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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Jul 15. 2021

마음의 거리

비오는 날의소회[所懷]

"서해상에서 다가오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오전까지 중부지방과 경북 북부 중심으로 비가 오겠습니다. 오후에는 잠시 햇살이 반짝 소강상태를 보이다 밤늦게 서쪽 지역부터 비가 시작되어 내일은 전국으로 확대되겠습니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으면 월요일부터 그 한주가 즐겁다. 남편과 둘이서 '비 속의 드라이브'를 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운전하는 이는 화창한 날보다 빗 속을 달리는 게 더 힘들겠지만 '비 오는 날의 수채화'란 노래도 있듯이 빗소리를 듣는 것도 제색을 드러내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 오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인 것 같다. 소풍을 가거나 엄마랑 시골 장에라도 가려고 하면 꼭 비가 왔으니까. 일기예보를 들으면서도 이처럼 기분이 설레는 걸 보면 '비'는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게 확실하다.


낮 기온이 30도가 오르내리는 요즘 아스팔트 위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는 정말 반갑다. 지난주 충남 금산지역에서 살고 있는 둘째 언니네를 방문했다.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려면 큰 도로에서 냇가 옆 작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려가야 한다. 차 창밖으로 냇가의 맑은 물이 여름 볕에 은빛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전북 지역에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고 하더니 그 영향인지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2천여 평 가까이 되는 땅에 닭장을 만들어 청계 닭을 키운다. 이 덕분에 우리는 갈 때마다 청 계란을 얻어오지만 맘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닭 모이를 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형부와 둘이서 고추와 콩, 가지, 고구마, 블루베리, 그리고 손주들이 좋아한다고 땅콩 등을 심었단다. 고추는 제법 크기가 있어 벌써 예약을 하고 간 사람도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전원으로 들어가 생활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밭에서 보기 좋게 자라고 있는 고추며 탐스렇게 익어가는 가지들를 바라보니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가끔 언니네 와서 자연을 바라보는 게 좋기도 하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맘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이야 언니나 형부가 활동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나이가 더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 병원과의 거리가 멀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래서인지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입버릇처럼 '건강관리 잘하라.'는 말만 하게 된다.


살짝 밖으로 나가더니 야채값이 비싸졌다며 스티로플 상자에 호박과 늙은 오이, 가지 등을 한가득 담아놨다.  차에 실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괜찮다고 연거푸 말은 하는데도 뜨거운 햇볕 아래서 허리도 못 펴고 풀과 모기와 씨름했을 텐데 우리까지 챙겨주는 맘에 맘이 뭉클했다. 


굵은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마당을 적시기 시작했다. <한바탕 쏟아질 건가 봐. 빨리 출발해.>라는 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가 내렸다. 언니와 형부의 배웅을 받으며 들어왔던 냇가 길을 따라 달렸다. 빗방울은 더욱 거세져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시골길을 달려 국도로 들어서자 차창을 때리는 비는 더욱 거세져 앞이 깜깜했다. 


구름이 걷히더니 맑은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얼굴을 내밀었다. 지나가는 소나 기였나 보다. 강변 옆 도로를 달리는데 강 쪽으로 쌍무지개가 떠있었다. 남편은 저렇게 낮은 무지개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정말 이 지역과도 인연이 깊은가 보다. 오래전에도 금산 제원면에 갔을 때도 쌍무지개를 본 기억이 있었다. 


이 비는 농사짓는 농부들만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많은 추억을 되새기게 하였다. 때로는 폭우로 인한 두려움도 갖게 하지만 한여름 고즈넉한 찻집 유리창을 통해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볼 때면 한없이 여유롭고 움츠렸던 맘이 풀리는 것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쉽게 길을 나서기도 어려운 요즘 오랜만에 느낀 고마움과 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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