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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un 06. 2024

교무실 vs. 사무실

애자일(AGILE)

33년 vs. 1년


나는 교무실 경력 1년 차이다. 교사가 아니라 구청 소속의 취업지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임시 계약직이다. 반면 기업사무실에서는 33년을 생활했다. 33대 1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사무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지만, 교무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따라서 교무실에 대한 모종의 판단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수박 겉핥기'라고 전제하고 본다면 그렇게 큰 오해는 없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교무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짧은 기간이지만 특별한 경험이고,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사무실 생활과는 사뭇 다른 일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먼저, 지금 이 시간에도 투철한 사명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애쓰고 있을 모든 교사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세대인 나에게 선생님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평가회'라는 용어 사용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사실 이 단어는 자체만으로도 무게감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번 일의 경우,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이면에 인구 감소에 따른 국가 소멸이라는 더 큰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0.7~0.8에 머무는 사이 총인구수가 5천167만이 되었으며, 2072년에는 3천622만으로 인구가 다시 3천만 명대로 돌아간다고 한다. 당연히 학령인구도 감소하여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 수가 2022년 750만에서 50년 후에는 278만 명으로 3분의 1토막이 날 것이라고 한다.


필연적으로 모든 학교는 살아남기 위해 입학생 유치 전쟁을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벌이게 될 것이다. 당장 이 학교 또한 신입생 정원을 채우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여름방학부터 구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신입생 유치 '영업'은 11월이 되자 학교의 거의 모든 관심과 역량이 해당 이슈에 모여졌다. 영업과 학교는 전혀 연관이 없을 듯한데, 아니었다.


날짜가 임박해서 불과 몇 명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자 교무실은 더욱 소란스러워졌고 학교의 분위기는 술렁였다. 학급 수를 못 채우게 되면 종국적으로 교사 수도 줄여야 하므로 누구도 이 혼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정원이 채워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업적 수완을 발휘하여 정원을 채우는데 기여한 A교사에게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다.


'ㅇㅇ일 ㅇㅇ시부터 급식실에 도시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동안 노고에 감사하고 올해 결과를 평가하는 자리를 재단에서 마련했으니 모두 참석하시어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의 공지가 교내 인트라넷에 올라왔을 때 나는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내가 문제의식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어떤 업무나 목표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향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할지 계획할 수 있다.


문제의 공지가 올라온 다음 날이었다. B선생님이 장문의 글을 올렸다. 파장이 일자, 잘못 보냈다며 회수하기는 했지만, 교사뿐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읽을 수 있게 전체를 수신자로 지정하는 바람에 볼 사람은 이미 다 보았다.


요약하자면, '첫째, 교사들의 수고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느냐. 둘째, 급식실 도시락은 성과를 폄훼하는 처사이다.'라는 취지였다.


B선생님의 이러한 지적은 교사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일정 부분 공감이 가지만, 33년 차 기업인 출신의 시각에서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은 대체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애자일(AGILE)


애자일 조직이란, 부서 간의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해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 문화를 뜻한다. 여기서 애자일은 민첩한, 기민한 이라는 뜻이다. 애자일 조직의 가장 큰 목표는 불확실성이 높은 비즈니스 상황에 대응하여 빠르게 성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변화를 지속해서 반영하여 업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기업체에서 관리자급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애자일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 수직적 조직 문화와 관리자형 리더십에 길든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애자일이라는 개념의 틀을 놓고 견주었을 때, 기업의 조직 문화(이하 사무실로 부른다)와 학교 교무실  문화(이하 교무실이라 부른다)는 어떻게 다를까?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목표 또는 목표 의식이다. 기업은 고객의 니즈에서 출발하여 고객 만족을 지향하며 이를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의 목표는 뚜렷하다. 예를 들면 '매출 목표 1조 원' 같은 것이다. 반면 학교는 전인격적(全人格的)인 교육 목표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진학률, 취업률' 같은 일부 성과지표 외에는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어서 지향하는 공동체적 목표 의식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사무실의 경우 업무 숙련도 또는 리더십 역량에 따라 어느 정도 수직적 구조를 가진다. 이는 연공서열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직무 중심의 구조화로 볼 수 있다. 반면, 교무실은 교사들 각자가 독립적인 교과 과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고유의 업무를 하고 있다. 수평적이다. 아울러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행정 업무가 발생하는데 이는 부수적인 업무로 이른바 '잡무'로 불린다. 이게 교사들로서는 서비스 영역 즉, '희생'하는 부분이다.


의사결정 방식에서 기업은 원스톱 방식을 선호한다. 관계자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협의해서 결정된 사항을 추진한다. 완벽함도 중요하지만, 신속성을 놓칠 수 없다. 혹시라도 결정된 사항에 반대하더라도 일단 결정된 사항에는 협조하고 자기 역할을 한다. 그래야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고 성과에 대한 보상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교무실은 대부분의 교사가 '가르치려는 본능'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교육적 철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컨센서스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이다. 


교무실은 업무 분담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 언젠가 취업부장이 '부장 회의를 하는데 아주 중요한 날이다. 일 년 동안 부서별로 할 일을 정하는데 이번에는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부서의 부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은 내가, 우리 부서가 어떤 일을 떠맡는 사태는 피하고 보려는 것이다. 물론 사무실에서도 과도한 업무 부담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어차피 무슨 일이든 해야 월급 값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해서 성과를 내야 승진이나 성과급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무실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월급 값의 내용과 범위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기업은 정기적으로 인사이동을 하고, 수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며, 부득이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된다. 창의나 혁신이 없으면 도태되고 만다. 반면 교육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교무실은 전반적으로 사고의 흐름이 보수적이다. 게다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끼리 비슷한 일을 하면서 정년까지 수십 년을 지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변화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정말요?


2023.12.01 자 동아일보 기사(충원난 특성화고, 올 서울 신입생 20%가 非서울 학생)를 보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부족 현상과 '그래도 대학 가야지'라며 대학 진학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특성화고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업이 원하는 만큼의 숙련된 노동력을 특성화고에서 배출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기술 혁신의 속도에 맞춰 특성화고 교육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한 교수의 의견을 인용하고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처음 출근한 날,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이 기업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해요. 기업 경력이 풍부하시니 그런 측면에서 학교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들 많이 해주세요."


"정말요?"


나의 미천한 경험과 경력이 진짜 그렇게 쓰일 기회가 있겠다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그럴 기회는 없었다. 


학교 교육의 특성과 문화적인 속성을 이해한다. 직업인으로서, 근로자로서 교사의 정당한 권익 또한 존중한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학교의 시간은 늘 그래 왔듯이 나름대로 질서를 가지고 고유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 '취업'에 관련된 부분이라도 기업적인 마인드 특히, 애자일을 전향적으로 수용해 볼 필요가 있다. 취업은 기업에 가서 일하고자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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