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고쳐 쓰기
그를 생각하면 '돈 먹는 하마'가 떠오른다. 회사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그가 맡은 온라인 쇼핑몰은 매출이 바닥이었고, 신규 온라인 프로젝트 또한 적지 않은 투자 비용이 들어갔음에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그는 '쿠팡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일이라며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강변한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겉으로 보기에는 순한 이미지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예.'처럼 끝에 '예'를 넣어 자기 확신을 주는 습관이 있으며, 말하는 속도가 느리고 TMT(Too Much Talker)이다. 뻔한 결론을 놓고도 자신이 공감할 때까지 긴 대화를 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부족하면 상대방을 일방적이라고 폄하한다. 대표의 말에 의하면 요리 솜씨가 좋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고, 잠깐 직장 생활을 했지만 못된 상사와 조직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아 일찌감치 본인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는 펀딩 자금으로 큰 규모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매월 말이면 한국에 있는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빚 상환 계획서를 제출하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자신의 과거 이력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 내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대표는 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당분간 같이 사는 것이 좋겠다며 큰 평수의 쓰리룸 아파트를 새로 임차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게 겉으로는 나를 위한 것 같아도, 사실은 내가 다른 회사로 도망갈지도 모르니 나를 자기 눈앞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단체 생활을 좋아하지 않지만 얼떨결에 대표와 나 그리고 하마, 셋이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가 식사 준비를 맡았고 대표가 설거지를, 내가 빨래와 다림질 및 기타 집안 정리를 맡았다. 베트남에는 개인 감시 체계가 있어 집안에 외부인 출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대표의 주장에 우리끼리 직접 가사를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하마는 회사 생활이 집에까지 이어지는 것이 싫다면서 불만을 표시하더니 급기야 식사 당번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대표와 나도 일정 부분 가사를 분담하고 있는데 자신만 손해 보고 있다는 주장에 좀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밖에서 식사했다. 집에서는 계급장 떼고 막역하게(?) 지냈고, 하마가 하는 이상으로 보상해 주었다. 예를 들면 나는 '빚 상환 계획'을 제출하느라 우울해진 그를 달래 주려 술을 사주었고, 대표는 급한 카드론 상환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결국 방침을 바꾸어 일하는 사람을 쓰기로 했다. 한 분은 한국 음식 조리 경력이 5년 이상 된 사람으로 식사 준비를 했다. 또 한 분은 우리가 출근하고 나면 집 안 청소와 빨래, 다림질 같은 집안일을 했다. 그래 봐야 두 사람을 합쳐서 한국 돈으로 5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반란을 일으킨 하마는 본인의 의지대로 따로 살도록 내보냈다. 젊은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뭐든 더 잘해주려고 애썼는데, 과연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은 것인지 알기는 할까? 그런데 그렇게 측은해할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일련의 과정은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데 걸림돌이 있으면 의도적으로 트러블을 만들고 문제를 키워서 분란을 일으키는 판 흔들기의 명수였다.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이발소, 마사지 업소, 식당 같은 각종 서비스 업체들의 정보를 사용자들이 쉽게 예약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보겠다며 돌아다니다가 한국 상품 박람회장에서 대표를 만났다고 한다. 그게 인연이 되어 대표는 실력자라고 판단한 그를 회사로 불러들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겪어본 그는 그렇게 실력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관리자로서 역량이나 자질이 매우 부족했다. 처음에는 그를 바꿔 보겠다고 진지하게 가르친 적도 있었다.
"관리자가 이래서는 안 돼요. 무슨 일이든 위로 넘기고 아래로 미루는 걸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관리자와, 자신이 볼 수 있는 시야가 아직은 부족한지도 모르고 자기주장만 하는 관리자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늘 번잡하기만 하고 실수를 거듭하게 됩니다."
"조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팔로워쉽이 꼭 필요합니다. 리더십은 아닌 사람을 솎아내는 것과, 될 만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과, 개인이 아닌 조직의 힘으로 성과를 이끌어 내는 능력입니다. 팔로워쉽은 한마디로 수용 능력입니다. 다만, 겉으로만, 입으로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이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팔로워쉽에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전체를 보는 동시에 부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야를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로서,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도감과 행간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아니면 소위 헛똑똑이 관리자가 됩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일들에 대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용량을 키우지 않으면 상황 통제, 시간 통제가 안 돼서 본인은 물론, 모든 팀원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소통에서의 핵심은 ‘상호’라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도달하지도 못한 채 혼자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또한, 선제적이어야 합니다. 선제적 소통 시도는 사후에 하는 것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습니다. 관리자의 공감 능력에는 특별히 ‘자기 시간 배분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윗사람이 둘일 때는 30%를, 윗사람이 셋 일 때는 25%를 자기 시간으로 배분하고 나머지는 전체 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원리는 일할 때에도, 사석에서도 통하는 것으로 이게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 그 사람은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조직에서 관리자의 역할은 의사결정권 자라기보다는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영자가 보고, 듣고, 판단하기 쉽도록 사안을 요약정리하고 이를 문서로 표현하는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각종 보고서와 기획안 작성에 숙달해 있어야 합니다."
오죽 기본이 안 되어 있었으면 이런 원론적인 걸 가르쳤겠는가. 하지만 본인은 이 회사의 관리자가 아니며 곧 별도로 독립해서 그 회사의 대표를 맡기로 약속되어 있다면서, 언감생심 자신을 사장급으로 포지셔닝하고 행세하려 했다. 그러나 베트남 직원들은 한국 직원들이 자신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인지 먼저 간을 본 다음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하마의 역량과 성향을 탐지한 베트남 직원들은 그의 지시에 불만을 품고 잘 따르지 않았다.
비밀이 지켜질 거로 생각했는지 일 잘하고 있는 직원을 꼬드겨, 나가서 같이 사업하자는 은밀한 제안을 했다. 낮에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동거하면서 그가 전에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체화 재고를 덤핑 판매하는 겸업을 하기도 했다.
나의 생각은 정리가 끝났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망하고 있다. 대표가 워낙 하마를 싸고도는 측면이 있어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다. 전선이 확대되면 소모전이 벌어진다. 하마같이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을 다루려면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의 전략에 휘말리면 안 되고, 내가 짜 놓은 판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의 부조리에 대해 내가 함구하고 있어 대표는 아직 그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 여전히 내가 그를 인간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하는 것 같다.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오직 회사의 장래를 걱정할 뿐이다. 대표와 하마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 같다. 악어는 악어새를 '활용' 하려는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혹시 악어새는 이에 편승하여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이라면 어림도 없을 실력으로, 경력이 풍부한 인재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가는 상황도 어이가 없지만, 그런 사람을 가려내지 못하고 부회 뇌동하다가 결국은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지도 모를 대표도 안타깝다.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