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의 의미.

by 금다요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스마트키로 차고 문을 열었다. 그는 주차시킨 후 차에서 내려 시계를 봤다. 그리고 잠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동쪽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가 차 안에 있는 동안 날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려면 시간이 있는데도 벌써 보이는 산 뒤쪽이 붉어지고 있었다. 저 붉은빛이 그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는 정원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차 한잔 할까요?"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나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금방 내려줄게요. 좀 쉬고 있어요."

"벌써 잊은 거예요? 커피는 내가 내려준다고 했잖아요."

그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방으로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그가 식탁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가 내린 커피를 쟁반에 올렸다. 인기척에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쟁반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그의 맞은편에 앉으려 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자기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쪽으로 와요. 당신과 함께 어제와는 다른 새날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싶으니까."

나는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커피 향이 깊게 스며들었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피곤한 기색이 얼굴 가득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한동안 바쁠 거야. 해외 출장도 있고. 기다리다 지친다고 도망갈 생각 말고."

"......."

"왜 대답을 안 해? 정말 지치면 도망가려나 보네."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다시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너무 피곤하다. 지금 집에 가는 건 무리고 사무실로 가야 하나."

"들어가서 잠깐이라고 자고 움직일래요?"

"그럴까!"

그는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는 안 일어날 거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담 너머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세상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베란다로 나가자 전에 봤던 고양이 한 마리가 담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너 또 왔구나."

놀랍게도 고양이가 인사하듯 '야옹' 소리를 냈다.

"너 정말 센스쟁이구나. 예쁘다."

이번에도 고양이가 '야옹' 소리를 냈다. 그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당신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저 담 위에 고양이 안 보여요?"

그는 옆으로 다가와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음. 저 고양이가 친구이군. 그런데 수컷이야. 암컷이야?"

그는 자신이 말했으면서도 우스웠던지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내 옷 어디에 있어?"

"옆에 걸어놨는데 못 봤어요?"

그는 고양이가 앉아있는 담 위를 힐끔 쳐다보더니 주방을 나갔다. 나는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그에게 옷을 건넸다. 돌아서 나오려는 순간 그가 뒤에서 안으며 말했다.

"정말 가기 싫다."

"빨리 나와서 식사해요. 안 그럼 정~말 늦어요."

"냉정한 사람."

그는 밝게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함께 살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아침은 꿈처럼 우리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일주일이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그는 정말 바쁜가 보다. 늦은 밤 짧은 문자만 남기고 얼굴은 보여주지 않으니. 천천히 기다림보다는 나의 일상에 적응하는 게 빨랐다. 어느 날 아침 조용하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첫 통화라는 메시지가 떴다.

"윤설입니다."

"김영랑입니다."

짧게 침묵이 흐른 후 영랑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잘 지내죠?"

"네. 잘 지내시는 거죠?"

"네. 휴대폰 번호는 정민 씨 통해서 알았어요."

순간 정민과의 사이가 궁금했지만 영랑이 전화한 까닭이 더 알고 싶었다.

"오늘 오후에 만날 수 있을까요?"

"3시쯤이면 가능해요. 어디로 나가면 될까요?"

"내가 윤설 씨 집 근처로 갈게요."

"그럼 카페에서 봬요."

"카페? 가게 이름이 카페인가요?"

"네."

"그럼 3시에 봬요."

영랑과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봤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갑자기 전화한 이유가 궁금해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인 카페는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일찍 집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눈이라도 오렸는지 하늘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카페가 가까워지는데 한 남자가 카페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영랑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랑이 코트를 벗어 옆의자에 놓고 있었다. 문에 달린 풍경소리 때문인지 영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지냈어요?"

"네."

카페 여사장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장과 인사말을 나누는 동안 영랑은 창밖 거리를 응시했다. 사장이 돌아가자 영랑이 고개를 돌렸다.

"윤설 씨를 만나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무슨......"

"인랑이 때문에......"

영랑의 말에 의하면 선배는 휴대폰이 꺼지기 전에 자기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겨 놓은 거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한테 받은 유산을 나에게 증여해 달라고. 이 메시지는 얼마 전 정민과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전할까 고민했지만 말해버리면 선배가 살아있지 않음을 인정해 버리는 거 같아서 지금에야 전한다고.

"사실 인랑이 발인 때 국이한테도 인랑이 뜻을 말했어요. 국이는 유학 가기 전부터 알고 지냈어요. 그래서 윤설 씨에 대한 맘을 알고 있었어요. 윤설 씨는 몰랐겠지만 멀리서 보고 오는 날은 많이 힘들어했어요. 한국에는 다시 안 들어온다고 하더니 인랑이 조난사고 소식에 그쪽 일을 접고 들어온 거죠. 인랑이가 떠나고 혼자 남으니 국이도 윤설 씨도 내 가족 같아요."

"너무 뜻밖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정리되면 연락 주세요."

영랑과의 짧은 만남 후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 선배 발인식이 있던 날 그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더니 이 얘기 때문이었구나. 밤이 깊어가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창가에 앉아 겨울빛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봤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휴대폰을 들었다. 오늘은 문자 알림도 들리지 않았다. 눈꺼풀은 무겁게 느껴지는데 두 눈은 더 밝아졌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어정쩡한 나의 태도 때문에.'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