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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Oct 06. 2023

회고(回顧)

초청 트로트 가수는?

1

아내는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힘들 텐데 적당히 하라는 내 걱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준비 과정에서 점점 판이 커졌다. 광화문에 있는 한식당 연회장으로 장소는 정해졌고, 참석하는 분들에게 드릴 답례품 준비도 마쳤다. 


주말 집회나 시위로 인한 변수를 고려해 집에서 일찍 출발했으나 다행히 특별한 교통 혼잡은 없었다. 아들 내외가 준비해 온 현수막과 풍선을 붙이고 사진도 찍으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시간이 되자 초대한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다 모이는 건지 반가운 얼굴들이다. 식사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식은 역시 고급스럽고 맛이 있었다. 


아내가 특별히 준비한 대형 2단 케이크가 공개되었고, 꽃다발이 아닌 '돈다발'과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오는 '돈 뿌리 난초 화분' 서프라이즈로 나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 성공했다. 옆 방의 민원으로 조기 종연되기는 했지만, 작은누나의 오카리나 축하 공연이 흥을 돋우었다. 


나의 60회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 파티에 관한 이야기이다. 들어오면서 입구에 보니까 팔순 축하, 칠순 기념 같은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어 살짝 겸연쩍기는 했지만, 60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가족들의 마음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

얼마 전 나라에서 통지서 하나를 받았다. 이제 국민연금 그만 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공적인 통보를 받고 나니까 마음이 좀 공허하고 심란해졌다. 입영 통지서를 받았을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실제로 지난달 아르바이트비 지급 명세를 보니 그동안 30년이 넘게 원천징수 되던 국민연금이 빠져 그만큼 수령액이 늘어났다. 연금은 3년 후부터 준다는데, 국민연금 고갈 우려 이슈로 세간이 시끄럽지만 이 정도 납부했으면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특정 숫자가 주는 의미 같은 게 있다. 예를 들면 0은 아무것도 없다. 1은 처음이나 아주 적다. 100은 만점, 50은 중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60은 어떤가. 정년퇴직, 환갑 이런 것들이 먼저 연상된다. 올해가 계묘년이니까 이게 60년에 걸쳐 한 바퀴 돌아왔다는 뜻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파티의 마지막 순서로 '회고(回顧)'라는 주제의 인사말을 했다. 중간마다 폭소가 터지기도 했고, 각자가 기억하는 아련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의 60년 인생 열차를 타고 다 같이 다녀온 짧은 추억 여행이었다. 


3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몇 번 눈물을 찔끔거렸는데, 오늘 읽다가 또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어요. 아시겠지만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여성호르몬 분비가 많아져 걸핏하면 서운하고 툭하면 눈물이 나고 그래요. 반면 여자들은 남성 호르몬이 많아져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은 거칠어진다고 합니다. 위기의 남편들이 되는 거죠.


여기 여러 선배님이 계시지만 저도 이제 환갑(還甲)이 되었습니다. 징검다리를 폴짝 뛰어넘어 온 듯한 느낌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한번쯤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네요.


큰누나 얘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 오랜 기억 속의 큰 누나는 ** 기차역에 있습니다. 명절이면 종합선물 세트와 축구공을 사 들고 오는 누나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습니다. 작두 펌프로 물을 퍼, 대식구를 건사하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제 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아빠, 엄마가 바쁜 탓에 **이를 잘 보살펴 주시기도 했지요. 지금도 여전히 동생들에 대한 근심, 걱정을 놓지 못하는 제게는 엄마 같은 누나입니다.


큰 매형께서는 교문리에서 시작된 '처남 빈대'를 묵묵히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피붙이도 아닌데 정말 단 한 번도 처남을 기분 상하게 하거나 눈치 보게 하는 일이 없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은 누나 혹시 기억하려나? 어렸을 적에 큰누나가 사다 준 분홍색 필통을 기어이 본인이 가지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는데, 결국 누가 가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런 누나가 집을 떠나 공주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살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새벽에 일어나 연탄 가느라고 고생 많았고, 소풍 가는 날에 싸주던 김밥 맛있었어요. 대입을 포기하고 은행에 취업한 다음부터는 많지도 않았을 월급을 쪼개서 동생 용돈 꼬박꼬박 보내준 고마운 누나입니다.


제게 친형보다 더 형 같은 분이 계십니다. 작은 매형은 늘 처가 일을 도맡아서 해주시고 부모님 병간호까지 해주셨어요. 그러면서도 누나한테 가끔 그런다고 합니다. '처남 요새 뭐 해? 한번 내려오라고 해.' 덕분에 누나랑 같이 산에도 가고, 지난 2월에는 한산도에 데려가 주셔서 굴찜에, 회에 아주 푸짐하게 잘 먹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불러 주세요.


큰형수님이 처음 집에 인사 오셨을 때 생각이 납니다. 대청마루에서 다 같이 식사했는데, 가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잘 먹고, 잘 웃는 게 마음에 든다고 아주 좋아하셨어요. 제가 대학에 진학하고 잠깐 저를 데리고 있어 주셨는데, 늘 바쁘게 일하셨어요. 혼자서 아이들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건강 관리 잘하고 계신다니 다행이고 손자 재롱 보셔 가면서 쭉 행복하게 사셔야죠.


조카들 삼 형제를 보면 지금도 시간이 그때에 멈춰있는 거 같습니다. 동그란 상에 큰 냄비 가득한 라면을 서로 많이 먹겠다고 폭풍 젓가락질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삼촌보다 훨씬 더 커져서 가정을 꾸리고 어엿하게 살아가고 있네요. 제 청년기를 이 조카들과 함께 보냈어요. 언제나 삼촌을 잘 대해줘서 고마워.


‘안 먹어도 배부르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우리 아들은 제 삶의 보람이며 자랑이고 거의 유일한 저의 성공작이죠. 한 번도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바른길을 걸어왔어요. 너무나도 감사하게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고, 좋은 짝을 만나 알콩달콩 재미 지게 사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아들아, 늘 말하지만 너는 자체가 선물이기 때문에 평생 아빠 선물 면제해 줄게. 대신 엄마는 잘 챙겨 드리고.


저의 아내를 빼놓을 수 없겠죠. 일단은, 뭐 그리 잘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열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일하랴, 친정 노모 챙기랴 피곤한 몸으로 바쁜 시간 쪼개서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정말 애 많이 썼어요. 젊었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로 잘해주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후회됩니다. 늦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은 세월 함께하며 좋은 추억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저도 지난 제 삶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기회였는지도 모른 채 놓쳐 버렸거나, 잘 나갈 때 영원할 것이라고 방심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대과(大過) 없이 비교적 평범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살펴 주시고 도와주시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 덕분입니다.


'브런치'에 올린 제 글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앞으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저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가며 보낼 계획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눈을 감을 때가 오면 ‘그래, 이 정도면 됐어.’라고 한마디로 인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까 합니다.


이렇게 제 육순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여러분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송*타월 호텔 컬렉션 수건 세트하고, 그 유명한 압** 떡집에서 특별 주문한 고급 떡 세트입니다. 잊지 말고 챙겨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것으로 60세를 맞이한 저의 소회를 말씀드리는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4

사랑하는 나의 아들은 좋은 가장으로서, 좋은 가정을 완성하리라 믿는다. 직업적으로도 더 큰 성취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조카들은 그들의 어깨가 가볍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슬기롭게 삶을 살아낼 것이다. 아직 어린 친구들은 더 나은 자신들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문제는 나를 비롯한 60이 넘어간 인생 졸업반들이다. 돌이켜 보니 지나온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축이었으며, 디딤돌이었고 버팀목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큰누나는 하도 아픈 곳이 많아서 별명이 종합병원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으니 몸이 성한 데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누나는 가발 공장, 양말 공장 같은 소위 '70년대 여공' 시절을 겪은 세대이다. 그 시절에는 너무나도 가난했기에 공부보다는 도시에 나가 일찍 돈을 벌어야 살 수가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많은 시댁 식구 부양과 집안 살림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는 항상 과거에 대한 원망과 회한, 분노 같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다. 하지만 지금은 효자 아들 삼 형제와 며느리, 손자들까지 다복한 일가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그 날카로운 마음을 내려놓고,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포용력을 발휘하며 여생을 너그럽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지 말고.


큰 매형이 어쩌다 감자를 깎거나 팬케이크를 만들 때 보면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언젠가 시골에 가는 길에 매형이 일하는 호텔에 들렀는데 손수 싸신 도시락을 건네주기도 했다. 매형은 국내 유명 호텔의 요리사 출신이다. 한집안의 '장남으로서 사명감' 같은 걸로 한평생을 꿋꿋하게 살아내신 분이다. 지금도 일을 놓지 못하고 아파트 경비 같은 일을 다니고 있다. 다만, 눈치가 좀 없으신 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누나가 강력한 독재 스타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에서는 역시 '위기의 남편'이다. 바라건대, 이제라도 훌훌 다니시면서 산천도 구경하시고 좋아하시는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가꾸시면서 본인을 위해 사셨으면 한다.


작은 누나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소풍 갈 때 싸주었던 김밥 말이다. 정황 증거를 더 제시하자면 김밥을 말고 나서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한 바퀴 굴린 다음 자르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어린 나이의 학생이었지만 그렇게 동생을 보살피는 부모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얼음장 같은 이성의 소유자이지만 누구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색깔로 비유하자면 옅은이나 밝은이 아니라 원색 그 자체처럼 선명하다. 반면, '비 오는 날 듣고 싶은 노래' 컨셉으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온 감성 충만 컬렉션을 무한 반복으로 듣기도 했다. 지금은 나름 취미 생활을 하면서 소신 있게 산다.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다. 


작은 매형은 교사로서 정년퇴직의 위업을 달성하신 분이다. 자상하고 털털하다. 밤 농장, 양봉, 텃밭 농사를 하며 소일하고 있는데 영농이 본업인 듯 그 규모가 작지 않다. 그 농사일을 어떻게 하는지 내 기준으로는 좀 과하다. 그러니 이제 힘든 일을 좀 덜 하시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여유로운 삶을 유유자적 만끽하시며 사시길 바란다. 


5

벽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자세히 다시 보니 '아름다운 60년, 한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존경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꽃길이 되어 드릴게요. 사랑하는 가족 일동.'이라고 적혀있다.


아름다운 60년이라! 푸시킨이 말하기를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지나간 시간은 그리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지난 60년이 아름다웠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리운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먼 훗날이 되면 또 지금이 무척이나 그리우리라. 따라서 나는 현재를 결코 슬프지 않게 살 것이고 이제 나한테 주어진 남은 미래는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60이면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는 나이라고 했다. 부디 어른 다운 삶이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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