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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Aug 21. 2018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감독 신작 에세이

이경미 감독의 신작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을 읽어봤다. [미스홍당무]는 예전에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는데 이 감독이었는지 몰랐다. 최근 JTBC 프로그램 [방구석 1열]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경미 감독이 나왔고 영화배우 엄지원이 나와서 영화 [비밀은 없다]와 [미씽:사라진 여자]를 소개하고 비교하는 걸 봤는데, 아니 아무리 예전 영화라지만 영화 내용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거 아냐? 

여하튼 우연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비밀은 없다]가 보고 싶어져서 봤다.

손예진이 그렇게 망가질 수 있는 건가? 연기 장난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박찬욱 감독의 제자란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친절한 금자씨]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신선했고, 임팩트가 컸다. 망한 영화-에서 주목받는 영화로 재개봉까지 한 호불호가 강한 영화다. 누군가는 박찬욱 감독 제자의 아류작, 이런 식으로 영화평을 적어놓은 글을 봤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어느 정도 유사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다른 느낌인걸?! 

이경미 감독도 방송에서 그렇게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여주인공은 자기가 이쁜지 알고, 자기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은 자기가 이쁜지 모른다고, 박찬욱이 만드는 영화 속 여성들은 정말 매력적이고 아름답지만 이경미 감독 영화 속의 여성들은 감독 본인이다. 감독이 주인공에 투사가 되어있다. 남자가 대상으로 바라보는 여자와 여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느낌은 좀 다르달까? 


여하튼 [미스홍당무]의 기억도 좋았고 [비밀은 없다]도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가 나온다 했을 때 궁금했다. 영화감독의 에세이는 어떤 스타일일까? 거친 영화판에서 영화감독이 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살아온 걸까? 호기심 증폭.


에세이를 읽으면서 좀 놀랐다. 자신의 엄청 찌질했던 과거와 생각들을 고스란히 적어 놓았다. 2003년부터 짧게 작성한 일기가 중간중간 수록돼있는데 피식,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많다. 중간중간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삽화가 들어있는데 그 그림이 깨알 같아서 웃음을 준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30대가 되고,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고, 퇴사하고 영화학교에 들어갔다. 딱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연극 영화과에 가고 싶었다고(오랫동안 성우를 하신 아버지의 영향인 건지) 

 박찬욱 감독 영화의 스크립터를 시작으로 시나리오도 쓰고 자신의 영화도 몇 편 만들어낸 감독이지만 입봉하기까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나이든다는 것, 연애, 결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감정들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다. 여성에게는 찌질하다는 표현 잘 안 하지 않나? 하지만 책 속의 감독은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한없이 예민해 보이기도 하고 정말 우울증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너무 솔직해서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해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암울한 글 속에 위트는 놓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의 책이다. 자신의 심리상태, 가족에 대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는데 에세이라기보다는 일기 느낌이 강해서 내용이 좀 들쭉날쭉할 때도 있고 감정의 흐름에 따라 글이 써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박찬욱 감독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를 이야기.


피식하고 웃게 되다가도 엄마와의 일화, 카톡 대화 등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 인건 이경미 감독이 계속 암울한 솔로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 13살이나 어린 백인 남성. 키가 190이 넘는 연하남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영화 초반에 혹평밖에 없었던 [비밀은 없다]를 재미있게 봤다고 말하는 영화기자를 만나서 결혼에 골인! 그래서 이경미 감독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론은 아니지만, 힘들고 우울했던 시절을 묵묵히 견디고 8년 만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고, 결혼도 했다.

청춘들이여 현재가 힘들어도 좀 버티고 노력해봐라.라는 인생의 교훈을 얻었달까? 


이경미 감독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에세이를 주로 읽는 사람이라면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를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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