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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Jun 18. 2020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할까.

상처는 아물었는데.....

내 나이는 언제 이렇게 먹었을까! 

거울을 보다 깜짝 놀라 이마와 눈밑 주름을 만지며 세어봤다.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주름은 세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왜 주름의 수를 세면 안 되는지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흰 머리카락의 수가 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가끔 모르는 사람과 만나면 상대방은 통과의례(通過儀禮, passage rite)처럼 나이부터 물을 때가 있다. 어색한 표정으로 내 나이를 말하면 <그 나이로 안보이시는데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관리를 잘했나 보다.' 싶어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같다는 말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나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혼자만 담고 있다가 휴일에 남편과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답은 찾은 거 같았는데 그 답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고 맘이 더 무거워졌다. 다른 이들을 '내 기준에 맞추려는 게 문제인 거 같다.'는 남편의 말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혼자 상처를 입고 뒷걸음치는 게 아니냐고. 


아주 오래전이었다.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먹었을 때 같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와 얼마 동안 남의 집에서 세를 살았던 적이 있었다. 대문 하나에 여러 집이 함께 사는 것은 처음인 데다 아침저녁으로 마당이며 수돗가가 북적거리는 모습이 참 좋았다. 


대문 옆 문칸방이었던 우리 방과 좀 떨어진 끝방에 예식을 앞둔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혼부부의 손에는 선물 보따리가 가득 들려있었다.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도 나의 두 눈은 선물 보따리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내 선물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기대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그 선물 보따리는 신혼부부의 가족들에게 주기 위한 선물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던 나는 '가족'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집에 사니까 가족이라 생각한 거 같았다. 어린 시절을 엄마와 둘이서만 생활해서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성장해서도 왁자지껄한 가정이 그리웠었던 거 같다.  




반백년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묘하고도 야릇한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그러나 가슴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어쩌면 다른 이들은 오히려 나를 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만난다고 다 절친(切親)이라고 할 수 있는가였다. 서로의 성향(性向)이 다른데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세월을 함께 할 뿐 자라온 환경과 성격이 다르기에 서로의 생각이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시간의 흐름은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에 대한 씁쓸한 여운도 안겨줬다. 아주 짧았던 순간에 느꼈던 그 낯섦은 다른 이들을 만날 때마다 '선'을 긋게 만들었고 소극적인 태도로 뒷걸음질 치게 하였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은 앞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정신 못 차리고 헤매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정신 차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 당시는 몸도 맘도 기가 다 빠져나간 거처럼 멍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나'를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출근하기 전 창밖을 쳐다보니 아파트 마당이 젖어 있었다. 자는 사이 살짝 비라도 내렸나 보다. 지하주차장 계단 하나하나를 내려가는데 뭔지 모를 작은 설렘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순간 '그래. 이런 것을 느끼는 내가 진짜지.'운전하는 남편의 옆모습을 보니 처음 만나 드라이브를 가던 그날이 생각났다. 한 사람을 두 번이나 만나 결혼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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