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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일어난 일요일 아침. 아니 점심. 무릎 수술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엄마의 질책을 엄청나게 받았다. 배고픈데 내가 안 일어나서 못 먹는다고, 엄마는 의자에 앉아서 어제저녁으로 먹은 밥그릇도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으.. 엄마가 점심을 먹는 걸 돕고, 창문 열어서 에어컨 키고, 빨래 돌리고, 고추장 냉장고에 넣다가 바닥에 엎어서 청소하고 일어나자마자 바쁜 집안일이 시작된다.
그러다 오전부터 tv가 나오다가 안 나온다고 확인해보라는데 며칠 전에도 인터넷이 한두 시간 안되다가 된 적 있어서 좀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tv까지 안 나오면 어쩌냐고 전화를 해보라고 다그친다.
어차피 일요일이라 기사님도 안 올 것 같지만 일단 KT 에 전화를 해봤다. 100번 띠리링. 상담사 연결도 꽤 오래 걸린다. 저번처럼 모뎀 기기에서 OPT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고 증상을 말했고, 오늘 4-5시쯤 방문한다고 했다.
아니 웬일이야? 월요일에 방문한다고 할지 알았는데, 전화를 끊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바로 전화가 왔고 기사님이 방문했다.
기사님은 키가 180이 훌쩍 넘어 보이고 정말 딱 봤을 때 놀랄 만큼 풍채가 거대한 남성이었다. 곰 같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모뎀 기기에서 선을 뽑아 기계로 테스트해보더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선 끝자락을 끊고 새로 연결하고 검사했는데 역시나 안된다.
밖에 나가서 선을 보겠다고 나갔다 들어온 기사님은 땀 냄새를 격하게 풍기며 들어왔는데, 전봇대 위에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내가 뭐가 문제냐 물으니 알 수 없는 거라고 지나가다 전봇대 치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래서 자기같이 기사가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내가 주말에는 원래 안 오시는 거 아닌가요? 물으니 연락이 와서 온 거지 본인도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말에는 AS 자체가 안될지 알았는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금방 고쳐서 좋긴 하지만 주말에 날도 더운데 일해야 하는 모습이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에 TV 보다가 안 나온다고 연락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렇겠지. 솔직히 너무나 당연하게 돼야 하는 TV나 인터넷이 갑자기 안된다면 일단 사용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니까. 그리고 회사가 문제다 빨리 고쳐내라! 다그칠게 분명하다.
기사님께 찬물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정수를 달라고 하신다. 정수? 하니까 찬물을 먹으면 몸이 더 더워진다나. 하지만 냉장고에 찬물밖에 없다고 했더니 찬물 달라 하셔서 한잔 따르고 두 잔 따르고, 찬물 두 잔을 벌컥벌컥 먹고 사라지셨다. 두손이 먼지로 시커매졌는데 물티슈라도 드릴껄 그랬나.
예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돼보니 다방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안 힘들고 스트레스 안 받는 일이 어디 있겠냐만 일단 야외에서 일하고, 평일 주말 상관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면서 주말에 연락해서 오게 만든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되니 이 글도 쓸 수 있고 엄마도 TV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