도와줄 분을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랑 여행도 다니고 그러시죠.”

“오빠! 엄마 아빠 옆에 있을 생각 말고 빨리 결혼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방법이 최선일 거 같은데. 미국에서 연애도 안 하고 일만 한 건 아니지? 이번에는 정말 오빠가 잘못한 거야. 5년 만에 돌아오면서 전화 한 통 없이 온 것은... 부모형제 없는 고아도 아니고 말이야.”

“오빠가 잘못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그는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윤 회장은 궁지에 몰린 그를 쳐다보며 민 여사와 가야에게 말했다.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왔음 된 거 아니오. 당신도 그만해요. 가야 너도 오빠 그만 놀리고. 오빠 온다고 우리가 공항에 나가 봐라. 기자들이니 이사들이니 주변이 시끄러워. 회사에서도 일우가 내 아들인 거 이사진 몇 명밖에 모른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집에서 먹는 밥 편하게 먹도록 해줍시다.”

민 여사는 ‘누가 그걸 모르냐’는 듯 윤 회장을 살짝 흘겨보며 수저를 들었다.  

“어머니! 정말 맛있어요.”

그가 민 여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앞으로 시간도 많으니 얘기는 천천히 나누자. 그런데 오피스텔은 어떻게 할래! 회사로 들어오면 계속 오피스텔에 있을 수도 없고, 2층은 새로 고쳤다. 식사하고 올라가 봐라.”

“네. 어머니! 오피스텔은 상황 봐가면서 결정할게요.”

그는 식당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오피스텔로 나가기 전까지 사용하던 곳이었다. 한쪽에 빅팩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오랫동안 주인 없는 방이었는데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침대 시트도 세탁한 지 얼마 안 되었나 코튼 향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계속 몸을 뒤척였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1층 거실로 내려갔다. 민 여사와 가야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민 여사는 그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피곤할 텐데 쉬지. 왜 내려오니?"

"몸은 피곤한데 집에 와서 그런지 머리는 더 맑아지네요."

민 여사는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큰일이구나. 한동안 고생할 텐데."

"걱정 마세요. 어머니! 바쁘게 일하다 보면 금방 적응될 테니. 아버지는 서재에 계신가요?"

"음. 태진 패션 민 대표랑 얘기 중이시다."

"네. 제가 들어갈게요."

그는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노크하자 안에서 문이 열리며 민 대표가 나왔다. 그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일우야! 오래간만에 얼굴 보는구나. 언제 들어왔니?"

"아침에 도착했어요. 숙모도 안녕하시죠?"

"그럼. 그리고 일우 네가 기획했던 크리스마스이브 뉴욕 in 태진 패션쇼는 대성공이었어. 그 덕분에 미국 지사 신사옥 오픈 때 태진 패션 쇼핑몰도 개장하게 되었다."

"계약 성공하신 거 축하드려요. 삼촌"

"고맙다."

민 대표가 현관으로 향하자 민 여사가 민 대표의 팔을 잡았다.

"민 대표! 그냥 가려고? 얘도 왔는데 같이 식사하고 가지 그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공항으로 가야 해서요. 집사람 오늘 들어오거든요."

"그럼. 뉴욕 출장 가기 전에 올케랑 같이 와서 저녁 먹고 가."

"알았어요. 누나!"

민 대표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윤 회장이 서재에서 거실로 나왔다.

"민 대표! 잠깐만 기다려 보게."     

"네."

"일우야!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갔다 오라고 해서 좀 그런데, 민 대표랑 뉴욕에 갔다 오면 안 되겠니? 일우 네가 간다면 민 대표도 맘 편히 다녀올 수 있고."

그는 윤 회장의 제안에 민 대표를 쳐다봤다.

"삼촌이 괜찮으시다면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일우야! 그래 주겠니? 삼촌은 네가 동행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 뉴욕에서 있었으니 너한테 도움받을 일도 많을 테고. 시간이 없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려고 해."

"네. 보고서 보내주심 확인하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알고 간다. 통화하자."

"네."

민 대표는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거린 후 밖으로 나갔다. 그는 민 대표 차가 보이지 않자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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