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재미있어졌어요

베트남 대형마트 입점 프로젝트(2)

by 화문화답

나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망설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문제와 해결 방법도 빤 보인다.


가장 시급한 것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본사 재고 중에서 유통 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을 처리하는 일이다. 잔여 유통 기한 일 년 이내 상품들은 체화재고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큰 손해가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어차피 정상적인 유통 경로로는 처리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소위 '땡처리'업자에게 넘기는 순간 브랜드 이미지 몰락을 각오해야 한다. 통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플리마켓이나 입점 매장 내 프로모션을 통해 신속하게 처분해야 한다.


초특가 행사를 기획해서 각 입점 매장에 행사계획안을 보내고 일정을 협의한 다음 순서대로 프로모션을 진행시켰다. 복장을 갖춘 이벤트 팀을 운영하자는 의견은 과도한 비용을 감안하여 진행하지 않았다. 주말에는 특판팀을 별도로 구성하여 플리마켓에 참가하도록 했다. 1군 지역의 트래픽이 많고 지명도가 높은 플리마켓을 선택하여 '한국 상품 특가'로 컨셉을 잡고 태극기를 활용하여 매대 분위기를 연출하여 집중력을 높다.


아르바이트에게 까지 인센티브제를 적용하여 동기를 유발하자, 스스로 매출 목표를 인식하고 팀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시작한 지 얼마 후부터는 힘은 들지만, 재미가 있다며 직원들이 서로 주말 근무에 자원하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상당한 양의 체화 위험 재고가 빠르게 정리되었다.


다음으로는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야 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장기평균비용이 줄어든다는 규모의 경제 개념에 따라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입점 매장 수를 최대치까지 확보해야 한다. 매출원가와 일반관리비를 감안하여 손익분기점 매출 산출하고 평균 단가와 객단가를 반영하여 추산한 결과, 200개 매장에는 물건을 깔아야 지속 경영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계 매장과 베트남 NB 대형 마트를 포함하여 지명도가 높고 점포 수가 많은 유통업체를 조사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전략적으로 입점할 곳과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매장으로 구분하였다. 이들 대형 마트에는 생활용품 위주로 입점하고, 화장품은 온라인 몰과 화장품 전문 매장 입점을 통해 유통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동안 직원들이 비슷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만큼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길을 알고 가는 방법을 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온라인몰은 그 자체로 홍보라는 반사적 이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쌓여있는 배송 박스를 보면 사기가 높아지는 간접 효과도 있다. 또한, 제대로 된 온라인 솔루션을 구축해 놓으면 장래 회사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의 온라인 쇼핑은 두 자릿수 상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른 업태보다 시장점유율이 높고,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허위 과장 광고, 배송 상품 분실이나 파손, 빈 박스 배송, 심하게 느린 배송 속도, 카드 결제 시스템 미비, 악의적인 배송 상품 미수취 같은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자사몰은 상품 스펙이나 가격의 기준을 제시하는 기능 위주로 재편하고, 베트남 온라인쇼핑몰 쇼피, 라자다, 티키 세 곳에 집중하여 처음부터 다시 세팅한다는 개념으로 리뉴얼을 진행했다. 6개월 이후부터는 온라인 부문 자체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각 사업 부문별 구분 손익제를 도입하여 부문장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지도록 했다.


사람 문제는 중요한 만큼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다. 일단은 대표의 사람을 쓰는 방식이 병렬적이고 저임금 위주여서 이를 극복해야 다. 한편으로는 조직 내 회의적인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수시로 회사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을 공유하면서, 영업 위주로 조직을 재편하고 체계적인 직무 교육을 진행했다. 아울러 유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여러 루트로 수소문했지만,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사진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또 글렀네. 도대체 이 나라 구직자들은 왜 이렇게 예의를 모르는 거야? 인사팀에서 넘겨받은 레쥬메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어? 그런데 읽을수록 점점 설득력이 있다. 원래 레쥬메의 목적이 면접을 부르는 것이라면 성공적이다. 이른 시일 안에 면접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작은 키에 곱상한 얼굴이다. 깊은 눈빛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지만, 도전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지만 예의를 갖춘 복장이다. 심한 경우 슬리퍼를 신고 면접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 대화를 예상하여 어느 정도 프리뷰를 하고 온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케팅 개념을 추상적이지 않고 실천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업무 수행 계획을 조리 있게 어필할 줄 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웬만한 한국 직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베트남 직원은 정말이지 만나기 힘들다. 채용을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향후 회사에 큰 역할과 기여를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회사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다만, 요구하는 연봉 수준이 현재 회사의 급여 수준으로는 맞춰주기가 어려웠다. 왜 저 직원은 나보다 월급을 많이 주느냐고 본인들도 월급을 올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절대적 평등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대안을 제시했다. 수습 3개월 동안 나와 힘을 합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 그러면 그때 정상적으로 대우를 해주겠다. 구체적인 성과가 전제되어야 형평성 문제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설득했다. 자신은 원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히려 베트남에서 나 같은 상사를 만나기 쉽지 않다면서 출근하고 싶다고 했다. 예사롭지 않은 친구였다. 내가 그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한 달 뒤, 그 직원의 추천을 받아 한 명을 더 채용했다. 한 명은 오프라인 매장의 팀장으로, 다른 한 명은 온라인 매장의 책임자로 정했다. 이 두 명은 수습이 끝나는 대로 월급을 2,000만 동으로 상향 조정해 주게 될 것이다. 아니 성과에 따라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잘 이끌어주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원들이다. 대신 역량이 떨어지거나 노력하지 않는 직원들은 자연 감소 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실무 능력 위주의 인적 구조 변경은 향후에도 이 회사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일이란, 목표 의식을 가지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회사는 동기 부여나 필요한 자원을 공하된다. 조직은 입체적이어야 하고 리더와 팔로워가 각각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회사도 20%의 사람이 일을 해서 80%의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파레토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곳이다.


언제부터인가 직원들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구동성으로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일이 재미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본인들에게 사는 즐거움을 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할 일이 떠오르고 빨리 출근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그런 거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