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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28. 2021

[5탄-1] 서른,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 오다.

부제 -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아. 체크아웃하는 날이다…..”


    믿 . 을 . 수 . 없 . 다 .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니…

    스위트룸에서의 꿈같은 두 밤이 모두 지나갔다. 첫날에 못 자서 피곤했던 터라 일찍 잠에 들었고 아주 푸우욱 잘 자고 일어났다. 체크아웃은 오후 2시. 오후 2시까지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리라, 남김없이 즐기리라, 비장한 다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룰루! 조식 먹으러 가야지!’


    카드키만 덜렁 들고 내려가려다가 계속 읽던 책을 챙겼다. 라운지에 덩그러니 앉아 혼자 창밖을 보며 조식을 먹었었는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책과 함께니까. 마지막 날은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노는 동안 비가 왔으면 참 슬펐을 텐데 체크아웃하는 날에 비가 오니 그마저도 마치 세상 행운아인 것처럼 느껴졌다.



     보슬비가 오는 아침 7시.

    호텔 라운지로 내려갔다. 일, 월, 화 숙박했으므로 일월은 휴일에 연차를 껴서 많이들 쉬지만 화요일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사람이 훨씬 없었다. 그랜드 하얏트 라운지 특유의 높은 천장, 어두운 원목 가구, 거기에 살짝 흐린 하늘, 보슬보슬 내리는 비, 어렴풋이 저 멀리에 보이는 회색빛 빌딩 숲. 머무르는 내내 맛있게 먹었던 따끈한 카푸치노를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너무 웃기다.


    똑같은 환경인데도 느끼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어제의 조식은 밤새 잠을 못 이룬 탓에 입도 깔깔하고 피곤하여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분위기 또한 안중에 없었다. 새삼 ‘잘 먹고 잘 자기'의 기본 원리가 참 맞는 말임을 깨달았다. 푹 자고 왔을 뿐인데 어제와 오늘의 조식 느낌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따뜻한 카푸치노에 연어, 잡곡빵, 야채 조금. 어렸을 때부터 밥을 먹는 순서는 가족 내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줄곧 꼴찌였다. 그만큼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른이 될수록, 무리 지어 생활하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 보지 않기 위해 식사 속도는 한껏 빨라져만 갔다. 지금은 더욱이 여유를 부리는 게 가능하다, 혼자 있으므로. 책을 읽으며 한식-양식-과일 순으로 총 3 접시를 가져다 먹고, 몸에 좋은 비트 주스에 마무리로 카푸치노까지. 한참을 꼭꼭 씹고 우물우물거리면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모든 게 느으릿 느으릿, 좋아하는 속도였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래, 나 원래 느린 사람이었지. 이걸 잊고 살았네.


    체크아웃하는 날이다 보니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조식을 더욱 온전히 즐기려는 마음까지 더해져서 제 속도를 찾은 참으로 행복한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룸에 올라와서 밖을 내려다보니 수영장엔 비가 내리며 일렁이는 물결이 보였다. 내려갈까 말까. 그러다 이번 스위트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타원형 욕조가 보였다. 목욕 원 모얼 타임!!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며 책을 마저 읽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와중에 뜬 반가운 알림.


(다음 글은 5탄-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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