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Nov 29. 2018

대반전 Mr. 김

D48_1123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호'이거나 '불'이거나. 둘 중 하나.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에 타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출입문 바로 옆 좌석에 앉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성은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눈만 보이는데 눈썹은 짙고 눈이 크고 깊은, 강한 인상이었다. 
 8:2 포마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무심코 보다 당황했다. 머리는 검었지만 숱이 없어 두피가 슬쩍 슬쩍 비쳤다.
그때 깨달았다. '아, 저 남성은 적어도 50대 이상은 되겠구나.' 환승역에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는데 뒤통수도 가운데가 슬쩍슬쩍. 딱 봐도 중년 아저씨인데!
체형도 보통이고 키도 모델처럼 크지 않았다. 아니 그런대 왜 '멋짐'의 기운을 뿜어내는 거지?!  잠깐 봤을 때 난 30대 남성이라 생각했었다.  

일단 그 아저씨 패션이 좀 남다르다.(호칭이 '남성'에서 '아저씨'로 바뀜 ㅋ) 내가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이라서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멋쟁이들은 신발부터 본다고 하지 않던가? 그 아저씨는 새 신발처럼 깨끗하고 흔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로퍼를 신고 있었다.
그레이칼라의 얇은 모직 재킷은 기장이 허벅지까지 내려왔고 몸에 딱 맞았다. 슬림핏!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바지는 재킷보다 좀 더 짙은 차콜 색이었는데 아저씨들 정장 바지처럼 벙벙하거나 미끈거리지 않았다. 모직바지 원단은 자잘한 점들이 빼곡히 박힌 게 마치 검은 모래해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검은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저씨 패션의 완성은 단연 검은색 마크스였다. 검은 마스크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대반전! 검은 마스크는 학생들이 연예인 따라 하는 멋내기용 아이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만의 아이템이 아니란 걸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젊어 보임이 단지 마스크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안다. 그 아저씨의 옷과 신발에서도 젊은 감각이 뿜어져 나온다. 

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했다. 패션 쪽 일을 하는 사람 아닐까?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가 떠올랐다. 닉 우스터는 머리랑 수염이 백발이라 나이 많음을 알 수 있지 그의 머리가 머리가 검은색이었다면 훨씬 젊게 봤을거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패션 센스 때문에 그가 더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닐까?  

  내가 이날 본 아저씨도 젊은 남성이 똑같이 입었다면 '옷 잘 입네~ 근데 키가 좀 작아 아쉽군.' 혼자 의미 없는 평가를 하고 말았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격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저렇게 센스 있게 코디를 한 거지? 더 나아가서 저렇게 옷 잘 입는 중년 남성이라면 멋있는 외제차를 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지하철이 웬 말이람? 혼자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던 출근길이었다. 

 다리가 날씬하고 이쁜 경우 미니스커트를 입고 굽 높은 워커나 힐을 신은 중년 여성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 또래 여성들 보다(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소 화려하다. 날씬한 다리에 눈이 갔다가 얼굴 보고 깜짝 놀란다. 속으로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다리가 이쁘면 역시 드러내는 옷을 입는구만.' 
엄마는 나이 들어서 그렇게(핫팬츠, 미니스커트) 입으면 꼴불견.이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패셔너블한 중년이 될 것 같진 않지만  중년, 노년인 사람들의 젊은 패션이 흥미롭고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산했던 입시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