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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Jul 20. 2021

불꽃 천사.

성냥팔이 소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어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멀리서 한 소녀가 눈이 내리는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 유니였다. 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는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덮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유니가 걸친 옷은 낡고 허름했다. 여기저기 헤져 찬바람이 해진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여린 살갗을 벌겋게 얼리고 있었다. 유니는 맨발로 차가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집에서 나왔을 때는 엄마의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만 마차를 피하려다 벗겨지며 잃어버리고 말았다. 눈이 쌓인 거리를 그냥 걷는 것도 힘든데 가녀린 어깨에는 성냥이 들어있는 자루가 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유니는 처음부터 성냥팔이 소녀가 아니었다. 유니 아빠는 유니가 태어나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며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유니 아빠는 어느 날부터 병명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 두 사람 곁을 떠났다. 모든 걸 남편에게 의지했던 유니 엄마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견디다 한 동네 사는 여자의 꾐에 넘어가 욕심 많은 젊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처음에는 유니를 친딸 같이 아끼며 사랑해 주는 것 같았으나 유니 아빠가 남겨준 재산이 얼마 남지 않자 갖은 욕설과 손찌검을 하며 집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새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마저 유니만을 남겨둔 채 유니 아빠 곁으로 떠나고 말았다.  


어린 유니 혼자만 남자 유니 엄마의 소식을 들은 새아빠가 자루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속에는 성냥이 가득했다. 새아빠는 유니에게 자루를 던지며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너를 보호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다는 거 알지?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 그렇지 않음 밥도 없고 이 집에서도 살 수 없을 테니까. 알겠지?>

유니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

<내일 아침부터 거리에 나가 이 성냥을 모두 팔아라. 다 팔지 못하면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말고.>

유니는 새아빠가 무서워 밤새 큰 자루를 안은채 꾸벅꾸벅 졸았다.


창 밖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유니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창가로 다가갔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유니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문 앞에 새아버지가 험상궂은 얼굴로 서있었다.

<일어났으면 빨리 나가야지. 그 성냥을 언제 다 팔으려고 굼벵이처럼 꾸물거리는 거야.>

유니는 어제 낮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고 있었다. 유니는 엄마가 어깨에 두르던 낡은 숄을 두른 채 거리로 나왔다. 유니 옆으로 스쳐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힐끔 거리며 지나갈 뿐 그 누구도 유니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유니는 힘없이 작은 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 성냥 사세요. 성냥 좀 사주세요.>

유니의 외침에 그 곁을 지나가던 뚱뚱하고 욕심 많아 보이는 여자가 유니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얘야. 누가 성냥을 산다고 이 새벽에 거리로 나온 거니. 얘 가까이 오지 마라. 내 옷에서 냄새 날라.>

그 여자는 그 말만 남긴 채 홱 돌아서더니 가던 길을 가며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어휴 어린애가 이 새벽에 성냥을 팔러 나왔어. 저렇게 어린데 돈맛을 제대로 알았구먼.>

유니는 슬펐지만 돌아가신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냈다. 그리고 성냥 자루를 열었다. 그리고 힘을 내 거리를 향해 외쳤다.

<성냥 사세요. 이 어둠을 환하게 비춰주는 성냥이 여기 있어요. >

유니는 배도 고프고 발도 얼어갔지만 약해지려는 맘을 다잡으며 열었던 자루를 묶고는 성냥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점점 시간은 흘러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상점 앞을 지나갈 때였다. 유니 또래의 남자애와 여자애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선물을 사고 있었다. 유니는 그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엄마 아빠만 살아계셨음 나도 저 애들처럼 한아름 선물을 받았을 텐데.>

유니는 성냥을 팔기 위해 다시 거리를 걸었다. 거리가 깜깜해지고 가로등도 밤안개 때문인지 희미하게 보였다. 거리에는 사나운 겨울바람만이 유니 곁을 지켰다.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게 하나 둘 유니 옆을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유니의 성냥을 팔아줄 생각은 없었다. 유니는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돌아간다 한들 유니에게는 새아버지의 갖은 욕설과 매뿐이었다.


이제는 인적도 끊어져 유니 혼자만 거리를 걷고 있었다. 유니는 무섭기도 하고 배도 고파 걸음을 멈추고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닫다 만 창문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니는 차가운 벽에 작은 몸을 기대었다. 너무나 추워 손을 비볐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니는 성냥개비 하나를 벽에 그었다. 손바닥을 갖다 대기도 전에 불꽃이 사그라졌다. 유니는 다시 성냥 하나를 벽에 긋자 '지지직' 소리를 내며 성냥개비에 불이 붙고 주위가 낮처럼 환해졌다.  

 

갑자기 유니가 앉아있는 곳으로 눈처럼 하얀 말 두 마리가 끄는 멋진 마차가 달려와 멈추더니 마차 문이 열렸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날개옷을 입은 소년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유니에게로 다가왔다. 소년의 엄마는 망설임 없이 맨발인 채 떨고 있는 유니 앞에 앉았다.

<아가야! 이 추운 겨울밤에 왜 여기서 떨고 있니?>

유니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소년의 엄마는 천사처럼 곱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파랗다 못해 검붉게 얼어버린 유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 유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냥을 팔아야 해요. 못 팔으면 집에 들어갈 수........>

유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의 아빠는 유니를 번쩍 안아 올린 후 유니 옆에 놓여 있던 자루를 들고 마차를 향해 걸었다.

<아가야! 이 자루에 들어있는 게 모두 성냥이니?>

<네. 누구신지는 몰라도 아저씨의 멋진 이 옷에 거리의 때가 묻을지도 몰라요. 그만 내려 주세요.>

소년의 아빠는 유니의 말에 귀엽다는 듯 큰소리로 기분 좋게 웃었다.

<아가야!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돼. 이 옷은 마법에 걸려 있어 착한 사람이 닿으면 금방 산 새 옷처럼 깨끗해진단다. 이것 봐라. 너를 안으니 조금 전보다 더 깨끗해졌잖니. 아가야! 이제부터는 이 성냥 안 팔아도 돼. 매일매일 웃으며 우리와 행복하게 사는 거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귀한 아이란 걸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유니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가 돌아오며 빛을 내고 있었다. 성냥개비가 다 타버려 불이 꺼지자 하얀 마차도 따뜻하고 친절한 가족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유니는 다 타버린 성냥개비를 땅바닥에 던지고 성냥개비 하나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금방 만났던 친절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성냥개비를 벽에 그었다. 성냥개비에 불이 붙자 주위가 밝아지며 궁전같이 어마어마한 저택의 식탁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금 촛대에 촛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로 가득 차려져 있었다. 유니는 너무나 배가 고팠던 터라 재빨리 바싹 구운 거위 다리 하나를 들었다. 예쁜 과일들을 쟁반에 담아 들고 걸어오던 여자가 놀라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그렇게 급하게 드시면 안 돼요. 제가 작게 썰어 접시에 담아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유니는 여자를 쳐다보다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 여자는 거리에서 유니를 비웃던 뚱뚱하고 욕심 많아 보이던 여자였다. 그 여자가 유니에게 뭐라 말을 건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냥개비가 다 타버려 그 여자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유니는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듣고 싶어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 다시 벽에 그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안 보이고 엄마 아빠와 살던 집 앞에서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니야! 이렇게 추운데 늦은 밤까지 어디를 다니다 온 거니?>

유니는 엄마 아빠를 보는 순간 기뻐 달려갔다. 엄마 아빠 품은 따뜻하고 한없이 부드러웠다. 유니는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 남은 성냥 한 묶음을 들어 불을 붙였다.

<유니야!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 어디 안가. 우리 가족 다모였으니 지금부터는 헤어지지 말고 여기서 행복하게 살자. 미안해. 너 혼자만 있게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는 크리스마스 츄리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선물 상자가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자루에 들어있던 성냥 묶음에 불이 붙으며 하나 둘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식탁 주변에는 처음에 만났던 친절한 가족이 유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파티의 끝을 알리는 듯 벽난로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유니는 엄마 아빠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처마 밑에서는 행복한 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거처럼 입가에는 엷게 미소를 지은 채 유니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유니의 얼굴에 따뜻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다. 땅바닥에는 성냥개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유니의 간절한 꿈이 담겨 있는 타다 만 성냥 묶음은 유니의 손에 쥐어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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