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는 barbecue의 약어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바비큐’가 된다. 한국에서는 야외에서 조리하는 고기 그릴 구이를 통칭한다. 베트남에서도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서는 소그룹 단위의 특별한 야외 이벤트 개념이 내재되어 있는 반면, 베트남에서는 대형 식당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대도시의 많은 지역에 큰 규모의 바비큐 식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저녁이나 주말이면 늘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다.
베트남 직원들도 회식을 하게 되면 BBQ를 선호한다. 생각해서 몇 배가 더 비싼 한국 식당에 가자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식당의 삼겹살이나 소고기는 잘 먹겠지만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단체 회식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좀 비싸다. 회식 장소를 정하라고 하면 고기 바비큐나 해산물 바비큐 베트남 식당이 단연코 1순위이다.
하지만 나는 이 베트남 바비큐 식당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음식은 먹지 않고 잠시 앉아 있다가 법카만 넘겨주고 바로 나오는 편이다. 뭐 결국은 그걸 더 원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윗사람이 이런 처신을 해야 꼰대 소리 듣지 않는 것은 비슷하다.
투자자들과 3공장에서 미팅이 있던 어느 날 저녁, 꼼짝없이 바비큐 뷔페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3공장 바로 옆에 있는 바비큐 식당을 보더니 이 분들 중 한 명이 이런 식당을 좋아한다며 여기서 식사를 하자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이 식당의 메뉴는 고기와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 먹는 뷔페 형식이었다. 간판에 적혀있는 khói가 한국말로는 연기라는 뜻인데 숯불로 해석하면 된다. 세 명의 입장료가 465,000동이니까 한국 돈으로 인당 약 9,000원이고 콜라, 맥주 등 음료는 추가로 사 먹어야 한다. 음료수를 한 개씩 먹는다면 인당 10,000원꼴인 셈이다.
입구에서 선불로 입장료를 내면 종이 팔찌 같은 것을 손목에 걸어준다. 당연히 좌석 안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다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까불까불 다가와서 얼음이 담긴 플라스틱 통과 컵, 숟가락과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접시는 테이블 한쪽에 먼지와 함께 쌓여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란색 반팔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있지만 티셔츠 색깔처럼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인건비가 싼 이 나라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나 종업원 수가 많다. 그리고 거의 나이가 어리다. 일찍 돈을 벌기 시작해야 하는 가정 형편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A가 먼저 일어나 음식이 진열되어 있는 셀프 바를 돌더니 접시에 이것저것 챙겨 담아 왔다. 나도 테이블에 놓여 있는 작은 접시 하나를 들고 일어섰다. 한 바퀴 빙 둘러보니 역시 딱히 손이 가는 것이 없다. 나는 평소에도 음식의 정체나 형태가 명확하지 않으면 잘 먹지 않는다. 가장 익숙하고 만만해 보이는 튀김류 몇 개를 담아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뭘 추가로 준비해 준다거나 하는 고객에 대한 팔로우업은 전혀 없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면 언제 줄지 모른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멀찌감치 산만한 태도로 서 있는 노란 셔츠를 불러 숯불 화덕을 달라고 했다. 그는 알았다는 듯 큰 소리로 뭐라고 외쳤고 곧이어 다른 노란 셔츠가 불 붙인 숯이 담긴 화덕을 테이블 가운데 동그란 구멍에 앉혀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쉽게 구별되지 않는 양념된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ㅇ집, 조개, 새우를 올려놓고 굽기 시작했다. B는 유일하게 아는 맛이라며 새우를 혼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먹었다. C는 주로 고기를 집중 공략했는데 탄 곳을 침착하게 가위로 잘라내며 먹었다.
나는 이번에도 거의 먹지 못하였다. 구운 새우 두 마리와 내가 담아 온 튀김류 두 개 그리고 방울토마토 몇 알이 전부였다. 원래 베트남 로컬 식당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 식당에서 입 맛을 돋우기는 특히 쉽지 않을 듯했다.
일단은 식기류가 너무 지저분하다. 설거지를 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고 색이 다 벗겨진 젓가락은 입에 넣기가 꺼림칙하다. 뭐든 질긴데, 특히 조개류나 고기류는 아무리 잘 구워도 씹히지를 않는다. 과일은 당도가 없고 섬유질이 거칠어서 그냥 종이 씹는 느낌이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떨어뜨린다.
껍질이나 먹다 남은 음식들, 사용한 휴지 등은 그냥 바닥에 버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테이블마다 발밑에 쓰레기들이 수북하다. 손님이 가고 나면 노란 셔츠가 바퀴 세 개 달린 수레를 밀고 와서는 그냥 손으로 대강 주워 담아 어디론가 가버린다. 참고로 이 나라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텔 뷔페에 온 것처럼 맛있게 그리고 많이 먹는다. 큰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을 때'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갑자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식당 입구 오토바이 주차장 한쪽에서 앰프를 틀어놓고 한 남자가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초대 가수 공연' 뭐 그런 거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이고 흥이 돋기 때문에 그 가수(?)는 주변 식당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한다.
노래 잘하는 사람 천지인 한국 사람이 듣기에는 좀 거북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로 노래를 못한다. 하지만 흥이 많은 민족이어서 노래하는 것을 무척 즐긴다. 무슨 행사장은 물론이고, 집 앞에서 거리를 향해 앰프를 틀어놓고 밤늦도록 큰 소리로 노래하는 진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일행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새우와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바로 옆 테이블에 베트남 가족이 새로 와서 앉았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다 놓고 숯불에 굽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람을 타고 그 매캐한 연기가 우리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머리 위로 온통 뿌연 연기가 덮여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공격을 받다 보니 도저히 앉아있기 힘들었다. 잠깐씩 일어나서 연기를 피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변의 베트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는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다. 내가 같은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자 일행들이 비로소 눈치를 챘는지 이제 그만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간판에 코이(khói, 연기)라고 쓰여있는 이유가 있었다.
외곽 지역이라서 인지 그랍(GRAB)이 잡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로등도 없는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무모한 액션 끝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는 데 성공했다. 위험한 행동이지만 얌전하게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려 봐야 소용없다. 베트남에서 그랍이나 택시를 타다 보면 길 건너편에 정차하고는 손님한테 길을 건너오라고 손짓하며 무단 횡단을 강요하는 간 큰 운전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리스크는 손님의 몫이다.
무사히 길을 건너 조수석에 탄 나는 택시 전조등에 비친 희뿌연 물체들을 앞 유리를 통해서 확실히 보았다. 도로포장 공사 중인 듯 여기저기 파헤쳐 놓았던 그 흙먼지들이 눈앞에서 뽀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 먼지들이 방금 떠나온 그 뷔페식당을 피해 다녔을 리는 없다. 완전히 오픈된 공간이었으니까.
현지에 가면 현지인처럼 먹고 행동해야 한다는데 내가 유별나고 까탈스러운 건가? 그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일단 베트남 식당을 가려면 잘 골라서 가야 하는 것이 맞다. 아무래도 고수 같은 향채를 많이 먹는 베트남 사람들 보다 한국 사람이 세균의 공격에 취약한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칫 방심하다가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그야말로 개고생 한다.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심한 고통을 맛보게 된다.
늘 사람들로 북적대던 3공장 옆집 바비큐 식당, 너는 그런 곳이었다. 미안하지만 재방문 의사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