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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Oct 31. 2018

일, 돈, 시간,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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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덥고 답답한 사무실 공간, 맥 프로도 낯설어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몇 개월이지만 일을 어찌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걸까.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일과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다. 일할 때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 좋지만 그렇다고 일하면서 뇌가 정말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게 아니기에  몇 시간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갈 때면 몸과 마음이 매우 지친 상태가 된다.


 백수 때는 여백의 시간이 많아 좋다고 생각하다 어느 시점이 지나니  시간은 많은데 게으른(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농땡이 피우는 것 같은) 내가 싫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다시 일을 시작하고 하루에 몇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다 보니 나머지 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백수 때보다 더 바쁘다. 상대적으로 백수 때보다 좀 더 내가 열심히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시간의 일부를 돈과 교환했고, 나머지 시간을 쪼개서 나만의 일을 해야하니까.


예전 직장이 떠올랐다. 1년 전에 그만둔 그곳. 하는 일의 난이도에 비해 돈을 많이 받고 있었지만  나도 회사도 발전이 없고, 언제나 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곳. 나머지 시간을 쪼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기계발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모든 직장인의 핑계이자 현실이겠지. 일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마음이 괴로웠다. 내 마음이 괴로운데 평안 감사라도 저 싫다면 그만 아니겠는가.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불안하고, 월급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살지!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 생각으로 3-4년 버틴 것 같다. 막상 회사를 그만둬 보니 잘근잘근 재택 알바도 들어오고 모아 놓은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1년을 버텼다. 시간이 많으니 안 해보던 것도 해보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고, 백수도 할만했다. 예전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것도 덜해지고, 여행 가고 이러는 것만 아니면 백수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내가 엄마 집에 얹혀사는 게 이럴 때 꿀이다. 내가 혼자 자취하고 있었다면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맨날 지각하면서..


  내 모습이 재수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니 시간은 자유롭지만 대학에 가려면  혼자 공부해야 한다.  자기 관리가 어렵거나 불안한 친구들은 종일반 재수학원을 끊고 고등학교 4학년이 되어 공부를 지속한다. 재수생이 혼자 공부하느냐 학원을 다니냐의 선택이 사회인이 회사 다니며 돈을 벌래 안 다니면서 돈을 벌래 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어쨌거나 어쨌거나 내 손으로 돈을 버는 활동은 계속해야 하는데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미래가 불안하고 백수여도 똑같이 불안하다면 내 시간이 많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쪽을 택하는 게 현명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아 여전히 그 방법을 모색 중이지만.. 


항상 취업만이 답이라 생각했지 그 이외의 대안은 배워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기에 '다시는 회사에 다니지 않겠다.'라는 마음은 먹었는데 어찌 헤쳐나가야 할까. 

외국 어디, 유럽 사람들은 몇 개월 일하고 몇 개월 여행 다니고 그런다는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최저시급이 더 올라야 하는 건가? 디지털 노마드가 돼야 하는 건가? 모르겠다. 계속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콘텐츠를 만들면서 정년 없이, 정규직, 비정규직 이런 구분 없이 내가 그냥 나인 채로 살고 싶은 게 지금 내 마음이다. 계속 방법은 찾는 중이다. 


고용상태가 불안하다. 비정규직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 짧고 굵게 몇 개월 바짝 벌어서 또 여행 가자. 또다시 즐거운 백수생활을 하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재미없고 발전없는 일을 해도 마음이 평온하다. 뜬금없이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모든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마음먹는 거에 따라 상황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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