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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Aug 23. 2018

사모님 소리 들은 날

D2_0823

어떤 날이다. 강남에 염색을 하러 갔다. 날씨도 덥고 강남까지 대중교통은 끔찍하다는 생각에 차를 끌고 갔다. 미용실 건물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염색을 하고 나왔다. 저번에 갔을 때는 직원분이 몰래 주차도장을 찍어주셨는데 이번에는 요청하지 않았다. 머리도 협찬받아서 하는 건데 주차 도장까지 또 찍어달라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눈치 보며 몰래 찍어주는 상황은 불편했다.

 30분에 1500원인가 했고 강남인 거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었다. 주차관리 아저씨께 주차권을 보여주고 요금을 문의했다. 

'설마 만원 넘게 나오겠어? ' 하는 생각으로


"어디 오셨는데요?"

"미용실이요"

"그럼 주차 도장 받을 수 있는데 찍어오시지."

"아 아니에요; 그냥 결제할 테니 얼마인지 알려주세요"

"어디 보자.. 5500원 나왔네요."


'아싸 생각보다 싸게 나왔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아저씨는 한 번 더


"올라가서 도장 찍어오시지." (미용실은 2층)

"아니에요 여기요"

하고 현금을 드렸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아이고 사모님 @#$@%#%&"


뒤에 말은 사모님 소리에 묻혀 듣지 못했다. 그저 주차관리 아저씨는 미용실에서 머리 했으면 올라가서 도장 받으면 무료인데 돈을 왜 내셨어. 이런 느낌의 말을 하신듯 하다. 


사모님.. 사모님... 태어나서 사모님 소리 처음 들어 본 날.


고등학교 때인가 유치원 봉사활동 갔을 때 짓궂은 꼬마 남자애가.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아니라고 해도 끝까지 아줌마라 불렀던 기억만큼 강렬하다.


꽤 오랫동안 [학생] 소리를 들었고 어떨 때는 [아가씨]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아가씨]라는 단어는 미묘해서 누가 부르는 거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학생]이란 소리가 더 듣기 좋았었는데..

그래도 어디 가서 [아줌마] 소리는 안 들었는데 짓궂게 장난치는 게 아니라면.


사모님이라... 나쁜 말은 아닌데 아줌마보다 백배 나은데 일단 나는 미혼이니 남의 부인을 높여 말하는 사모님은 적절하지 않다.

평일 오전에 차 끌고 머리하러 온 백수보다는 누군가의 부인이 주차관리 아저씨한테는 익숙할 테지.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제 너무 당연하게 유부녀처럼 보이는 건가! 나이는 먹을 만큼 먹긴 했지. 삼십 대 중반, 좀 있으면 꺾이는 후반! 내 친구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인데! (물론 이 친구 엄청~ 빨리 갔지만) 


살짝 벙찐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모님. 사모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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