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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의 의미

회갑 그리고 회고

by 화문화답

아내는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몇 주 전부터 분주했다. 힘들 텐데 적당히 하라는 내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준비 과정에서 점점 판이 커졌다. 참석하는 분들에게 드릴 답례품 준비까지 마치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


광화문에 있는 한식당 연회장을 장소로 정했다. 주말 집회나 시위로 인한 변수를 고려해 일찍 출발했으나 다행히 특별한 교통 혼잡은 없었다. 일찍 도착한 우리 가족은 현수막과 풍선을 붙이고 사진도 찍으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초대한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다 모이는 건지 반가운 얼굴들이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끌벅적했다. 유명세에 걸맞게 시설도 우수했고 서비스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급지면서 맛이 있었다.


아내가 특별 주문한 대형 2단 케이크가 공개되었고, 꽃다발이 아닌 그렇게 생긴 '돈다발'을 받았고, 뽑아도 뽑아도 계속 줄줄이 달려 나오는 '돈 뿌리 난초 화분' 이벤트는 나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 성공했다. 어쩐지 며느리가 뜬금없이 난초 화분을 끌어안고 다니더라니.


암튼 돈은 내 차지였지만 모든 분들이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옆 방의 민원 제기로 조기 종연되기는 했지만, 작은누나의 오카리나 축하 공연이 흥을 돋우었다.


마지막 순서로 내가 준비한 인사말을 했다. 주제는 '회고(回顧)'였다. 중간마다 폭소가 터지기도 했고, 각자가 기억하는 아련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의 지난 인생 열차를 타고 다 같이 다녀온 짧은 추억 여행이었다. 뭐, 딱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초대 가수 송가인이 없었다는 거?


나의 60회 생일인 환갑을 맞아, 가족들이 마련해 준 파티 장면이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가족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충분히 만끽했다. 들어오면서 입구에 보니까 팔순 축하, 칠순 기념 같은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어 살짝 겸연쩍기는 했다.


특정 숫자가 주는 의미 같은 게 있다. 예를 들면 0은 아무것도 없다. 1은 처음 또는 아주 적다. 100은 만점, 50은 중간이다. 60이라는 숫자는 정년퇴직, 환갑 이런 것들이 먼저 연상된다. 올해가 계묘년이니까, 이게 60년에 걸쳐 한 바퀴 돌아왔다는 뜻이다. 70이나 80보다는 적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이다. 내 나이가 60이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 나라에서 통지서 하나를 받았다. 이제 국민연금을 그만 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공식적인 통보를 받고 나니까 후련하기보다 좀 심란해졌다. 입영 통지서를 받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가? 지금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 같았다.


벽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아름다운 60년, 한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존경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꽃길이 되어 드릴게요. 사랑하는 가족 일동.'이라고 적혀있다.


아름다운 60년이라! 푸시킨이 말하기를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지나간 시간은 그리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지난 60년이 아름다웠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리운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먼 훗날이 되면 또 지금이 무척이나 그리우리라.


따라서 나는 현재를 결코 슬프지 않게 살 것이고 이제 나한테 주어진 남은 미래는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60이면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는 나이라고 했다. 부디 어른 다운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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