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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Mar 25. 2018

나 원래 좋아했었어

0324 (D-8)

나 원래 좋아했었어


현재 내 방은 난장판이 되어있다. 실과 리본들이 방바닥에 뒤엉켜 '너 언제 치울래' 하고 바라보는 것만 같다. '조금만 기다려! 나 해야 할 일이 있어!'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리본 브로치를 만들고 있었다. 취미 및 부업으로 액세서리/리본을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동대문에 가서 리본과 부자재를 이것저것 구입하고, 카페나 유튜브를 기웃기웃하면서 만들어 보고 있는 요즘인데 즐겁다. 백수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재료비를 아낌없이 투자할 정도는 된다. 아직까지는.. 

 내가 외동딸 이어서 그랬을까? 어려서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가장 가깝게 할 수 있는 만들기는 종이접기, 종이접기를 참으로 좋아하던 어린이였다.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 학종이 들을 많이 가지고 있던 초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종이접기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스럽게 꿈은 바뀐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여러 가지 공예를 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배우고 익힌 거지? 학원을 다닌 적이 없는데, 교보문고에서 한지공예 책을 사다 한지 공예를 하기도 하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종이감기 공예에  빠져 종이감기 공예로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다.  미술 선생님께도 이쁨 받는 찬란한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고등학교부터는 즐겁게 무언가 만들어 본 기억이 없다. 인문계 여고였는데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수업만 하는 공간이었다. 고1 특별활동 시간에 미술반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은 그냥 자습하라고 했고, 어떤 것도 그리거나 만들지 않아서 실망이 컸던 기억이 있다. 고2 고3 때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고 창작활동은 즐거움이 아닌 입시 그 자체일 뿐이었다. 입시미술 기준에서의 나는 그렇게 빨리 준비한 것도 크게 잘하지도 않는 학생이었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 이후의 삶은 그래도 어느 정도 기억에 있는데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과 내 모습은 요즘에서야 다시 떠오른다. 순수하게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전공이나 직장에 대한 고민 없이 그 자체를 좋아했던 시절이다. 물론 고민이 있다면 언제나 빠듯한 재료비와 배우고 싶은데 배울 방법도 방향성도 몰랐다는 정도였을까.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손으로 뭔가 조물조물 만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게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다. 미대 입시도 삼수나 했고 나 자체가 꼼꼼함이 좀 없다.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건 좋아하는데 어딘가 허술하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새롭다.  물론 지금의 내 행동은 1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특정 직종에서 사회인으로 살던 내가 갑자기 앞날이 불투명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려는 내 모습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 원래 좋아했었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돌아가는 다리를 완전히 불태운 건 아니다. 그저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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