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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un 13. 2024

투쟁하거나 순응하거나 무용하거나

취업지원관, 그들은 누구인가

취업지원관?


처음 듣는 용어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취업'이라는 단어의 일반성 때문일 것이다. 취업지원관의 개념을 포털에서 검색해 보면, '대학이나 직업 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취업 지도를 보다 전문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업의 인사나 노무 분야 경력자 가운데 교직원으로 채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일 경험을 제공하여 취업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취지로 시행 중인 뉴딜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직업계고 취업지원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은 학교에서 하되 인건비는 서울시에서 시비로 부담하고 사업 시행은 구청에서 한다.


서울시 생활 임금을 적용받는 사실상 일당제로, 세금 공제 후 통장에 찍히는 월급 액수는 최저 임금 수준이다. 2023년 현재 서울시 직업계고(고졸 취업 전문) 취업지원관은 약 60여 명 정도이며 소정의 채용 절차와 교육을 거쳐 직업계고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연령별 구성을 보면 40~50대 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이 경력 단절 여성이다. 몇 명 되지 않는 남성의 경우 기업 경력이 있는 50~60대가 많았다. 그리고 소수의 20~30대 젊은 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같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표본으로 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십인십색(十人十色)


내가 아는 취업지원관들의 과거 커리어는 다양했지만 정작 해당 직무와 관련해서는 대부분 직업상담사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경력 사다리'라는 서울시 뉴딜 일자리 사업 취지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무경력자를 선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목적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업무 역량에 편차가 클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개인적인 성향도 뚜렷하게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두른 사회 운동가처럼 혁신을 꿈꾼다. 이들은 세상을 아니, 학교를 바꾸겠다면서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트러블을 일으킨 채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정반대 되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무용한 존재임을 일찌감치 자각하고 무념무상 하면서 킬링 타임에 골몰한다. 이들은 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닫아 버렸거나 아니면, 진짜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 시키는 일 위주로 적당히 밥값을 치르며 다음을 도모한다. 


현란한 처세술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엄청난 친화력과 사교성을 십분 발휘한다. 이들은 서울시와 학교의 니즈에 적절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이상적 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가 있으세요


서울시나 구청의 입장에서 보면 취업지원관이 학교에서 하는 일이나 그 일을 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잡 포지션의 본질이 '취업 디딤돌이고 경력 사다리'이므로, 해당 기간 경력을 쌓아 재취업에 성공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그걸로 사업 목적 달성이다.


학교 입장은 좀 다르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 필요 인력이다.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기대 수준 또한 존재한다. 이를테면 취업처 발굴, 하이파이브 시스템 관리, 취업 상담 및 자소서 클리닉과 면접 기술 지도, 현장 실습에 수반된 행정 업무, 가능하다면 취업 특강 등의 구체적인 업무를 할당하고 있다. 당연히 그 직무를 완성도 있게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취업지원관에 대한 실질적인 대우는 대부분 행정실무사나 교과보조실무사에 준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매주 월요일 8시 10분에 '직원 조회'를 한다. 출근을 시작하고 두 번째 월요일이었던가? 교감이 오더니 조회 시간에는 휴게실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직원'이 아니니까 빠지라는 뜻으로 읽혔다.


근무 장소는 취업준비실 같은 별도의 공간에 있거나 교무실 안에서 교사들과 같이 근무하는 학교도 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같이 있어보니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더 많다. 어떤 학교의 경우 교육청 소속 취업지원관과 두 명이 같이 일을 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목소리 내는 방법


COVID 19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나는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재원 등 필수 인력만이 특별 출입국이라는 형태로 허가를 받아서 왕래할 수 있었고, 14일 강제 격리가 필수적이었다. 냐짱에 있는 뭬벤픽 호텔에서 격리하고 있을 때였다.


3초에 하나씩 글이 올라온다 해서 일명 '3초 방'이라고 불리는'격리자 단톡방'이 있었다. 하루는 호텔 3층에 공안(公安)들이 나타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어젯밤에는 군홧발 소리가 들렸으며 누군가 끌려가는 것 같았다고 했, 술을 압수하기 위해 마다 수색하고 다닌다는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 호텔 측이 사실을 확인하고 사태를 진정시키는 동안 단톡방에 있던 107명은 집단 포비아를 겪어야 했다


직무 관련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생소한 업무에 맞닥뜨리다 보니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때는 동병상련이 진리이다. 서로 의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 바로 '단톡방'이다.


처음에는 '단톡방 활동'에 모두가 적극적이고 치열하다.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브 앤 테이크의 원리가 적절히 작동된다. 그러다가 서서히 생활에 적응되고, 업무를 하나씩 알게 되고, 조금씩 일상이 바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그때쯤 되면 '군홧발 소리'처럼, 근거가 부족한 비판의 글들이 서서히 머리를 치켜든다. 


어찌 보면 이런 단톡방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을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부당한 사연들이 단톡방을 통해 봇물 터지듯 넘쳐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어디선가, 누군가 미리미리 물꼬를 터주었다면 어땠을까? 비록 작은 것들 일지라도 공유하고 공감하려는 배려가 아쉬웠다. 



반사적 손해


취업지원관 제도의 앞 날은 그리 밝지 않다고 본다. 일부 공공사업이 그렇듯이 관련 당사자 모두가 개선보다는 적당히 현상 유지를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내재되어 있는 개선을 요하는 문제들은 언젠가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그렇게 취업지원관 제도가 사라짐으로써  반사적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받을 수 있는 조력을 받지 못하게 되는 학생들이다.


취업지원관을 뉴딜일자리에 얹어 놓은 구조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아야 한다. 애당초 이 두 개념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전문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


만약 취업지원관이 필요하다면 그들이 전문적인 역량과 중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소신 있게 취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보건 교사처럼 취업지원관의 신분을 보장을 해 주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누가 인건비를 부담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워낙 적은 금액이고 어차피 현재도 세금을 쓰고 있으니 이를 학교에 직접 교부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아마도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직업계고 트렌드가 진학으로 바뀌고 있다지만, 직업계고의 본질적인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회 구성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고졸 취업 지원 정책은 강화되어야 한다. 꼭 취업지원관 제도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에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취업 지도를 제공하여 다양한 직업 세계에 입직할 있도록 하는 지원 체계가 좀 더 공고하게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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