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사항을 마치 현재 상황인 양 모호하게 표현하는 대표의 화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물론 지금은 그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마음은 뛰는데 현실은 걷다 보니 말의 시제가 뒤죽박죽 되는 것이다. 좋게 표현한다면 '인식의 속도 차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나를 이곳으로 부를 때 대표가 했던 '다 돼 있다.'라는 표현은 내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현실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긴 일 복 많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내가 이번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일들이 빙산 아래 거대한 몸집을 숨기고 있었다.
스**마트와 코** 마트에 여성용 위생용품 같은 일부 품목이 입점해 있었지만, 납품, 판매, 대금 회수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소개한 윗선을 통해 입점했다고 하는데 실무자들은 그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결제일에 입금이 안 돼서 그쪽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보면 이미 판매 대금을 다른 사람에게 지급했다는 상식 밖의 답이 돌아오는 일까지 있었다.
'아는 사람'이 중간에서 딴 주머니를 찬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조건의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표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상황에서, 과거를 캐는 것 같아서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향후 납품을 중단하고 매장 재고의 반품을 신청하도록 조치했다.
다행히 롯*마트는 전국 14개 매장에 전부 입점해 있었으며 정상적으로 판매 대금 결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법인장과의 관계도 좋고 나름 안테나숍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마트는 무조건 둘둘 말아서 많이 준다고 해야 잘 팔린다'며 본품인 치약에 사은품 칫솔을 투명테이프로 둘둘 말아서 납품하고 있었다. 컨셉을 고급으로 잡고 프라이스 존을 높게 설정하였으며 포장 디자인까지 명품 스타일을 표방한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히려 가로 진열이 되어 있는 타 브랜드 상품들이 상대적으로 볼륨감 있게 보였다. 정작 자사 제품은 고객들을 이 코너로 유인하는 로스 리더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사 제품 중에서 킬링 아이템이라고 자부하는 치약부터 헛발질하고 있다.
다행이 치약을 제외한 샴푸, 바디워시, 칫솔 같은 다른 제품들은 각각 해당 상품 카테고리에 진열되어 있었다. 아쉬운 점은 진열대 가장 하단 또는 가장 상단에 있어 찾기가 힘들었다. 골든존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열 위치의 개선과 진열 방법의 변경, 판매 촉진을 위한 POP나 쇼 카드 연출이 필요해 보였다. 놀라운 점은 담당자들의 영업력이나 협상력은 고사하고 이에 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
화장품은 단독 매대로 트래픽이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싸게 주고 만들었다는 집기가 상품을 진열하기에는 부적당하고 조잡했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롯*마트 측에서 제작 업체를 지정하고 도면을 컨펌해 주었으며 우리 쪽에서는 돈만 지불했다고 한다. 90년대 일부 우리나라 백화점이 하던 짓이랑 똑같다.
테스트 존을 만들어 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엉뚱하게 바디워시나 여성청결제 같은 제품을 올려놓았다. 물로 씻어내야 하는 아이템을 테스트 존에 올려놓다니, 현장감이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다. 먼지가 묻어 나올 정도의 청결이나 관리 부재 상태는 판촉 직원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온라인몰은 자사 몰과 베트남의 여러 유명 쇼핑몰에 입점은 되어 있었는데 매출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진입 장벽이 낮으므로 입점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그다음 판매 촉진을 위한 프로모션을 못하고 있는 거다. 나름의 마케팅 전문가라고 하는 담당자들이 있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및 2층, 그리고 옥상까지 창고마다 상품들로 가득 쌓여 있었다. 창고 재고만 해도 꽤 큰 금액의 물량이었다. 통관 비용이 워낙 비싸서 한 번에 많이 가져와 그렇다는데, 그중에는 유통 기한의 압박을 받는 상품들도 적잖이 보였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직원들의 직무 분석과 역할 분담이 안 되어 있고, 해당 직무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다. 특히, 영업 담당자의 유통 업체 담당자들과 의사소통 방식은 거의 수동적이고 일방적이었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사안에 겨우 대응하는 수준에다가, 전화만 와도 전전긍긍하고, 심지어는 무엇이 두려운지 피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인재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 사정에 있다. 현지에서 쓸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한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직원은 약 2,000만동(110만원)이면 채용할 수 있다. 물론 신입이다. 외국어를 하면서 경영이나 마케팅을 전공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한국어과를 나와서 통번역을 하는 친구들이다.
경력자는 있지도 않고 딱히 경력이라고 인정할만한 것도 없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직무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장기근속 아니 1년 이상 근속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관리자급으로는 부득이 한국 기업 경력이 있는 한국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데 2~3년 경력자는 약 6,000만동(350만원)은 줘야 하고 숙소 제공 같은 것을 별도로 요구한다. 하지만 꼭 비용의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만큼 역량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느껴진다. 아니 아예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을 찾기 조차 힘이 든다.
몇몇 헤드헌팅사가 있기는 하지만 수수료가 비싸고 믿을만한 수준이 안된다. 심한 경우 사람을 보냈다가 수수료를 챙기고 다시 빼가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검증된 인재를 한국에서 데리고 가는 방법인데 그 또한 말같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 돼 있다.'라기보다는 오히려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대표의 분홍빛 전망과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고,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는 넘쳤다.
그나저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일단은 상품 회전율이 가장 시급해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입점 매장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