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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03. 2021

[4탄-2] 서른,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 오다.

부제 - 진정한 배려란


    오늘은 '그 분'이 오는 날이다.


    이 호캉스의 시작이었던 그분. 혼캉스를 하면 힐링이 된다며 추천 추천을 거듭하더니 자매시간을 이 호텔로 정해주신 그분. 이 호텔 수영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세상 힐링이었다는 그분. K-장녀 대표주자. 나의 언니. (읽기의 편의를 위해 ‘S’로 칭하고자 한다.)

S의 카톡


    S로 말할 것 같으면 때로는 엄마보다 더 큰 사랑을 나에게 아낌없이 쏟아주는 사람이다. 이번 스위트룸 객기에 그 사랑이 8할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혼자 스위트룸을 쓴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모처럼 둘이 보내는 시간이었고, S는 이 호텔을 좋아하니까. 무언가 선물해주고 싶었다. 둘이 묵으면 돈이 덜 아까운 느낌도 드니까 그렇게 이 호텔 스위트룸에 오게 된 거다.

    ‘그녀를 위해서’라는 어색한 변명 아래, 첫날은 혼자 세상 행복해하며 보냈다. 아무리 행복해도 혼자라 은근히 쓸쓸했던 차, S가 오는 날이 되니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쓰다만 스위트룸의 너저분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서 오기 2시간 전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게 ‘촤라라~ 라라라라~’ 였으면 했다. 아침에 수영장 쿠폰을 써야 해서 선베드에 내내 있었는데 와중에 수영장과 룸을 오가며 룸 청소 상태를 확인했다. 전날 일찍 체크인한 탓에 웰컴스낵과 레드와인이 세팅이 돼있지 않았어서 세팅도 부탁드렸다.


웰컴스낵은 한과다.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후, 침대에 풀썩 눕고 싶었지만 푹 꺼진 침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왔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빛으로 전날 업무 이슈가 생겨서 잠을 매우 늦게 잤다고 했다. S는 요즘 업무상 무척이나 바쁜 시즌 한가운데에 있었다.

    철부지 동생은 ‘언니를 위해 이 동생이 스위트룸을 결제했다! 언니를 위해서! 얼른 기뻐해 줘!’라는 스스로의 오만한 뽕에 취해 S의 컨디션을 배려하지 못했다. 신나 하지 않는 S의 리액션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핸드폰 잠금 화면이 밝아지더니 ‘브런치’ 알림이 뿅뿅 뜨기 시작했다.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2000을 돌파했습니다!'


엥?!?!?!?!?!?!?!?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브런치 글의 조회수를 살펴본 적도 없지만, 뜨는 알림이라고 해봐야 ‘ㅇㅇ님이 라이킷했습니다.’ 정도였다. 사실 그것도 ㅇㅇ님의 존재는… 글쓰기 모임의 일원이었다. 새로운 누군가가 조회를 해주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근데 조회수가 천을 넘었다고요? 그리고 바로 또 이천을 넘었다고요?

 “꺄~악!”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살면서 그렇게 기쁜 순간은 또 처음이었다. 정말 만화 속처럼 펄쩍펄쩍 뛰게 되더라. 브런치는 카카오 것이 아니던가. 그 카카오는 다음 것이 아니던가. 이 소박한 일기 같은 에세이가 무려 다음 포털 메인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여 검색해보니, 종종 있는 일인 듯했다. 다음의 신인 작가 응원법인 것 같다는 추측성 글들이 여럿 있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초초초 흥분 상태였다. 얼른 이 기세를 몰아서 2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포털 메인에 뜬 내 글과 사진. 두둥..!


    그렇게 세상 신난 나와 세상 피곤한 S, 우리 둘은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수영장에서 S는 책을 읽었고 나는 노트북으로 2탄을 부리나케 쓰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캠프파이어처럼, 두툼한 장작이 지펴진 듯 열정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런데 S가 수영장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룸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 수영은 6시가 아예 끝이고, (밤에는 수영장을 오픈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려온 지 얼마 안 됐는데.. ‘S는 이 수영장에 있는 게 너무 좋아서 이 호텔에 온다고 했는데, 왜 벌써 들어가려고 하지?’ 의아했지만 그렇게 수영장 짐을 정리해서 룸으로 올라갔다. S는 휴식을 취했고, 나는 여전히 신난 상태로 2탄을 썼고 바아로 올렸다. 그새 브런치는 조회수 2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당시의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지도 어언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미비한 반응에 스스로 지쳐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스위트룸을 오게 되었고, 그 생경하고 아름다운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잠 안 오는 새벽에 노트북을 켜서 우다다 글을 쓴 것이다. 그리고 휘릭 올렸다. 몇십 번 몇백 번 고치고 또 고쳐서 쓴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좋은 반응을 얻는다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S랑 디너 뷔페를 먹고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하며 사진도 몇 장 찍고, 룸서비스로 그 유명하다는 ‘호텔 망고빙수’도 시켜먹었다. (비주얼 100점, 맛은 10점…)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세상 신난 나(동생)와 호텔에 있어도 업무로 인해 머리가 많이 아프고 피곤했을 S(언니)를 생각해보니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배려’를 했던 것이다. ‘상대방을 고려한 진짜 배려’가 아닌 ‘내가 생각한, 내가 하고 싶은 배려’. 마치 다섯 살 아가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 스티커를 큰맘 먹고 주는 것처럼. ‘배려’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자매의 행복한(행복하기만 한) 호캉스’를 바랐다고 해도, 바쁘고 피곤했을 S를 조금 더 진심으로 배려해주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S가 신나고 내가 피곤했다면 S는 그런 나를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었을 텐데. S는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면, 전복삼계탕을 직접 끓여줄 정도로 깊은 배려를 해줬었다. 이것이 장녀와 막내의 갭인가? (분발해라, 나...!)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저쨌든, 이렇게 스위트룸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 2박 3일 스위트룸에는 조식과 디너가 라운지 뷔페로 제공된다. 뷔페 음식이다 보니 첫째 날과 음식이 똑같을 줄 알고 둘째 날 디너는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먹으러 갔다. 이게 웬걸. 모든 음식이 다 새로운 메뉴였다. 그리고 다 맛있었다. 라운지 뷔페라 매일 메뉴가 같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글의 흐름상 디너에 대한 내용은 담지 못하여 아쉬워서 이렇게 사진과 함께 덧붙인다. 음식 참 슴슴하니 맛있었고, 분위기와 친절함 모두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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