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Apr 17. 2018

놓지마 정신줄

0412 (D-27)

놓지마 정신줄


어제 오전 베네치아를 출발해서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 중앙역 근처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두오모 성당에 도착하니 12시쯤 되었는데 운이 좋았다 하루에 몇 번 하는지 모르겠지만 두오모 앞에 도착하자마자 백마 탄 사람들이 연주하는 걸 봤다 두오모 티켓을 구입했고 성당 입장에만 1 시간 넘게 걸렸다 검문검색이 가장 느리고 엄격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곳은 물건은 엑스레이 기계 같은 곳을 지나게 하고 금속도 그냥 기둥 문을 통과하면 확인 가능했는데 사람이 일일이 앞뒤로 금속 탐지하고 직접 가방을 뒤적거린다 그것도 무서운 군복을 입고 말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두오모 옥상까지 올라가 봤다 추가 요금이 붙는다 가장 비싼 표를 샀다. 점점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정도가 아니라 장맛비 마냥 내린다. 가볍고 폭신해서 좋았던 운동화는 금세 젖어 양말까지 젖어버렸다 으아 우산 들고 돌아다니기 쉽지 않다

그래도 무사히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다 봤고
꼬질 하지만 하늘에 닿으려 노력하는 뾰족뾰족한 첨탑을 가까이서 봤고 아름답고 거대한 스테인글라스 창문도 감상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늦은 생일선물 겸 어버이날 선물 겸 지갑을 하나 사가야 했는데 규모가 상당히 크고 화려한 면세점에 들러 빨간색 지갑을 하나 샀다 거기까진 좋았다 계산할 때 보니까 가방 속에 여권이 안 보이는 거다 여권 사진 찍어 놓은 게 있어서 어째 어째 세금 환전 영수증은 받아왔는데 그때부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어디서 사라진 거지 돈봉투도 버스 티켓 두오모 티켓 전부 그대로인데 여권만 사라졌다 성당 입장 시 두 번 가방검사를 했고 비 오고 정신이 없긴 했지만 성당 관리하는 사람이 그럴리는 없고 멘붕이 왔다 중간에 밥 먹었던 식당에 가서 물어봤지만 못 봤다 했다

어쩌지... 내일 출국인데!!
여기저기 검색 끝에 여권사진 두장과 경찰서에 가서 받는 분실신고증, 여권 사본을 가지고 이탈리아의 주한 대사관에 가서 받아야 한단다 다행히 로마, 밀라노 두 곳에 있다 했고 내가 지금 밀라노이고 다음날 출국이지만 오후 늦게 하니 다음날 가서 어떻게든 단수여권이라도 받아야겠구나 했다

여권사진 두장 챙기면 모하나 사진을 여권 안에 끼워놨는데 두오 모역에서 중앙역 가는 길에 지하철 내의 사진 기계에서 5유로를 내고 여권 사진을 찍었다 귀뒤로 넘기고 앞머리 보이게 하고 얼굴은 번들번들 억지웃음으로 사진을 찍고 호텔로 바삐 왔다 혹시 모르니 호텔 방가서 찾아보고 없으면 중앙역 쪽에 경찰서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숙소 열쇠가 무거워서 외출 시엔 맡기고 나가는데 내방 번호 알려주고 기다리는데 할아버지 직원이 열쇠를 주면서 내 여권을 떡하니 올려놓는다

하아! 나는 격하게 반응하며 한국말로 했다면
"으아 잃어버렸는지 알았어요 이거 가지고 계셨어요? 왜 말씀이 없으셨어요!"라고 했을 거다. 대부분 숙소가 확인하고 바로 줬고 한 곳만 5분 있다 준다고 미리 말했었다. 나도 정신이 없었는지 여권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한국말들이 머릿속에서 요동을 쳤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로스트!"
뿐이었다 할아버지 직원은 참으로 무덤덤하게
"너는 잃어버리지 않았어"
라고 말했다 야속한 사람..



이렇게 내 완벽에 가까웠던 여행의 마지막이 여권분실로 끝이 나는 건가 이탈리아에서 여권 만드는 방법을 포스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한시름 놓았다. 여행 막바지라고 정신줄 놓은 내 불찰이다 어찌 되었던 나는 여권을 분실하지 않았고 촌스럽게 찍힌 여권사진은 이탈리아 밀라노 기념품이 되었다 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