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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탄-1] 서른,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 오다.

부제 - 과유불급 :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by 파랑

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전날 저녁에 카푸치노가 너어무 맛있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장시간 젖은 상태로 있다 보니 몸이 속까지 차가워졌다. 차디찬 식도에 부드럽고 섬세한 우유 거품과 그 속에 숨은 따끄은한 라떼가 흘러들어 가니 몸이 데워지면서 ‘이거다.' 싶었던 거다. 한 잔에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뷔페’니까… 그렇게 연거푸 3잔을 마셨다. 스위트룸에서는 잠도 스윗하게 솔솔 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커다랗고 커다란 방의 크나큰 침대에 혼자 누워있자니 마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마저 들었다. 모닝커피도 아닌 디너커피, 그것도 무려 석 잔의 영향도 분명 있었으리라.



전날 몇 시인지 모를 새벽에 힘겹게 잠에 들었다. 잠에 들면서도 걱정을 놓지 못했다. ‘아 조식 무료인데.. 못 일어나면 어쩌지.. 아 아침 수영도 꼭 해야 하는데.. 음냐음냐..’ 기우였다. 파노라마 통창 덕에 눈이 부셔 알람 없이 자동 기상한 것이다. 푹 자고 싶으면 블라인드를 쳤어야 했는데, 야경에 심취해 그대로 두고 말았다.


아침 수영은 7시부터, 조식도 7시부터 시작이다. 뭐든 첫 타임을 가장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아침 수영장. 그 차분함과 고요함이 좋고, 뷔페는 모름지기 첫 타임에 완벽히 세팅된 그 상태를 좋아한다. 예쁘게 챡챡 세팅되고 데코 된 음식들을 처음 건드리는 그 기분! 그 기분을 아주 좋아한다.


뒤늦게 앗차차 싶었지만 대체 '스위트룸에 모두 포함'이 뭐길래. 평소 같았으면 ‘아, 너무 피곤해. 나 그냥 아침 안 먹고 잘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생일대의 스위트룸에 와있다. 아주 비싸다. 그 안에는 모든 부대시설 및 뷔페가 포함이다. 소위 ‘뽕을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잘 순 없었다. 조식 뷔페와 아침 수영은 날라가는거다, 그만큼의 돈도!


내 돈! 안 돼!


시간은 정각 7시. 분명 아침 수영장 오픈 시간은 7시랬는데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그새 수영장에 예닐곱 명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7시 땅! 하기 전에 내려간 거 같은데 그럼 새벽 6시에 일어난 거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어딜 가도 있다. 원래의 계획은 잠을 푹 잔 후에 7시에 일어나서 고요하고 차분한 아침 수영을 즐긴 후 조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으나 이미 수영장에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바로 배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피곤하고 졸린데 빈 속으로 바로 수영을 할 기운도 없었고, 일단 따땃하게 배를 채우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8시에 내려갔는데 마지막 창가 자리가 딱 내 앞에 손님들 차지로 끝이 났다. '다들 증말 부지런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부스석에 앉았다. 피곤하니 식욕도 없어서 조식 뷔페를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본래 기본 룸에는 수영장 쿠폰이 1일 1회다. 무려 스위트룸 2박 3일을 결제한 고객이지 않던가...! 나에게는 하루에 2번씩 갈 수 있는 쿠폰이 있었다. 조식 뷔페를 다녀온 후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자고 싶었지만 그 쿠폰은 되팔 수도 없었고, 안 쓰면 무용지물이 되고, 스위트룸 금액에 모두 포함된 것이므로...


내 돈! 자면 안 돼!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스위트룸 이튿날 시점의 글입니다. 마냥 행복했던 첫째 날과는 조금 다른 온도라 글을 두 편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은 '4탄-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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