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Mar 27. 2018

동대문드림

0327  (D-11)

동대문드림


내 나이 26살 첫 회사는 여의도 증권가 한복판이었다. 증권회사였으니까. 한 증권회사의 온라인 주식 채널의 영상 CG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턴 이후에 계약직으로 오래다니 지는 않았지만 사회생활의 처음을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럴듯한 곳에서 시작했다. 여의도 하면 생각나는 건 '피아노길' 이다. 검은 정장 바지와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들이 우르르 나와 담배 피우는 길. 너무나 똑같은 그들의 모습이 피아노 건반 같다고 해서 나는  그 길을 피아노 길이라고 불렀었다. 처음에는 복장 규제 없이 옷도 자유롭게 입고 다니다가 인턴이 끝나고 계약직이 되면서 옷에 대한 말이 나왔고 증권가와 어울리게 정장 스타일을 입고 다녔다.  큰 돈을 만지는 곳이고(회사의 한 직원은 이 회사가 개미들 피빨아 먹는 회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직원들은 유학파에 유능한 사람들만 취업하는 곳. 회식과  상사에게 얻어먹는 음식의 퀄리티는 내가 다녀본 회사 중에 최고였지만 내 직종에 대한 전문성과 대우가 좋지 않다고 느껴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에 한 줄 넣기도 부끄러운 이력이다.

 영상일을 하면 회사는 홍대, 아니면 강남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실재로도 강남 쪽에 영상 회사가 많다. 그다음 회사는  학동과 신사역 쪽이었다. 강북 토박이이던 나는 말로만 듣던 가로수 길을 처음 걸었을 때 내가 초라하다고 느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죄다 모델 같고(정말 모델들도 있는 것 같다) 외제차 커피숍 앞에 세워두고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분위기. 그런 느낌? 멋모르고 처음 보는 메이커 매장에 들어갔다가 코트 가격에 뜨악하고 바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가로수길은 자주 가지도 않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무언가가 있다. 

그다음 내 근무지는 목동이었다. 생전 가볼 일 없는 섬 같은 곳 목동. 한 방송국에서 꽤 오래 일했다. 5년 넘게 일했으니 이렇게 오래 다닌 곳도 없었다. 목동은 들어가기도 나가기도 불편한 곳인데 목동 안에 모든 것이 있어서 윤택한 생활이 가능하다. 역 주변에 영화관도 2개나 있고 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킴스클럽. 아파트가 많아서 그럴지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럴지 돈 쓸 곳도 많고, 길도 널찍 널찍하고 사람 살기 좋다. 회사 때문에 목동에 오래 있었지만. 목동은 살기 좋다.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목동은 쇼핑이 너무 편해서 점심 먹고 백화점 가고 점심 먹고 마트 가고 쇼핑을 엄청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동대문! 집에 가장 오래 있는 장소이긴 하지만 최근 가장 많이 간 장소, 가면 설레고 즐거운 장소 동대문이다. 의류 관련 일을 하는 남자친구를 도와, 혹은 같이? 옷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의상 제작에 있어서 까막눈인 나는 원단과 부자재를 찾고 구입하러 돌아다니고 있는 요즘이다. 정신없고 오토바이 많은 북적북적 한 곳.  다들 바삐 움직이는 곳에 들어가 있으면 나도 열심히 일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원석(샘플 원단)을 보고 옷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나는 곳. 나한테 동대문은 그런 곳이다.
 동대문종합상가 신관, A, B, C, D동까지 지하부터 6층까지 거대한 이 공간은 4천여 개의 매장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공기도 답답하고 내부도 미로 같고 원하는 원단을 찾는 행동이 모래밭에 바늘 찾기 같은 느낌이었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 길도 어느 정도 익히고, 익숙해졌다. 스와치(샘플 원단) 모으러 다니는 게 쇼핑만큼 즐겁다.  

 최근엔 액세서리 쪽에도 관심이 가서 5층을 열심히 다니며 부자재를 구입하고 만들어 보고 있는 요즘이다. 회사에 다녔다면 가볼 수 없는 시간 평일 오전 11시에 동대문의 대형 리본 매장에 앉아서 꽃 열쇠고리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언뜻 봐도 내가 가장 어려 보였고, 다들 주부 같아보였다. 나만 처음이라 어색하지 다들 친하신지 화기애애하고 빵도 나눠먹고 사탕도 나눠 먹으면서 리본을 만들고 있는데 순간 내가 말로만 듣던 문센에 와있는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주부는 아니고 백수인데.. 그들의 시간적 여유와 취미활동이 부럽기도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나는 아직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좀 더 박차를 가해 일하고 배워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리본 수업은 꽤나 즐겁고 재미있어서 자주 가서 만들고 배워보고 싶다.

일과 취미와 즐거움이 함께하는 곳 그곳이 지금 나에겐 동대문이다. 동대문 드림을 꿈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지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