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Aug 10. 2022

#20 집 '안'에서 비가 와요

기록적인 폭우, 그 한가운데.

    2022년 8월 8일 월요일.

    서울에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비가 내렸다. 그것도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부터.. 차라리 밝은 오전 또는 오후에 그랬으면 좀 나았을까?


    휴일이라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 거실에서 영화를 보려고 '비 오는 날에는 멜로지~' 생각하며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를 틀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꿈에도 모른 채.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괜찮은 거 맞나...? 하늘에 구멍이 난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점점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보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설 때쯤.

    "우르르! 쾅쾅!" 느낌표 하나만으로,  클리셰 짙은 천둥 표현만으로는 결코 표현할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인생에서 천둥을 듣고 "엄마얏!" 하며 비명을 꺄악 질렀다. 63 빌딩이 무너지면 그런 소리가   같았다. 곧이어 섬광이  집을 덮었고, '번개다!'라는 인지가 끝나기도 무섭게 다시 천둥.  섬광, 번개. 다시  천둥.. 번개와 천둥의 무한반복을 겪으니 영화고 뭐고 눈에 들어오는  없었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중한 휴일을 이렇게 날릴 수는 없다며 다시 소파에 앉아 영화에 집중해보려고 노력했다.     

    현관문 너머에서 '콸콸콸...' 들려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영화를 멈추고  집안의 불을 켰다. 현관문을 여니, '뜨악'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계단과 계단 사이에서 물이 콸콸콸.. 건물 안에 리틀 폭포가 생긴 것이다. 다급히 관리소장님께 전화하여 상황을 고하고,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 곳곳이 난리도 아니었다. 대치역, 선릉역 등은 성인 남성 무릎만큼 물이 찼으며 이수역은 천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강남구와 서초구가 특히 심하다고 하는데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다. 어지러운 사진과 뉴스들을 보며 '제발 인명 피해만은 없어라..'라고 간절히 속으로 빌었다.

    곧바로 관리소장님이 오셔서 말하시길, 옥상에 배수구가 있지만 감당 가능한 빗물을 넘어서서 차고 넘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으니 좀만 기다리시면 빗물이 1층으로 내려갈 거다, 집안으론 들어가지 않을 거다, 라는 말씀. 또한 집주인분으로부터 문제가 있으면 신속히 연락을 주시라는 카톡까지 왔다. 자연재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는 꼭대기층에 살잖아.. 그럼 내 머리 바로 위가 옥상인데..?'

    옷방과 연결된 긴 베란다(세탁기를 두는 곳)에 나가보니, 아뿔싸. 이게 웬일. 집 '안'에서 비가 내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천장에 물자국이 동그랗게 여러 개 얼룩져있었고, 전등에 물이 차 전등에서 물이 뚝 뚝 뚝..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아래에는 물이 흥건했다.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황급히 거두고, 플라스틱 통을 찾아 물받이 용으로 두었다. 그러자 이내 흙탕물로 보이는 탁한 노란 물이 통에 차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겨우 진정을 하고 자려고 누우면 밖에서 '와다다다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다음날 아침, 집안 점검을 오백 번쯤 한 것 같다. 거실 창 옆으로 벽지가 울었다. 빗물이 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젖은 천장, 젖은 벽지 속에서 생겨날 곰팡이다... 집주인분께서는 비가 다 그치고, 다 마른 후에 공사가 가능하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제습기를 최대치로 가동하고, 한여름이지만 바닥 난방을 떼고, 선풍기 또한 하루 종일 돌렸다.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온몸으로 느낀 일생 일대의 하루였다.



- 파랑 -

오늘 밤도 비가 많이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잠을 조금 설칠 것 같습니다.

현재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까지 끼고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서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8 포르투갈의 응급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