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릴까 봐.

눈사람이 털목도리를.

by 금다요

계절은 가을인가 싶더니 나뭇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며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해 겨울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날만 해도 눈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아침에 마당으로 나가니 함박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는 두 모녀가 자는 방으로 올라가 방문 밖에서 노크를 하자 잠귀가 밝은 그녀가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자면서 얼마나 뒤척였는지 머리카락은 엉클어져 하늘을 향해 뻗쳐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침식사 준비를 하러 식당에 내려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옷을 갈아입혔다. 얼마 전 봉급(俸給) 날에 그녀의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서 사온 빨간 털실로 한 올 한 올 직접 뜬 털목도리를 목에 감아주었다. 그녀는 양발을 신겨달라며 내 눈 앞에 맨발을 들어 올렸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볼에 깊게 파인 보조개만 보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양말을 신겨 준 후 장갑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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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는 마당 한 가득 하얗게 쌓여 있는 눈을 보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순백의 세계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끌며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그녀와 나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대문 앞에서 발을 이용하여 꽃잎 모양을 만들었다. 그녀도 나를 따라서 작은 두발로 예쁜 꽃잎을 하얀 눈 위에 그렸다. 한참 동안 마당 이곳저곳을 다니며 하얀 꽃으로 눈밭을 빼곡하게 채웠다.


그녀는 뭔가 부족한 게 있는지 나의 손을 잡아끌며 다시 마당 중앙에 있는 화단 가까이 걸어갔다.

<눈사람이 필요해. 누가 이 꽃들을 꺾어가면 어떡해. 눈사람한테 지키라고 하자.>라고 말했다.

<뭐라고? 눈사람한테 이 꽃들을 지키라고 한다고?>

<음. 다른 아저씨들은 아픈 아저씨들 때문에 지킬 수가 없잖아.>


도대체 그녀의 머릿속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와 함께 할수록 그녀에 대하여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다. 매번 어른인 나도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생각과 행동들을 하는 이 아이와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하얀 눈을 뭉쳤다. 뭉친 눈을 땅바닥에 내려놓더니 눈을 굴리며 엉거주춤 앞으로 걸어갔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둥근 눈덩이 두 개가 눈 앞에 놓였다. 나는 그녀가 눈덩이를 굴리는 동안 눈사람의 눈과 코 그리고 입을 만들 나뭇가지를 찾아왔다. 두 개 중 작은 눈덩이를 위에 올려놓으니 그녀의 키를 훌쩍 뛰어넘었다. 눈사람의 눈, 코, 입이 만들어지자 그녀는 좋아라 박수를 치며 눈사람 주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그녀는 나의 팔을 잡고 흔들며 자기를 들어 올려 달라고 했다. 내가 그녀를 들어 올리자 목에 감고 있던 목도리를 풀더니 눈사람 목 부분에 칭칭 감았다. 내가 놀라 뒤로 물러서자 그녀는 앞으로 가라고 두발을 흔들었다.

<목도리를 왜 거기다 감아! 감기 걸리려고.>

<우리는 방에 들어가면 되잖아. 눈사람은 밖에서 저 꽃들을 지켜야 하는데 감기 들면 어떡해.>

그녀의 말에 목도리를 눈사람에게 선물하고 말았다. 그녀의 볼은 추위에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벗어 나에게 주었다. 눈이 녹으면서 그녀의 손을 얼려 손가락을 잘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기관지도 약한 그녀가 정말 감기로 고생할 거 같아 그녀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창가로 달려가더니 까치발로 서서 마당을 내려다봤다. 뭔가를 만들었다는 설렘을 그녀도 느끼는 것일까 한참 동안 창밖을 쳐다봤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펄펄 눈이 옵니다'라는 동요였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그녀는 가사를 다 모르는지 자기 맘대로 가사를 바꿔가며 흥얼거렸다. 밖에서 그녀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식사시간이라고 알리는. 내일은 그녀를 데리고 병원 옆 냇가에 나갈 생각이다. 양은 다라로 만든 스케이트 썰매를 타면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christmas-316448__340.jpg pixabay - 눈사람, 장식, 하얀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