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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Nov 18. 2021

성냥불이 켜지면.

마법의 시간이 시작된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어요.

소녀가 잠든 사이 하늘나라에 계신 소녀의 엄마 아빠는 의지할 곳 없는 소녀가 안쓰러워 눈물을 흘렸어요. 그 눈물이 하얗게 변해 소녀 곁에 머물게 되었어요.


소녀는 이 비밀을 모른 채 성냥을 팔아 돈을 가져오라는 새아빠의 말에 이른 새벽이지만 거리로 나왔답니다.

그러나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냥을 팔아줄 사람을 찾아 헤매다 신고 나온 슬리퍼까지 잃어버려 이제는 맨발로 걷고 있었어요.

<성냥 사세요.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성냥이에요.>

소녀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힐끔 소녀를 바라볼 뿐 누구도 사줄 사람도 그리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녀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소녀의 성냥을 사줄 따뜻한 맘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이 아침 햇살이 소녀를 찾아왔습니다. 얄밉게도 눈이 녹으며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소녀의 옷에 튀어 여기저기 흙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거리를 헤매었는지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도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배도 고프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맘은 굴뚝같았지만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여졌습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갔다가는 소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새아빠의 매와 심한 욕설이었기 때문이었죠.


소녀는 다시 걸었습니다. 거리 상점마다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소녀가 있는 이 거리와는 다르게 밝고 따뜻해 보였으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빠만 살아계셨어도 나도 지금 저곳에 있었을 텐데.>라고. 소녀는 엄마 아빠가 그립기도 했지만 밉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려 노력했습니다. 소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거리를 걸었습니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거리에 내려앉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소녀는 한참을 걷다가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차갑고 꽁꽁 얼어버린 벽에 지친 몸을 기대었습니다.  


소녀는 손이 시려 손가락을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성냥 하나를 꺼내 벽에 그었습니다. 불이 붙는 가 싶었지만 얄궂은 겨울바람이 불꽃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가 다시 성냥을 꺼내 벽에 긋자 불이 붙으며 주변이 밝아졌습니다.

소녀는 조금 전 상점에서 본 드레스보다 고운 드레스를 입고 잘 구운 거위 고기와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먹음직한 예쁜 과일들이 차려져 있는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건너편에는 한 소녀가 울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쳐다보니 바로 그 소녀 자신이었습니다. 그 소녀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반갑기도 했지만 그 소녀의 힘든 생활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녀는 다가가 그 소녀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 조금만 힘을 내자. 어린 너로서는 이 세상이 무섭고 고달프겠지만 희망을 갖고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행복한 시간이 올 거야. 너 자신을 믿어봐. 너에겐 그런 힘이 있단다.>

소녀는 어쩌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엄마 아빠 외에는 그 누구도 이런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소녀는 그 소녀의 미소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소녀가 고개를 드는 순간 성냥불이 바람에 휘리릭 꺼지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굳어가는 몸을 녹이려 다시 성냥 하나를 켰습니다. 작은 성냥개비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주위가 환해지며 보고 싶은 그 소녀는 보이지 않고 하얀 장미, 분홍 장미, 붉은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는 장미 정원에 서있었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린 카펫이 깔린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가자 화려한 옷들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너무 늦게 도착하셨어요.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답니다. 드레스로 갈아입으시죠.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녀는 엄마 아빠를 보고 싶은 맘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지만 그곳에는 예쁜 장미꽃들도 음악도 그 많은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와 깜깜한 거리를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의 짝을 찾는 울부짖음만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소녀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성냥 묶음 하나를 꺼내 불을 밝혔습니다. 조금 전보다 더 밝아지며 그리운 엄마 아빠, 그리고 소녀를 너무나 사랑했던 할머니와 하얀 날개옷을 입은 사람들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지개처럼 오색빛이 가득한 너무도 멋있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소녀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으며 웃었습니다. 그 미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편안한 미소였습니다.  


날이 밝아오며 거리에도 그녀가 기대어 있는 차가운 벽에도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녀를 찾아왔습니다. 맨발로 거리를 헤매며 성냥을 사주길 원했을 때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지만 추운 겨울밤을 거리에서 보낸 소녀를 생각하며 누군가는 슬퍼했을 겁니다.


거리를 헤맬 때 소녀 곁을 스쳐갔을 어느 부인이 말했습니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나 봐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네요.>

소녀 주변에는 성냥들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는 반쯤 타다 꺼진 성냥 묶음이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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