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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29. 2021

아는데 몰랐다가, 다시 또 알게 되는

정말 먼 곳, 정말 가까운 곳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은 어제도 오늘도 새파랗고, 싱그럽게 푸르던 초록잎들은 어느새 노랗게, 빨갛게 각각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단풍이 이렇게 예뻤나?'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함께 산책을 하다가 '장미 정원'이라는 곳을 우연히 들어갔는데, '나요, 날 좀 봐줘요!' 누군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니, 장미, 장미, 장미...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진 장미들의 천국이었다.

빛깔은 어찌나 또 다르게 저마다 예쁘던지.

엄마를 보니 사진을 팡팡 찍으시며 나보다 더 좋아하시고 계셨다.


"엄마, 엄마는 꽃이 그렇게 좋아?"

"나이 들면 더 절절하게 예뻐, 사무치게 예뻐."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이,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더 예쁜 단풍을 보러 설악산에 가 볼까?'

'아냐. 일도 바쁜데 거길 언제 또 가...'


은행 atm에 가는 길이었다. 세상에.

집 코 앞에 이렇게나 예쁜 단풍들이 펼쳐져 있었다.

왜 꼭 멀리 가려고만 했을까?



    예쁜 것들은 애를 써야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앞에 펼쳐진 단풍이 너무, 예뻤다. 참 많이 고마웠다.



정말 먼 곳

                                       - 박은지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바스러지고

뿌리는 튀어나오고 견디지 못한 풀들은

툭 툭 바다로 떨어지고

매일 무언가 사라지는 소리는

파도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거야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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