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문화답 May 23. 2024

행복한 동행

돈 벌면 뭘 하고 싶은가요

채윤(가명)의 학교 성적은 1등급이고 필요한 자격증을 대부분 갖추고 있으며 스토리가 될 만한 경험 활동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직업기초능력 시험에 취약하고 근성이 다소 부족하다. 지금까지 공공기관과 금융기업에 지원해서  차례 고배를 마셨다. 가장 좋았던 결과가 예비 합격 1순위였지만, 어쨌든 최종 합격은 아니다.


현재 A은행의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채윤의 약점인 필기시험까지 통과할지는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취업 전략에 대한 방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졸업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사무직 취업을 원하는데 일단 그런 기업에서는 고졸 예정자 채용 수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중소기업은 본인이 성에 차지 않아 한다. 게다가 낯선 직무를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스타트업의 기획이나 마케팅 직무에는 눈길을 주지 않지만, 선배들이 이미 취업해서 재직 중인 GA (general agent) 사의 보험 총무 같은 직무에는 관심을 보인다.


그러던 중 B사에서 채용 의뢰가 왔다. 직무는 보험 총무이다. 고민하던 채윤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학교에 남아 있기도 불안하고 일단 취업을 한 다음 내년에 목표로 하는 공공기관에 재응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채윤을 데리고 B사 면접 장소로 갔다. 취업지원관의 업무 중 하나가 면접 동행이다. 꼭 필요할 때 하면 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면접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다녀왔다.


대표와 부대표, 나와 채윤이 대표실에서 마주 앉았다. 대표가 나가 있겠다는 나를 굳이 그냥 계시라고, 면접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하자고 넉넉한 웃음으로 정리해 주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긴장을 풀어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채윤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럴 때는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인식하지 못하고 줄곧 경직되어 있었다. 가볍게 물어보는 말에도 온 힘을 다해 답변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돈을 벌면 뭘 하고 싶어요?"

"제가 돈을 벌면 ○○○선생님께 선물을 사드리고 싶습니다."


부대표의 질문에 대한 채윤의 느닷없는 답변에 모두를 깜짝 놀랐다. 여기서 채윤이 말하는 ○○○선생님은 바로 나다.


"저의 취업을 위해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셔서 작은 보답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내 눈의 동공이 두 배는 커졌고, 마주 앉아있던 분들도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비로소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저축을 하겠다든지, 투자를 하겠다든지,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겠다든지 하는 대답을 예상했을 것이다. 좀 엉뚱하기는 했지만 꾸밈없는 대답에 아빠 미소,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듣게 되는 가장 기분 좋은 말이고, 가장 큰 보람인 것 같다. 먼 거리였지만 이날의 면접 동행은 그야말로 '행복한 동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모님은요? 부모님께는 선물 안 할 거예요?"

"아닙니다. 당연히 부모님께도 선물을 해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 먼저 선물하는 걸로 어색한 분위기를 정리한 다음, 부대표는 여자들끼리 얘기한다면서 채윤을 데리고 나갔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씨! 채윤씨 봤어?'라며 은연중에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부대표는 이미 채윤의 합격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대표실에 둘이 남게 되자 대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봉투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학생에게 줄 면접비이고 또 하나는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 표시라고 했다. 당연히 내게 주는 봉투는 정중히 사양했고 학생 면접비는 직접 주도록 말씀드렸다. 대표는 자신이 실례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지폐가 가득 담긴 초콜릿 상자를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백지 수표를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돌려주긴 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쾌하기보다는 오히려 성의(?)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주는 쪽이 명백한 갑이어서? 어쨌든 여러 번 면접 동행을 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뜻밖의 얘기가 들렸다. 채윤이 면접 본 회사를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를 불러서 얘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다. 살다 보면 막상 닥치면 내키지 않는 그런 경우가 있다.


다만, 같은 걸 보고 다르게 느낀 차이점에 관해, 원래 생각했던 본인의 취업전략에도 부합한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나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어쨌든 나는 그 회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 자칫하면 강요하는 모양이 될 수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본인의 뜻을 존중한다며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다만, 호의를 가지고 성의껏 대해주셨던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면 최대한 빨리 의사를 밝혀야 한다.


담임과 상담을 하더니 결국 채윤은 진학을 고려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취업을 하려는 학생은 집안 형편 등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단 진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잠시 미뤄질 뿐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직업계고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대졸 타이틀이 붙으면 눈높이는 물론 취업 난이도가 몇 배로 높아진다. 그렇다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취업 역량을 갖추기 역시 만만치 않다. 


따라서 나는 '일단'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일단' 취업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고졸로서 취업 재수를 하든가 아니면 직무 경력에 학사 학위를 붙여 경력자로 점프업을 하는 CDP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그럼 '일단' 진학하고 나면? 학비며 생활비며 계속해서 부모에게 손 벌려야 한다면? 결국,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졸업이 코앞에 들이닥쳤을 때, 대졸 타이틀만 움켜쥐고 혹독한 취업 전선에 다시 내몰리게 된다면? 그 건 쉬운 길일까?


물론 도중에 어떤 행운에 기인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인생은 모르니까. 하지만 학생들이 당면할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못하다.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 않는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 60이 넘었는데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다음 날, 무거운 마음으로 대표에게 전화했다. 잘 대해 주셨는데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 사이 다른 회사에 가기로 결정되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고 양해를 구했다.


채윤과 그날의 행복했던 동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그럴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인의 직업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본인의 몫이며 본인의 책임이 따른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 게 바로 나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현장실습 중인 학생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혹시 실습일지 쓰면 회사에서도 보나요?"

"아니. 왜?"

"그냥 솔직하게 쓰면 평가에 불리할까 봐요. ㅎㅎ"

"괜찮으니까 걱정 마셔. 일은 잘 배우고 있어?"

"네. 아직은 좀 어렵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져요. 제가 해낸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요새는 학생들이 쓰는 현장실습 일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고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학생들과 나는 여전히 행복한 동행 중이다.

이전 20화 싫은 사람과 잘 지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