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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Apr 26. 2018

날개 달린 텍스트

0426 (D-41)

날개 달린 텍스트


최근 다녀온 김유정역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소설가 김유정에 대한 검색을 해봤다. 소설 봄봄과 동백꽃을 쓴 작가. 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 교과서에서 본듯한데. 대략적인 줄거리를 확인하고는 
'아 학창시절 간질간질하게 읽었던 그 이야기'
"느 집엔 이런 거 없지" 하면서 감자를 건네던 적극적인 점순이의 이야기 임을 깨달았다. 

 내가 학창시절 교과서로 접했던 김유정의 소설은 다시 읽으려면 고등학교 때 보던 교과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또 다른 김유정의 책을 구입하든 빌려서든 읽을 수 있다. 몇 년도에 출간된 책이든 어떤 출판사든 상관이 없다. 그의 이야기만 고스란히 담겨있으면 그것이 원본이다.(물론 처음으로 출간된 책이 의미 있게 정의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100년 전에 쓰인 외국의 소설도 번역본이긴 하지만 나는 작가가 쓴 그대로를 읽고 느낄 수 있다. 

 문학이 회화, 조각, 건축 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최근에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미술관, 성당에서는 이 작품이 원본이다. 이곳에 원본이 소장돼있다.를 강조하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란 건 문학과 동일하지만 미술작품의 진짜를 보려면 그곳에 가야 한다
원작을 찍은 고해상도 사진을 원본으로 생각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면 생각이 엄청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사진은 원본과 다르다 생각했기에 원본을 직접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먼 나라까지 다녀온 거겠지. 특정 나라의 특정 도시, 특정 미술관 혹은 성당에만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문학이 회화나 조각에 비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훨훨 날아서 전 세계 어디든 자신을 찾는 사람에게 찾아간다. 
내가 글을 써서 올린 블로그의 글이 원본이고 그 후에 브런치에 다시 올린다고 하면 텍스트는 복사되어 옮겨지지만 동일한 원본이 다른 곳에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다. 폰트를 궁서체로 쓰든 돋음체로 쓰든 상관없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텍스트 자체보단 그 안의 내용이 원본이기 때문이겠지

 원본의 그림과 조각을 보기 위해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힘들게 보고 왔는데 그에 비하면 이야기 혹은 문학, 책은 너무도 쉽게 원본을 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 접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등한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문학과 미술은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요즘의 나는 문학과 미술이 인간의 창조적인 활동이라는 같은 범주에 있다고 넓게 생각해서 그런지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감동을 두고 멀리까지 찾으러 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탈리아에서 회화, 조각, 건축을 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의 나날을 보냈지만 원본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고 계속 해외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일상생활, 현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감동에 집중해볼까.

정리해보자면 미술작품은 원본이 한 곳에만 있어서 내가 그것을 보고 느끼고 감동을 받고 싶다면 직접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문학 혹은 글은 원본은 하나지만 자유로운 형태를 가지고 여기저기에 복제되며, 복제되었지만 그 본질은 원본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원하는 곳 어디에라도 찾아간다는 점이 텍스트의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지만 아직까지는 독서가 완벽하게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안 읽게 되면 한참을 읽지 않고 책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천천히 다시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하나씩 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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