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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May 02. 2019

날궂이 하다.

잔상(殘像)

국어사전에 '날궂이'는 명사(名辭)이며 <날+궂+이>라고 쓰여 있다. '날'은 날씨를 말하며 '궂'은 궂다, 즉 나쁘다를 말한다. 우리 민속 중에 '날궂이 의례'가 있는데 비가 오기를 바라는 의례를 의미한다. 맑은 하늘에 날궂이를 해 비가 오기를 간절히 구하듯 '멀쩡한 상황에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pixabay - 비 오는 녹색 잔디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여자 학교로 미션스쿨(mission school)이었다. 어릴 적에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과자도 주고 선물도 준다는 말에 옆집 사는 언니를 따라 교회에 몇 번 출석한 게 다였는데 매주 예배시간을 갖게 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40분 사이였다. 버스를 타기에는 살던 집의 위치가 애매해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 게 편했다. 다니던 학교는 언덕 위에 있었다. 교문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넓은 운동장과 스탠드가 보였다.


기둥을 타고 바닥까지 늘어진 등나무는 보라색 꽃이 피었으며 뱀처럼 생긴 열매가 열리면 짓궂은 학생들은 열매 끝에 사인펜으로 뱀을 그려 친구들에게 던져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시원한 그늘 때문인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체력단련장이 되기도 하였다. 학교 담 밑 산책로에는 넝쿨장미가 아치형 터널을 만들어 점심시간마다 산책을 하는 여학생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오락시간이면 제일 먼저 앞으로 뛰어나올 정도로 성격이 활달한 편이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되어서인지 선생님들 사이에서나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로 불려졌다.   


지금처럼 그 시절의 학생들도 영화배우나 대학가요제 출신 젊은 가수들을 좋아해 팬레터를 보내기도 하였다. 콘서트장에 달려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한 달에 한 번만 판매되는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사기 위해 문구점 앞에서 줄을 서기도 하였다.  


책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던 나는 문예창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기가 바뀌면서 총각 체육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후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가야 되나 고민할 정도로 체육선생님의 인기는 탑(Top)이었다. 이 체육선생님 때문에 친구가 없던 나에게도 절친(切親)이 생겼다.  





-   pixabay -  귀여운 소녀들 행복한 포옹     -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나의 절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지만 내게로 걸어오더니 < 오늘도 집에 걸어서 갈 거지? 같이 가자.>라고 하더니 내 대답은 듣기도 전에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자기 자리로 휑하니 돌아갔다.


마지막 수업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한두 시쯤이면 수업이 다 끝나기 때문에 그 날은 어느 때보다도 맑고 투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있니? 아까부터 왜 그래. > 물었지만 그 친구는 나중에 말한다며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물을 수 없어 우리는 교문을 빠져나왔다.


한 5분쯤 흘렀을까 하늘은 맑고 햇빛도 그대로인데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됐다. 피할 새도 없이 비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걸으며 '호랑이가 장가 가나보다' '여우가 시집가나 봐'라고 했지만 교복은 비에 젖어 점점 무거워졌다. 오는 비 때문인지 친구의 얼굴도 편안해 보였다. 참 다행이었다.


<다 젖었는데 그냥 가자.>

우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머리에서는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고 교복의 하얀 카라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우리는 한참 유행하던 가수 금과 은의 '빗속을 둘이서'란 노래를 부르며 걷기 시작했다.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러운 너와 내가 손 잡고...


앗. 학교와 집 사이 중간지점에 남자 중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한 손에는 책가방을 또 한 손에는 신고 있던 단화를 들고 흥얼거리며 걸었다. 우르르 교문을 나오던 남학생들이 휘파람을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난 친구 덕분에 그 빗속에서도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를 기다리다 못해 우리 자신이 제물인 양 '기우제'를 드렸다. 다른 이가 볼 때는 분명 '날궃이'었겠지만. 그 비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결속은 더욱 강해졌고 졸업해서도 한동안 연락을 하며 지냈지만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알 길이 없다.


비도 오지 않는데 오늘따라 친구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 현명한 친구는 보물처럼 다루어라.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의보다

   한 사람의 친구로부터 받는 이해심이 더욱 유익하다.

                                                                  -   그라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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