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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Oct 31. 2022

리추얼로 깨우는 하루

매일 마음을 정돈하는 글쓰기



하루를 살아낼 힘


“달라지고 싶다. 더 나아지고 싶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성장을 갈망해요. 그래서인지 지금 하는 일에서 바로 만족과 성취를 느끼지 못해요. ‘1년 뒤에는, 2년 뒤에는…’ 마음이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미래로 가요. 한참 부족한 ‘지금의 나’를 못 견뎌서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는 일이 제겐 늘 숙제예요.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보내지 못하니까 종종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려요.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일할 것인지 아직까지 풀지 못한 문제에 생각만 많아지고, 다 그만하고 싶다는 감정을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거죠. 집에 있는 데도 집에 가고 싶은 그 기분이요. 마음이 몸을 따라가는지 저질 체력 덕에 제 인생 분의 인내와 끈기가 자꾸 금방 끝나버리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를 지치게 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리추얼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무작정 저를 믿으려 하기보다 믿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매일의 습관이 쌓여 리추얼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식후에 양치질을 하고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하듯이 아주 당연한 습관을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을 먹었죠. 체력을 기르려고 시작한 실내 사이클은 오래가지 못해서 제게 친숙한 도구인 글로 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매일 아침 글을 쓰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를 살아낼 힘, 그만큼만 얻어 보자고.





동틀 무렵 매일의 홀로서기


매일의 글쓰기를 어떻게 리추얼로 만들 수 있을까. 리추얼을 처음 시작할 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글쓰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편이 매일 실천하기 쉬울 텐데, 저는 때와 장소를 정하고 싶었거든요. 말 그대로 ‘리추얼’을 온전히 실감하고 싶어서요. 역시 쉬운 일은 아니네요. 아직까지 글 쓰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요.


리추얼을 시작한 첫 주에는 생활 리듬이 깨져 있던 주이기도 해서 주로 저녁에 그날 느낀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어요. 체력이 바닥나버린 시간에 글을 쓰니까 피로가 어지간히 마음을 산만하게 만들더라고요. 퇴근 후엔 남아있는 에너지가 제로라 저녁도 안 먹고 잠들기 일쑤거든요. 정말 저질 체력이죠? 수면 리듬을 찾은 주에 바로 리추얼 시간을 아침으로 바꿨어요. 생각을 정리하며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졌죠.


전날 푹 자고 눈을 뜨자마자 글을 쓰면서 아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생겨 버렸어요. 동이 트기 전, 한껏 가라앉은 고요함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새벽녘 적막이 흐르는 시간에 키보드를 타닥이며 글을 쓰니까 지구상에 혼자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라고요. 인류의 흔적이라곤 머리카락 한 올도 남지 않은 채, 시간이 멈춘 세계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온전히 혼자인 기분이요. 남동향 집이라 글을 쓰다 보면 동이 터오고 밖이 환해지는 순간을 초 단위로 실감해요. 조금씩 밝아지는 창가에 푸른빛이 감돌고 해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면 온 집안이 붉은빛으로 물들다 노란 햇살이 진하고 깊게 들어올 때쯤이면 어느새 높이 올라간 해를 볼 수 있죠. 하루가 조용히 깨어나는 이 시간이 소중해졌어요. 동틀 녘 혼자만의 세상에서 어둠이 밝아지는 풍경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희망이 제게 생기나 봐요. 마침내 홀로서기를 잘 해낸 것처럼요.





미크로스코프 me-croscope


시월 한 달 동안 열네 번의 리추얼을 하면서 제 일상을 촘촘하게 살펴보는 관점이 생겼어요. 저는 이걸 ‘나를 들여다보는 나만의 현미경’이란 의미로 ‘미크로스코프(me-croscope)’라고 부르고 싶어요. 미크로스코프 덕분에 무수히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게 됐어요. 리추얼 첫 주에는 글을 쓸 때 떠오르는 대로 생각과 감정을 쏟아냈는데, 두서없는 끄적임이 달갑지 않더라고요. 제 마음을 글자로 정신없이 널브러뜨린 글 같았어요. 보고 있으면 어쩐지 더 심란해지는 기분이었죠. 그러다 글을 쓰는 시간도 옮기고, 기록할 주제도 정해서 썼어요. 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문체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쓰기 시작했고요. 나에게 맞는 글쓰기를 찾아가니까 흐릿하게만 보이던 생각과 감정이 분명해지더라고요. 어질러 놓은 물건을 치우는 일처럼 흐트러진 생각을 제때 정리해서 매일 마음을 단정하게 만드는 일, 그렇게 리추얼이 제게 자리 잡았어요. 평소 같으면 기록하지 않을 평범한 순간에 대해서도 제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죠.





느슨한 연대, 에세이 살롱


‘매일 글쓰기’를 시도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성공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줄리아 카메론의 저서 ‘아티스트 웨이’에서 권하는 모닝페이지도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일이 숱했죠. 이번에는 뭐가 달랐을까요?


리추얼 플랫폼 밑미​의 <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 리추얼 소개글

주말에는 일주일 동안 쓴 글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를 찾아보고,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1,000자(A4 반장) 이내의 한 편의 초고를 써봅니다. 사적인 일기가 에세이의 글감이 되어 에세이 초고를 얻을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바로 커뮤니티예요. 시기도 주제도 제게 꼭 맞는 밑미 리추얼을 시작했거든요. 리추얼 메이커인 보리님이 운영하는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 주중에는 일기를 쓰고 주말에는 에세이 초고를 쓰는 리추얼이었죠.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어 참여했어요.

리추얼을 통해서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된 채, 카카오톡으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마다 자신이 쓴 글을 함께 나눴어요. 세 번의 줌 미팅으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다른 사람들은 일상에서 리추얼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어떤 사유를 하는지 매일 볼 수 있었죠. 서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식과 안부가 궁금해지는 이웃이 되어 가는 거예요. 시월의 3주 동안 매일 저녁 밑미 메이트들과 함께한 순간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해 꿈처럼 열렸다 사라지는 에세이 살롱에 와 있는 기분이었어요. 매일 글을 쓰는 재미가 쏠쏠할 수밖에요. 거기다 리추얼 메이커인 보리님이 “딱 5분만, 세 줄만 써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보아요”하는 응원이 매일 아무 말이라도 적을 수 있는 힘이었죠.


두 번째는 일상을 작게 잘라 쓴 글쓰기예요. 리추얼 첫 주에는 모닝페이지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니까 생각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제게는 맞지 않는 방식이었던 거죠. 보리님이 진행한 밑미 리추얼에서 에세이 주제를 정하는 줌 미팅을 한 후에 한결 정돈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가장 집중해서 쓴 주제는 꾸준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글쓰기 리추얼이었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집 꾸미기와 회사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까지 더해 일상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썼죠. 쓰다 보니 제가 매일 지내는 일상을 작은 주제로 나눠서 기록하는 셈이더라고요. 리추얼, 집, 일, 이 세 가지가 제 일상 전부라서요. 매일 겪는 일상을 작은 단위로 쪼개 그날 일어난 일과 느낀 감정을 한 두 줄이라도 꾸준하게 기록하다 보니 선명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어요. 매일의 기록을 보면서 제 삶에 대한 저의 견해가 분명하게 읽혔거든요. 날 것의 생각을 잘 다듬는 데에 글만 한 도구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날마다 마음을 단정히 정돈하는 즐거움을 맛봤죠.




오늘도 여전히 리추얼


그래서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에 눈을 떠 책상에 앉아 일출을 즐기며 글을 씁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이라는 도구로 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죠. 그렇게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리추얼 첫 달은 생각의 초점을 뚜렷하게 맞춰 나가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의 리추얼은 제게 어떤 시간이 되어줄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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