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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Mar 26. 2018

예지몽

0326 (D-10)

예지몽


나는 꿈을 잘 꾸는 사람은 아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야 침대에 가기 때문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든다. 가끔 꿈을 꾸기도 하는데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해서 잠을 설치게 될 때 그렇다. 그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이었다. 꿈속에서 전 남자친구를 만났다. 당황했지만 내가 먼저 발견하고 안녕? 하고 끝나는 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생전 꿈에 안 나오던 사람이 나와서 왜 나왔을까 하고 말았다. 

 꿈꾼 날 아침 나는 엄마와 강릉에 갔다. 평창 올림픽을 맞이해서 서울과 강릉을 한 시간 반 만에 갈 수 있는 ktx가 생겼다. 엄마는 그 기차를 타고 동해에 가고 싶다고 했다. 경포 해수욕장으로 택시를 타고 가서 점심을 먹고 바닷바람을 쐬며 해변을 한참 걸었다.
겨울바람이 거샜고 너무 추웠다. 커피 한잔 마시자 하고 커피숍에 들어갔고 2층 창가에 자리 잡았다.

거기에서 전날 밤 꿈에서 만났던 전 남자친구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옆 건물 2층 발코니에 서있었다. 야속하게도 다른 여자와 함께였고, 둘은 신나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건물 바로 앞, 해수욕장 이름이 쓰인 조형물에서 한참을 사진을 찍다가 사라졌다. 

헤어진 지 2년이 지나긴 했지만 짧지 않은 시간 6년을 만났고 이별 후에도 마음 한구석에 계속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게 있었는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 털어버리기로 했다. 사실 충격이 좀 컸다. 그 둘의 사진을 찍어서 여러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다들 막장 드라마 같다는 둥. 어떻게 서울 사는 사람을 강릉에서 만나냐는 둥. 나만큼 충격에 휩싸인 친구들. 그렇게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나서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흘려버리려 했다. 연락을 해서 놀래켜줄까. 나만 놀라긴 억울하다. 이런 마음이 들긴 했지만  반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본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묻어버렸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충격요법으로 인해 예전의 미안함, 죄책감 같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좀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모든 기억을 다 지울 수는 없기에 그 후에 남은 기억들을 잘 묻어두고 잊히면 잊히는 대로 살아야겠지. 

며칠 전에 또 꿈에 나왔다. 내가 발견했고 안녕? 하고 끝나는 꿈. 이제는 무슨 일이 있나? 순간 걱정이 됐다. 친구한테 말했더니 
" 네가 완전히 잊기는 했나 보다. 걱정을 다하고"
그러는데 개꿈이라 하더라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내 기막힌 예지몽은 딱 한번 왔다가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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