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Oct 16. 2021

표절의 추억

몹쓸 추억, 쓰디 쓰다.

    브런치를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글 쓰기가 망설여질 때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중 한 가지 큰 이유는 바로 '표절'이다.


    표절은 종종 음악, 드라마 등 예술계통에서 이슈가 되곤 했다. 동화책 제목을 걸그룹 이름으로 짓거나 소설의 문장을 노래 가사로 그대로 쓰거나 하는 등. 지적 재산이나 저작권이라는 게 아직은 어렵기에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어이고, 저런...' 하고 넘어갔다.


그 일이 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코시국 이전에, 소셜 살롱에서 활발히 활동한 적이 있었다. 드립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사람들을 모아서 드립 커피를 내려마시기도 하고, 장비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소개도 하고... 내가 주최한 모임들이 쌓여서 모 플랫폼에서 드립 커피 클래스를 열게 되었다.


    노래 가사 중 "캬, 이거 죽인다." 하는 구절을 '킬링 벌스'라고 한다. 글 쓸 때 킬링 문장을 쓰려고 한참 고민하는 편이다. 여러 클래스 중에서 내꺼를 누르게 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모임의 제목, 부제, 소개 글까지 정성 들여서 썼다. 그렇게 한 달간 플랫폼 측에서 대대적으로 클래스를 홍보해주셨고, 내가 쓴 제목, 부제, 소개글이 여기저기 적잖이 보여졌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었고, 커피 수업 특성상 마스크를 철저히 쓰기가 쉽지 않아 무기한 보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일은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지인이 나에게 연락하기 전까진 말이다.


    "ㅇㅇ님! 이거 ㅇㅇ님 클래스죠?"


    소셜 살롱에서 알게 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캡쳐에는 믿지 못할 사실이 담겨 있었다. 내가 클래스를 열려고 했던 똑같은 플랫폼에, 똑같은 제목, 똑같은 부제, 심지어 호스트 닉네임까지 똑같았다. 이건 누가 보아도 표절이었다. '핸드 드립 커피 클래스' 같은 흔한 제목이 아니었고, 몇 날 며칠을 고심하여 만든 문장이었고, 부제였고, 닉네임이었다. 클래스 안내 글을 읽어보니 한 카페의 사장님이셨고, 글 내용까지 매우 똑같았다. 플랫폼에서 검색해보니 내가 클래스를 연 후에 시작된 클래스였다.


    이럴 수가 있나. 황당했고, 분노했으며,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클래스를 구상하며 여러 번 대화를 나눈 플랫폼 매니저분께 장문으로 연락을 드렸다. 이어진 장문의 답변. 요지는 '호스트님의 마음은 충분히 압니다. 참 속상하네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도 규제를 하기가 어렵다, 블라블라•••'.


    단어를 훔치고, 문장을 훔치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 또한 절도다, 절도. 이 일 후로 오픈된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