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부자인 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말하다.
<아저씨>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어른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남자라는 말이다. <나의 아저씨>는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tvN에서 수요일과 목요일에 방송된 16부작으로 박해영 작가와 김원석 감독, 그리고 이선균, 이지은 등 그 외 다수가 출연한 드라마이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나의 아저씨> 기획 의도를 읽는 순간 이 드라마에 반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근원에 깊게 뿌리가 닿아 있는 사람들.
우러러 볼만한 경력도 부러워할 만한 능력도 없이 그저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엔 아홉 살 소년의 순수성이 있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날카로움도 있다.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과 우직함도 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는 아저씨.
그를 보면 맑은 물에 눈과 귀를 씻은 느낌이 든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흔하디 흔한 아저씨들.
허름하고 한심하게 보이던 그들이 사랑스러워 죽을 것이다.
눈물 나게 낄낄대며 보다가 끝내 펑펑 울 것이다.
이 드라마는 끝이 어딘지 모를 저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절규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했지만 법(法)은 정당방위로 인정한 스물한 살의 지안(至安). 그녀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영광 대부 사무실을 운영하는 20대 중반의 젊은 사채업자 광일이. 그는 그녀의 다른 빚까지 사서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래야만 그녀가 자기를 바라볼 테니까. 그리고 조력자이면서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 기범과 그녀의 슬픈 가족사를 아는 채권자였으나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그녀 곁에 머무른 청소부 할아버지 영대.
그녀는 가냘픈 몸매에 한 겨울에도 양발도 없이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달리기'가 특기라는 그녀. 매일 커피포트에 물을 팔팔 끓여 노란 커피믹스 두 봉지를 한꺼번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녀의 가족이라야 여섯 살 때부터 함께 한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70대 중반의 할머니 봉애뿐이다. 스물한 살의 꽃다운 나이면서도 그 나이의 의미를 모른 채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겨운 그녀가 어느 날인가부터 파견 나간 삼안 E&C 대표 준영의 재신임 건에 휘말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동훈의 휴대폰에 도청 프로그램을 깔고 이어폰으로 그의 일상을 훔친다. 그녀 자신과 다른 듯 닮은 40대 중반인 동훈의 일상 속에서 그의 생각, 그의 행동, 그리고 그의 주변을 관망하며 조금씩 삶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희망을 갖게 된다.
동훈은 지안이 파견근무 중인 삼안 E&C의 한직(閑職)으로 알려진 안전진단팀 부장이다. 그는 건축사보다 더 많이 공부한 건축구조기술 사이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정해져 있는 대로 사는 게 편한 절대로 모험 같은 것은 꿈꾸지도 않는 그였다.
그의 가족으로는 억척스러운 70대 모친 요순과 삼 형제 중 제일 먼저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위기를 맞은 곧 오십이 될 40대 후반의 큰형 상훈, 그리고 영화계의 샛별이었으나 선배에게 주먹을 날리고 그 세계를 뛰쳐나와 큰형과 '형제 청소방'을 운영하는 전직 영화감독 40대 초반의 막냇동생 기훈, 기훈은 미혼으로 노모의 걱정거리이다. 그리고 그의 대학 후배이면서 와이프인 윤희, 그녀는 변호사이면서 남편 동훈의 회사 대표 준영과는 대학 동기이자 내연관계이다. 그 외에도 다수의 인물이 <나의 아저씨> 스토리를 끌고 나가지만 나에게 의미를 던져주는 가장 큰 인물들은 지안과 동훈이다.
'아저씨'라면 역시 아주 오래전에 읽은 - 고아인 소녀 '주디'가 숙녀가 되기까지 남몰래 도와주고 지켜주는 '저비스'와 편지를 나누다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 후에는 후원자인 줄만 알았던 저비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난다. <나의 아저씨>와는 전혀 다르지만 지안이 동훈을, 동훈이 지안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주디의 '키다리 아저씨'가 떠올려졌다.
tvN에서 <나의 아저씨>를 방송할 때는 1회부터 시청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마주한 순간 단 몇 초 만에 이 드라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씬마다 어두운 느낌이었지만 소시민의 애환과 눈물이 담겨 있어 가슴속 깊은 곳을 두드리는 긴 '울림'이 들렸다. 그 덕분에 나는 인터넷 tvN 홈페이지를 찾아 '다시 보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가진 게 많아 늘 갈증에 시달리는 자와 가진 것은 없지만 나보다 어렵고 나보다 아픈 자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그 넉넉함을 보았다.
흔한 말로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도 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함께 동행해 주는 동훈, 초라한 할머니의 빈소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큰형 상훈이 모친도 동생도 모르게 모은 거금을 장례식 비용으로 선뜻 지불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는 장면은 누구든지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따뜻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지안이 할머니에게 말했던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장례식장을 찾아와 기꺼이 그녀의 곁을 지키며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훈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말 부러웠다. 지안과 동훈,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심과 따뜻함을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모습은 그 어떤 애정씬보다 강했다.
시간이 흐르고 대표였던 준영은 법의 처벌을 받게 되었고 동훈은 삼안 E&C를 나와 자기 회사를 차렸다. 그의 와이프 윤희는 미국에 유학가 있는 아들 지석에게 날아가 모두가 안정을 찾고 있었다. 큰 형 상훈은 별거 중이었던 아내 애련과 재결합을 하였고 막냇동생 기훈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부산에서 장 회장의 친구 회사에 다니던 지안도 서울 본사로 올라온 후 우연히 커피숍에서 만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편안함과 웃음이 가득했다.
'가진 자의 즐거움은 무엇이고 가지지 못한 자의 서러움은 무엇일까!
<나의 아저씨>에서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며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을 지켜가는 게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서러움을 씻어주는 게 아닐까. 없는 자의 마지막 하나를 취하려 들지 말고 부디 나의 기쁨을 위하여 움켜쥐고 있는 손을 펼치길 바란다.
그래야만 동훈이가 지안에게 물은 거처럼 누군가 나에게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물어올 때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저씨>의 동훈과 지안이 보고 싶다. 오늘도 난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마우스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