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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16. 2022

#26 동영상 오디션에 합격하셨습니다.

힙합의 기쁨과 슬픔 (2)

(이 글은 바로 직전 글인 #25 "야, 너 랩 해봐."에서 이어집니다.)


    처음 보는 선배 앞에서 통성명도 아직 못했는데 졸지에 랩을 해야만 했다. 당시 즐겨 부르던 랩은 다이나믹 듀오의 '서커스' 뒷부분에 나오는 래퍼 도끼의 . 가사를 전부 외운 랩은 이것밖에 없었으므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려운 게 어디 있어요 man

오늘도 바쁠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

아직은 모든 것에 서툰 나를 걱정해 주는 건 I appreciate

아주 고맙게 느끼지만 어쩔 수가 없는   고집

때문에  깊숙이 박혀버린 도끼처럼 이미 박혀

버린 나의 맘이 나의 Style이 너무 hard해

안 어울린 단 말 내게 좀 그만해요 please stop

Now man I'm tired 언제나 gentle하게 최고라도 아니란 멘트

사람들 앞에서 날리는 건 hell no I can't do that ain't cool

난 할래 난 갈래 형들 말 처럼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길 끝까지 갈래

That's me 그게나 yeah ya' know my steelo

도끼 a.k.a. gonzo I'm tha best 내가 최고 형들이 아무리 그래도

내 맘은 변함 없으니 그만 해도 돼요


    족히 오백 번은 따라 불러봤을  랩을 선배 앞에서 무려 무반주로 했다, 아니 해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출사표처럼 느껴지는  랩을 뱉고는   힙합동아리의 신입 멤버로 들어갈  있었다.

    당시 힙합동아리의 남자, 여자 비율은 거의 9:1이었는데   없는 여자 선배마저도 래퍼가 아닌, 그저 힙합이 좋아서 동아리에  '매니저' 포지션이었다. 나는 그렇게 대략 20명의 남자들이 활동하는 학교  유일한 힙합동아리의 유일한 여성 래퍼가 되었다. 벌스와 , 싸비 등의 전문 용어를 배우고 가사 쓰는 법도 배웠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없이 동아리방에 찾아가면  누군가는 컴퓨터로 비트를 찍고 있었고, 누군가는 장판에 드러누워있었다. "안녕하세요!"가 아닌 "가사 썼어? 연습했어?"라는 인사말이  자연스러웠다.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학교   동아리의 공연이 있을 때는 찬조 공연도 했으며  대학 축제에도 초대받아 공연을 하러 가곤 했다. 유일한 여성 래퍼라 그런지 무대에서 선배들 사이로 내가 나오면 반응이 뜨거웠었. 선배들은 그런 나를 클라이맥스 부분에 넣곤 했으며, 함성은 두배 세배  커졌다.

    그렇게 인생에서 다시없을 호시절을 누리던 , 힙합동아리를 흔들고도 남았던 일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엠넷에서 아마추어 래퍼들의 경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 랩을 오래 해온 선배들은 당연하다는  지원을 했고,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선 '나도 지원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마구 꿈틀거렸던  같다. 결국 지원 마감 바로 전 , 동아리방에서 랩 하는 영상을 급하게 찍어서 지원서를 냈다. 며칠 , 온라인 오디션을 통과했으니 상암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답장이 왔다.


메일함에서 발견한 당시의 지원 메일



(이 글은 '힙합의 기쁨과 슬픔' 3부작 중 2편입니다. 오디션의 결과는 바로 내일 업로드됩니다.)




- 파랑 -

그때를 생각하니 용광로가 생각이 납니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던 여성 래퍼 시절...! 조금은 그립네요.

자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마음엔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이 중 내보일만한 것이 있나 하고요.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서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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