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치열하다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

by 화문화답

도착했어요. 평소 운전기사는 8시 20분이면 아파트 1층에 도착해서 잘로(zalo)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런데 어째 오늘은 연락이 없다. 미리 내려가서 기다리는데 아침부터 푹푹 찐다. 햇빛이 닿는 살갗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거 같고, 호흡은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이 나라에서는 '3보 이상 보행 불가'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5분쯤 늦게 도착한 운전기사가 연신 씬로이(xin lỗi)를 반복하며 고개를 숙인다. 옷에 땀이 배어 기분이 눅눅하다.


회사 앞에 도착하자 경비가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다가 호스를 내동댕이 치고 뛰어와서 문을 열어준다. 주인을 잃은 호스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아이고 뭘 저렇게까지 하는지 원. 그러고 보니 살이 더 빠지고 새까만 얼굴에 주름살도 깊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만큼 세월이 흐른 탓일 것이다. 베트남 남자들은 유달리 노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그만큼 살아온 게, 살아가는 게 녹록지 않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현관을 들어서려는데 경비가 갑자기 옆으로 쓱 다가오더니 "Sir, Happy birthday to you, sir!" 이러는 거다. 아, 오늘이 7월 29일이어서 내 생일로 알고 있구나. 나는 이 분이 왜 이러는지 금방 알아차렸고, 고맙지만 음력 생일로 한다고 설명해 주는데 나도 모르게 픽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비릿한 냄새가 훅 들어온다. 다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불렀다. 걸레를 깨끗한 물에 빨아서 꼭 짠 다음 쓰셔야 해요. 안 그러면 물 비린내가 나요. 이 장면, 무한 반복이다. 워낙 착한 심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나랑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것은 아닐 게다. 그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지? 나는 안 나는데? 걸레는 매번 그렇게 빨아서 쓸 필요는 없어. 뭐 이런 식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하느라 매일 새벽에 일어난다고 한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부지런하신 분이지만 고집이 세다.


9시가 되자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렸다. 예고 같은 건 없었다. 다들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누구 하나를 콕 집어서 알아보라고 시켜야 한다. 확인해 보니 11시까지 이 구역 전체가 단전이라고 한다. 11시 까지라. 그럼 빨라야 12시에나 전기가 들어올 것이다. 에어컨 가동이 안되면 사무실에 앉아있기가 어렵다. 30분 정도 시간이 경과하자 직원들이 답답한지 하나 둘 나가더니 건물 밖 쉼터로 흩어졌다. 커피 값을 주고 근처 카페로 피신 가 있도록 했다. 괜찮다며 굳이 사양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곧 그리로 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10시에 면접이 한 건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면접을 볼 사람은 리테일 마케팅 경력자로 팀장급이다. 중요한 포지션이고 그만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회사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근처 다른 카페로 데리고 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니 11시가 다 되었다. 역시 전기는 아직이다. 카페를 나와 회사가 아닌 집으로 갔다. 피난을 가 있는 직원들이 어차피 오늘은 글렀으니 퇴근시켜 달라고 은근히 요구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선례를 남기는 것은 좋지 않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충분히 분위기가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전기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왔다. 먹던 그릇을 치우고 막 나가려던 참인데 대표한테 연락이 왔다. 마침 근처에 있는데 혹시 집에 있으면 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했다. 혹시는 무슨, 다 알고 있으면서. 이럴 때 보면 좀 음흉한 면이 있다.


어째 회사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대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계단을 이용하는데 겨우 그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3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출입문을 여는데 문이 안에서 잠겨있다. 안에서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맙소사!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것이 뻔하다.


이렇게 쉽게 들키다니 순박하기 그지없다. 아침에 정문 경비의 축하 인사를 받고 나서 왠지 이럴 것 같아서 출근하자마자 '오늘 생일이 아니라고' 일러두었건만 이 녀석들은 그걸 내가 사양하는 걸로 해석하고 생파를 강행한 것이다.


평소 다른 직원들 생일 파티에 비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많은 음식을 차려 놓았다. 과일과 음료수, 케이크에 파리*** 빵, 고깔모자, 그리고 벽에는 풍선도 장식해 놓았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꽤 비싼 축에 속하는 An phuc이라는 브랜드의 드레스 셔츠를 선물로 준비했다. 이 정도 하려면 돈이 꽤 들었을 텐데. 상자 안에는 교환권이 같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 놈들 이렇게까지 디테일한 면이 있었어?


생일 카드에는 늘 가르쳐 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고, 언제까지나 저희를 잊지 마시라고 적혀 있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동안 내 마음은 벽에 매달린 풍선처럼 허공을 둥둥 떠 다녔다.


요즘 들어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다그치는 일이 잦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겨우 30분 가지고 특근 수당을 청구한다고 비난하기도 했고, 시키는 일 외에는 알아서 하는 법이 없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언어적 차이를 뻔히 알면서도 말 귀를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고 탓하기도 했다. 오늘만 해도 출근하면서 기사가 5분 늦었다고 얼마나 까칠하게 굴었던가.


내 점심 식사를 챙긴다고 11시 20분이면 어김없이 와서는 '뭐 먹고 싶어요?'라고 귀엽게 물어봐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고, 생일날 쓸쓸하면 안 된다며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어 주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 어린 친구들은 이렇게 착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나를 대하고 있었는데, 나는 회사를 위한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했으니 내가 얼마나 끔찍한 생각을 한 것일까.


결과야 어떻든 간에 이들 또한 최선을 다한 것이며, 나름 자신들의 생활에 충실하고자 했을 뿐이다. 나나 이들이나 그렇게 각자의 삶에 각자의 방식대로 치열했던 것이다. 얘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다시 깨우쳐줘서 고맙다. 앞으로 너희들을 더욱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그래 알았어. 오늘을, 너희들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