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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17. 2022

#27 쇼미더머니에 합격하다

힙합의 기쁨과 슬픔 (마지막)

(이 글은 직전 글 1편, 2편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3편입니다. 1,2편을 읽으시고 본 글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creatorparang/118

https://brunch.co.kr/@creatorparang/122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상암, 화창했던 날씨, 그리고...


    스무 명 남짓 되는 동아리의 래퍼들이 모두 지원했고, 동영상 합격 메일을 받은 건 예닐곱 명쯤이었다. 한창 믹스 테이프를 준비하던 노련한 선배와 이제 막 가사 짓기를 시작한 햇병아리 래퍼인 나까지. 우린 그렇게 안내받은 날짜에 모두 상암으로 모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었고, 상암 엠넷 건물 앞에는 엠넷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커다란 빌딩들의 기세에 흠칫 쫄았지만 이내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니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아침 일찍부터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로 엠넷 앞 야외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남녀 비율은 남자 래퍼가 서른 명 있다고 가정하면 여성 래퍼는 한두 명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우리 또한 일찍 도착했지만 대기를 한참 했고, 또 몇몇은 그 사이사이에 이미 인터뷰를 하고 있기도 했다. 지원서를 서류로 다시 쓰고, 대기만 몇 시간을 거듭하고서야 드디어 오디션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1차 예선이었기 때문에 여러 명이 줄지어 서있었고, 내가 있는 구역의 심사를 맡은 래퍼는 당시 '북 치기 박치기' 광고로 유명했던 MC후니훈 님이었다. 심사를 맡은 래퍼가 자신의 앞에 서면 준비해온 랩을 선보이면 되는 식이었다. 나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생애 처음 써본 가사 16마디의 랩을 했고,


결과는 무려 합. 격.

후니훈 님이 내 티셔츠 위에 합격 스티커를 척 하니 붙여주셨다.


내가 참여했던 시즌 1은 목걸이가 아니고 스티커였다.


    그 뒤의 시간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합격했다는 기쁨이 얼마나 크던지. 그렇게 1차 예선에 합격했고, 오디션장을 나와서 동아리 선배들을 만나니 합격한 건 나와 다른 남자 선배 딱 두 명뿐이었다. 잔뜩 흥분한 채로 점심을 먹었고, 2차 예선을 위해 대기를 또 한참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차 예선을 보지도 못했는데, 2차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를 발표한다는 안내를 받은 것이다. 아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모든 방송이 얼마나 치밀한 연출과 계산 아래 진행되는지를. 순진했던 스무 살의 나는 오디션이 순도 100%의 진짜 오디션일 거란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현장 인원은 대략 천명쯤이었고, 1차 예선 합격자는 80명, 거기서 오디션 없이 2차 예선 합격자를 추려서 본선에 진출시켰다고 했다. 어찌나 화나던지. 속상한 마음에 동아리방에서 선배들과 술을 들이켰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공부에 집중하느라 동아리와는 서서히 멀어지고 말았지만, 쥐고 있는 내내 참으로 뜨겁디 뜨거웠던 '유일한 힙합동아리 내 유일한 여성 래퍼' 타이틀이었다.



    지금도 냉장고엔 그때 받은 쇼미더머니 합격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 스티커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깃들어있다. 푸르렀던 젊은 날, 뜨거웠던 도전, 오디션 합격이라는 특별한 경험, 무대 위에서 들었던 커다란 함성소리까지... 대대로 가보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 파랑 -

심한 장염에 걸려서 고생 중입니다. 와중에 시리즈물이라 글감 고민을 안 해도 돼서 어찌나 다행인지요. 옛 생각에 마음이 찌르르, 합니다.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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