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이라며, 말미잘이라며!
지난여름, 제주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서귀포에 일이 있어 출장 겸 갔던 여행인지라 내내 서귀포에 머물러 있었다. 출장 일정을 겨우 끝내고 숨을 돌리려던 차에, 이럴 수가, 서귀포 하늘에는 까만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놀 수 있는 날은 오늘과 내일, 단 이틀뿐이었는데 말이다. 문득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주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날씨가 정반대라고, 서귀포시에 비가 오면 제주시가 맑고, 제주시에 비가 오면 서귀포시가 맑다고 했다.
'그래! 내가 지금 서귀포에 있으니까, 제주시로 넘어가면 화창할 거야!'
차로 편도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고작 이틀도 안 남은 일정에서 흐린 날씨 탓에 해수욕 한 번 안 하고 갈 수 없었다. 차를 열심히 몰아서 제주시 판포 포구라는 곳에 도착했다. 스킨 스쿠버 체험을 하고 스노클링도 하며 한여름의 제주 바다를 아주 제대로 즐길 작정이었다.
판포 포구는 '어서 와~ 판포는 처음이지~?'라고 다정하게 말하며 맑은 날씨로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것만 같았다. 모래사장이 깔린 해수욕장은 아니었고, 낚시하는 곳도 있고, 비스듬한 경사면을 내려가면 바로 수심이 꽤 깊은 바다로 이어지는 항구 형식의 포구였다. 스윽 구경하고 있는데, 바다와 이어진 경사면에 무언가 죽은 듯한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해파리 사체 같았다. 동행했던 친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해파리 아니야, 말미잘이야." 나는 바닷가 출신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스킨 스쿠버 체험을 마치고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서 래시가드만 입고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채 "이야호~!" 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수면에 둥둥 떠서 스노클링 수경으로 맑은 바닷속을 막 보려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오른손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 하는 고통과 함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등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아. 해파리다. 이건 해파리야!' 눈으로 해파리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손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아름다웠던 바다가 순식간에 너무나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경사면을 향해 죽을 둥 살 둥 헤엄쳤다.
우리가 본 사체는 말미잘이 아니라 해파리였으며 바닷가 출신 친구는 그날 저녁을 거하게 샀고, 도망치던 내 수영 속도가 박태환 선수보다도 빨랐을 거라고 했다.
응급 처치도 하고 병원도 다녀와서 지금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물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여름휴가, 아니 찌릿한 해파리의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