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소굴 골목식당 손님들을 위해
길고양이. 란 단어는 뭔가 애잔한 기분이 들어서 썩 쓰고 싶은 단어는 아니다. 그리고 뭔가 볼드모트같이 내 입에서 길고양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몇 년 전 우리 집 건물 뒤쪽에 냥이들 밥을 주다 같은 건물 사람들이 싫어해서 밥 주기를 포기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최근 반거주 하고 있는 망원동 작업실에서 우연히 창문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나고 뭔가 홀린 듯 그날로 밥그릇과 물그릇을 구입해 밥을 주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골목식당이 시작됐다.
반지층 건물이라 창밖 땅이 높고 창틀에 밥을 올려놓으면 냥이들 밥 먹기 적당한 높이가 된다. 챱챱챱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날마다 아이들이 와서 밥을 먹는데 하나둘씩 만난 아이들은 한 달 사이에 꽤 늘었다.
내 창문 위치가 정말 기똥차서 사실 옆집 아저씨는 딱히 뭐라 할 것 같지 않고 1층이며 2층 올라가는 입구가 반대쪽에 있다고 할까. 그래서 내방 창문 쪽 좁은 골목은 말 그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 틈이다. 그리고 옆집 담도 좀 높아 아직까지는 내 생각에 냥이들 밥 주기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하고 있다.
정말 더러웠던 창문 밖 좁은 공간도 쓸고 사료와 물을 놓고 고양이를 기다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 집에 살았던 남자도 고양이를 키웠고 지금 소굴 대장이 쓰는 큰방 방충망에 구멍이 크게 나있던 이유를 알았다. 구멍 난 방충망 바깥에서 보면 창틀에 사료가 듬성듬성 뿌려져있다. 아.. 이 남자도 이사 가기 전까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가 이사 오고 그렇게 저녁마다 고양이가 울었고 밥 왜 안주냐고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거구나. 본의 아니게 그 남자가 운영하던 식당을 내가 물려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만나게 된 망원 냥이들. 빅구리가 나를 빤히 쳐다봐서 정말 십분도 넘게 나를 보고 앉아있는데 이건 밥을 내놓으라는 말이지 무엇이겠는가. 그러다 작고 여리여리한 소구리도 찾아오고 뚜껑이는 거의 매일 한두 번씩 와서 밥을 먹고 가고 최근엔 (인)상파도 몇 번 왔고 이빨이 아픈 것 같아 마음이 짠한 짜니와 한번 상파를 따라와서 신나게 밥을 먹고 간 크림이까지 이 좁은 골목식당에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처음에 생각한 건 한두 마리 아니 빅구리, 소구리, 뚜껑이까지 세 마리만 있는지 알았다 그런데 정말 많다. 옆 골목으로만 넘어가도 다른 냥이들이 있고 목에 방울을 달고 다니는 가겟집 방울이도 있고 같이 살아야 하는데 도시에 냥이들 먹을 음식과 물은 없고 그냥 그렇게 잠깐 와서 허기를 달래고 나에겐 사진을 제공하는. 사이랄까. 그냥 밥 먹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고 그런데 이 동네 아이들 TNR이라고 불리는 중성화 수술을 한 아이가 한 마리도 없다. 망원동에 고양이가 많은 이유는 다 이 때문이겠지. 사실 이 아이들을 TNR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굴 대장도 시키자!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상파가 남아라는 거 말고는 항상 나는 내 방에서 밥 먹는 얼굴만 보기 때문에 아이들 성별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보게 됐다.
결론은 TNR은 성급하게 해서도 안되며 일단 밥 주는 사람에게 신뢰감이 있어야 하고 나 또한 이 근방 고양이들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냥 구청에 신고해서 해주세요. 끝. 이것도 아니고 제대로 수술을 했는지 방생을 냥이 거주 지역에 했는지 수술 후 경과까지 봐야 하는 생각보다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일이었다. 우선은 이렇게 밥 먹는 아이들이 많으니 밥을 주고 조금씩 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길에서 사는 냥이들이 평균 수명이 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냥이가 죽으면 폐기물로 분류되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렇게 할 캣맘(캣대디)는 없겠지만. 고양이의 임신기간이 고작 2달 밖에 안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고양이들이 그렇게 많은 질병에 걸리는지도 처음 알았다.
길고양이와 너무 친해져서도 안되고 특히나 만지려 해서도 안된다는 슬픈. 이 플라토닉 사랑. 하지만 이 플라토닉 사랑이라도 내가 망원 소굴에 있는 동안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의 삶에 너무 개입하려 들지 말고 아이들이 허기를 채우고 목을 축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고, 사진이랑 영상만 좀 찍고 쉴 새 없이 말을 거는 좀 귀찮지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 밥 주는 여자 인간 정도로 남아야지 ㅠ
길고양이와 정말 공존하고 싶다. 외국 냥이들에 비해 우리나라 냥이들이 모진 고초를 당하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고양이를 불길한 동물이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내가 밥을 주고 싶다고 아무 데서나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여간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 제목처럼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이름 모를 똥개라 불리는 개들도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젠 어디에서도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볼 수 없다. 그 개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고양이들이 유독 점프를 잘하고 야행성이라 아직까지 이 먹을 것 하나없는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고양이들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잠을 자고 비를 피할까? 매우 궁금해진다.
밥을 먹는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창살 안에 갇혀있는 것 같고 고양이들이 나를 구경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 고양이 장난감에 반응하는 빅구리와 놀 때면 빅구리가 나와 놀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지? 그래서 냥이 키우는 사람들은 집사라 불리나 보다.
제발 한 번만 냐옹 해주면 안 되냐 사정해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밥을 챱챱 먹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는 녀석들. 아직 한 번도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잘 먹었다 한 번만 야용~해주면 안되겠니..
나같이 고양이 골목식당 운영 초보자에게 유익한 책이었다. 생각보다 좀 어두운 현실과 녹록지 않은 고양이의 삶을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털도 삐죽삐죽 인상도 거칠고 밥도 게걸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여기저기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추노라고 이름을 붙여주려다 책을 읽고 저 아이가 치주염 혹은 구내염의 증상과 비슷한 걸 보고 이빨이 아파서 그런 거구나 싶어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서 마음이 짠해 짜니라 붙여 줬는데 책에는 동물 병원을 데려가거나 항생제를 줘야 한다고 하는데 짜니는 아직 딱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했고 친근한 사이가 아니라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물과 밥을 주는 것까지일까. 괜히 고양이 타우린을 검색해보고 이빨 과자를 검색해보고 있네.
기대하며 심었던 캣 그라스는 아이들이 쳐다도 보지 않아 잘게 썰어 사료에 섞어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좀 먹지 않을까.
너희들 덕분에 나도 전에 이 집에 살던 남자처럼 방충망 뜯어버리고 난 매일 저녁 초파리와 함께 캠핑하는 기분이란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든 [한국 고양이 보호 협회] 정기회원을 가입했다. 월 1만 원씩 납부하는 걸로 해놓았는데 나중에 아주 나중에라도 TNR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보면서 당장 골목식당 손님들 말고도 도움받을 수 있는 다른 길냥이들을 위해 가입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