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요.
친한 동생이 한 명 있다. 우리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놀랍게도 에픽하이가 나온다. 선영이와 나는 에픽하이 팬카페에서 만났다. 오랜 공백을 깨고 에픽하이의 컴백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웃돈까지 얹어서 콘서트 맨 첫 줄 표를 구해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콘서트에 혼자 가는 게 두려워 에픽하이 팬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몇 명을 눈여겨보며 채팅을 시도했었다. 그중 한 명이 이 친구, 선영이다. 콘서트 당일에 직접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콘서트가 끝난 후에는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에픽하이의 전곡을 부르기도 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선영이와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으나, 함께 알던 다른 친구와 연이 닿아 오랜만에 셋이 함께 보게 되었다.
선영이는 미술을 전공하고,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직장 내 불합리함이 어마어마한 것 같았다. 10년 전,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뽀얗고 말간 얼굴로 에픽하이가 어떻고, 가요계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들로 몇 시간이고 떠들던 우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새빨간 마라생선찜에 눈물 콧물 흘리며 쓰디쓴 맥주를 마시고, 진로 고민과 이직 고민을 토로하는 흔하디 흔한 어른이 돼있었다.
주고받은 많은 이야기 중, 마음에 진득하게 남은 선영이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본다.
"언니, 나는 미술을 전공했잖아. 항상 짝사랑하는 기분이야. 미술을, 그리고 예술을..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를 계속 바라보면서, 동경하면서.. 꼭 짝사랑하는 사람처럼. 이 짝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
'달과 6펜스'를 쓴 작가 서머싯 몸은 인간이 닿고자 하는 숭고한 예술의 경지를 '달'로, 그 외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6펜스'로 표현하였다. 1펜스를 환산하면 대략 15원쯤 된다. 월급, 커리어, 현실 등.. 이 모든 걸 통틀어 6펜스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돈으로 6펜스는 약 90원쯤 된다. 나 역시도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선영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6펜스, 90원의 무게가 우리에겐 참으로 무겁다. 현실이 '달'이 되고, 예술을 짝사랑하는 마음은 '6펜스'가 되는 세상 속에서, 서로만은 그 짝사랑을 '달'로 만들어주고 싶다.
휘영청 빛나는 커다란 달을 바라보며, 옆에서 어깨동무 스윽 둘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아야지.
- 파랑 -
이번 글은 쓰면서 다시금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예술을 짝사랑하는 달뜬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를 않네요.
메모장 목록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쓸만한 거 없을까, 하고요.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