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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May 17. 2018

길고양이가 걱정되는 날

0517 (D-62)

길고양이가 걱정되는 날


 몇 년 전 일일 거예요. 저희 집은 4층 연립주택인고 총  8가구가 거주하고 있어요. 건물 뒤쪽으로 바닥이 흙으로 된 공간이 좀 있는데 누군가 꾸며놓은 텃밭 같은 게 있어요. 여름이 되면  풀이 무성해지는데 저는 딱히 가보지 않았어요. 우리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가꾸나 보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건물 뒤쪽 텃밭에  고양이 가족이 나타났어요. 집에 들어가려 하면 휘리릭 고양이들이 건물 뒤쪽으로 도망을 칩니다. 숫자를 세어보면 아기 고양이가 다섯  마리는 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얼룩이인데 아빠로 보이는 검은 고양이도 가끔 보였습니다. 고양이들은 검정 아이도 있고 얼룩이도  있고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어요. '요즘 고양이가 자주 보이네.'라고 생각했는데 건물 뒤편으로 가는 길 바닥에 일회용 접시  같은 게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고양이 먹이를 주고 있는 게 분명해요! 

아기  고양이 여럿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 고양이도 안쓰럽고 아기 고양이들이 눈에 밟혀 저도 고양이 밥을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마트에  가서 처음으로 고양이 밥을 사봤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거라 그런가 양은 적은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어요. 그래도 한번 먹여보자  구입했고 일회용 그릇에 밥과 물을 담아 건물 뒤편에 놔뒀더니 어느새 말끔히 비어있었어요. 신이 나서 고양이 밥을 매일매일 줬고,  아기 고양이용 참치 같은 것도 사다가 놓아주면 고양이들이 기다렸단 듯이 와서 밥을 먹는데 엄마 고양이가 먼저 눈치를 보며 왔다가  제가 멀찌감치 가서 보고 있으면 저를 노려보면서 아기 고양이들이 밥을 먼저 먹게 해줬어요. '고양이의 모성애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길고양이 밥을 주다가 키우게 되는 경우를 여럿 봤어요. 저한테도 그런 로망이 있었습니다. 꼭 키우게 되지는 않더라도 길고양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사료를 여러 번 사는 것도 부담인지라 아예 포대로 파는 고양이밥을 구입하게  되었어요. 대용량으로 사니 마트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해요. 질은 조금 떨어지더라고 많이 먹일 수 있는 걸 사야 했어요. 새로 산  고양이 밥은 물고기 모양에 엄청 진한 감자칩 같은 향이 났어요. 가족이 많으니 제가 주는 양이 모자라지 않을까 싶어서 주차장 차  밑에 고양이밥 파우치를 만들어 놓기도 했고요. 퇴근을 하고 집에 갈 때면 오늘은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 날마다 기대감을 품고  집으로 향했어요. 밥그릇은 항상 비어있었지만 고양이를 매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고양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좋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집집마다 왕래하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건물 입구  안쪽 벽에 화이트보드를 달아뒀거든요. 거기에 공지라든지 의견 같은 게 올라오는데 "주차할 때 문콕 신경 써주세요"등의 내용들이  적힙니다. 그날은 

"고양이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고양이 배설물로 인해 냄새가 심하니 밥 주는 걸 자제해 달라"

라는 글이  적혀있었어요.  제가 계속 밥을 주는 걸 봤던 엄마도 고양이밥 주지 말라고 적혀있으니 주지 말라고 했어요. 화이트보드의 문구 또한 기분 상하지 않게 적으려고 고심한 듯 보였어요. 저도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지속해서 밥을 주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양이 가족이 눈에 밟혔지만 고양이 밥을 주지 못하게 됐어요. 저 말고 밥을 주던 다른 사람도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밥이  없으니 고양이들도 사라졌어요.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새끼 고양이들이 그동안 잘 먹고 어른 고양이로 잘  성장했을지 궁금합니다. 야생에서 고양이들 생존율이 높지 않다고 들어서요.
 
 일을  하느라 밤을 꼬박 지새웠는데 새벽에 비가 엄청 많이 왔어요. 번개도 치고 으르렁 쾅쾅. 무섭게 내리다 잦아들더니 다시 엄청  쏟아집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 예전에 밥을 주던 고양이들 생각이 났어요. 안전한 곳에서 비는 잘 피하고 있을지. 고양이들은  물을 엄청 싫어한다자나요.  비가 많이 오거나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길고양이들 걱정이 됩니다. 제가 밥을 줬던 그 고양이 가족 말고도 길에서 생활하는 모든 고양이들이 걱정되요. 

 저에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거에요. 그리고 마당 한쪽에 고양이 급식소를 차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 눈치보지  않고, 우리집 마당에 급식소를 차려놓고 길고양이들이 와서 물먹고 밥먹고 쉬다가면 좋겠어요. 길고양이가 걱정되는 날입니다.그때 그  고양이 가족이 지금도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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