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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Dec 23. 2022

무당 할머니와 대학생 총각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

"대학생 총각, 이리 잠깐 와봐."


무당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대학생 총각'이었다. 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불러서 대청마루에 앉혀놓고는, 몸이 아파 병원을 전전하다가 신내림을 받은 사연, 모시는 신령님의 신통함, 호랑이 등을 타고 태백산 깊은 곳에 있는 물안개 연못에 다녀온 일, 귀신이 쳐들어와 밤새 싸워 물리친 무용담 같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사실 그리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나를 무척 예뻐하셨고, 나한테만 해주는 특별한 얘기라고 강조하시는 바람에 열심히 들어 드렸다.


형 집은 도봉산 근처 방학동에 있었다. 형과 형수는 재봉틀 열 대가 넘는 규모의 봉제 공장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운영하면서 남대문 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형 집에 얹혀살게 되었는데 그 집주인이신  무당 할머니 이야기이다.


황갈색 나무 마루가 깔린 중앙의 재봉틀 영역을 중심으로 안방과 조카 둘이 쓰는 방 그리고 내 방이 있었고, 미닫이 유리 문을 열고 몇 계단을 내려가면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좁고 복작대는 집이었다. 지방에서 갓 올라온 스무 살 청년은 서울 살이와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집에 있는 날이 드물었다.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안채 마루에 앉아 계시던 주인집 할머니가 마당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 여지없이 부르셨다.


기와지붕 위로 높이 세워진 빨간색과 하얀색 깃발이 펄럭이고, 마당 한쪽 길쭉한 미루나무에서 매미가 큰소리로 울던 날이었다. 형과 형수는 납품하러 나갔고 나는 어린 조카들을 돌보고자 오전 수업을 마치고 일찍 들어오는 길이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대학생 총각, 이리 잠깐 와봐."


할머니가 엽서 절반 크기의 갱지 여러 장을 스테이플러로 찍은 종이 뭉치를 불쑥 건네어주셨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내가 대학생 총각 평생 사주를 좀 봤어."

"평생 사주요?"


첫 장에는 인생 전반에 걸친 총운이 적혀 있었고, 뒷장부터는 성격, 건강, 인간관계, 재물운 같은 것들이 초년 지수, 중년 지수, 말년 지수로 나뉘어서 빼곡히 적혀있었다. 검정 볼펜 글씨였는데 강조할 내용은 빨간색으로 꾹꾹 눌러쓰신 자국이 뒷장까지 남아 있었다. 그동안 질문을 통해 수집하신 내 개인 정보를 참고하셨을 것이다.


흐르는 세월 어느 언저리에서 그렇게 정성스레 적어 주신 '나의 평생사주'는 아쉽게도 없어져 버렸지만, 아직 기억에 담겨있는 문장들 몇 개가 있다. '중이 되어 팔도를 떠돌 팔자'라든지 '암 꿩이 스스로 우니 담장 밖을 내다보지 말라', '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면 그 은혜가 바다와 같다',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 같은 것들이다.


굳이 돌이켜 보자면, 중이 되지는 않았지만 일과 관련해서 여러 지방에서 근무했고 외국에까지 가서 일을 했으니 얼추 비슷하다. 아내와는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살고 있으니 담장 밖을 기웃거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큰 은혜까지는 아니지만 사내 강사 또는 초빙 강사로 사람들에게 강의할 때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있으니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말년 지수에 적혀있던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이다. 빨간색으로 쓰셨으니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고목이 되는 시점은 언제부터 일까? 꽃이 핀다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로또 복권을 부지런히 사봐야 하나?


무속 신앙을 믿거나 운명론자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대단한 행운을 바라는 것은 얄팍한 욕심이다. 이제 와서 '죽어 있던 가지들이 만개한 꽃들로 가득해져, 꽃잎 한 장마다 전부 나, 나라고 외치는 한 그루 나무(김주혜 작가, 작은 땅의 야수들)'가 되는 반전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의 말년 지수는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꽃처럼 향기롭게, 꽃처럼 아름답게 다시 피워 보라는 일종의 과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묻기로 했다. 꽃에게. 그러면 혹시 꽃이 대답해 줄지도 모른다. 내가 필명을 '화문화답(花問花答)'이라고 정한 이유이다. 앞으로 내 인생의 키워드는 '꽃'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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