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will be fine.
때는 3년 전, 엄마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이다. 먼저 유럽여행을 혼자 다녀왔던 친언니가 계획을 짜주었는데, 문제는 MBTI P(즉흥형) 성향이 다분한 엄마와 나의 여행을 파워 J(계획형)인 언니가 짜주었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대략 2주간 정말 촘촘하기 그지없었다. 장장 13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뎌내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밤, 바로 다음날부터 가우디 투어(가우디의 건축물을 하루 종일 보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도 나도 도착과 가우디 투어를 겪고 난 후에는 둘 다 체력이 방전되어 언니가 짜준 계획은 참고만 하고 그날 그날 컨디션과 날씨 등을 고려하여 자유여행을 하기로 둘 다 약속했다.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세비야, 그라나다, 네르하, 론다... 스페인 소도시 5개를 일주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아주 아주 바쁘게 돌아다니고,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도착했을 당시의 일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타일이 건물 외벽에 온통 붙어있는 아줄레 르 양식의 작은 건물들이 참 예뻤었다. 엄마랑 신나게 이곳저곳 구경하며 다니고, 저녁에는 일명 '해물 국밥'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현지 레스토랑에서 국물이 자박한 해물 토마토 리소토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새벽에 있을 일은 꿈에도 모른 채.
숙소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잠에 들었는데, 잠에서 깰 정도의 통증이 배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몇 시였는지 시간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주변이 온통 깜깜했던 기억뿐.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 위에 앉아있는데 이윽고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건 대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변기에 앉은 자세 그대로 바지춤만 겨우 올리고 방으로 다시 기어가다시피 했다. 엄마를 깨우고, "엄마.. 나.. 배가.." 이 말밖에 못 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다음 기억으로는 숙소 주인 내외가 나오셔서 119를 불러주셨다. 구급차를 기다리면서도 계단 난간을 붙잡고 "으으.." 하는 신음만 간신히 내뱉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구급차가 드디어 도착했고, 나의 구겨진 몸을 구급대원 두 명이 간신히 펴서 들것에 눕혀 구급차를 탔다.
"Look at me. Take a breath. Slowly. You will be fine."
아직도 얼굴이 기억나는 여성 대원, 남성 대원 각 한 명이었는데 그들은 나의 양손을 따듯하게 잡고는 위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제 눈을 보세요. 숨을 천천히 쉬세요. 당신은 곧 괜찮아질 거예요."
병원에 가는 내내 구급대원분들의 따듯한 체온을 느끼며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고, 숨을 깊게 또 천천히 쉬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복통이 점점 잦아들더니,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제 발로 휠체어에 탈 수 있었다.
외국 병원의 특성상, 접수를 하고 의사를 한참 기다리게 되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통이 없었다. 병원에 급성 위경련이었던 것 같다고, 이제 괜찮으니 가보겠다고 말한 후 엄마와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구급대원분들의 눈빛과 말이 생각난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마법 같았던 그 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때의 따듯함과 편안해짐을 기억하려고 한다. 글을 쓰며 또 되뇌어본다.
"Look at me.
Take a breath. Slowly.
You will be fine."
- 파랑 -
어제 쓴 글의 영향을 받아 오늘은 오전 중에 글을 썼습니다. 스스로 정한 그날 그날의 마감기한인 밤 12시는 아직 멀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네요. 숨을 천천히 가다듬어봅니다.
두피를 꾹꾹 누르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을까, 참신한 글감이 없나 고민합니다.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브런치에 매일 올리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