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teacher

행복하자고요

by 화문화답

도착한 신촌○○병원은 동네 의원보다 조금 큰 규모였다. 학교 이름을 대고 잠복결핵검사를 하러 왔다고 했더니 서류를 작성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 의자에는 다른 학교에서 오신 분들이 이미 여럿이었다. 대기하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불편하길래 바깥쪽에 나가 있었다. 20분 가까이 지났을까? 내 이름을 부르더니 채혈실로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벌써 내 몸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라고 재촉하는 간호사 얼굴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팔 한쪽을 내밀어주었다. '따끔하세요, 따끔'. 항상 문제는 따끔한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채혈 튜브를 여러 개 사용하는 걸로 보아 채혈하는 양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한 가지 검사인데 이렇게 많이 하나? 궁금했지만 주사나 침 바늘 공포증이 있는 나는 고개를 돌린 채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간호사가 붙여준 거즈를 한참 누르고 있다가 걷어 올렸던 옷을 내리려는데 거즈 위에 붙여준 반창고가 밀려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주삿바늘 흔적이 한 개가 아닌 두 개가 보였고, 팔오금 주변은 멍이 들어 시퍼랬다. 팔에서 시작한 통증은 어깨까지 올라가 오른팔 전체가 저렸다.


이 병원 도대체 뭐야. 투덜거리며 집으로 향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학교 보건 교사였다. 평소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인데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걸 보니 무슨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검사하셨나요?"

"네."

"혹시 검사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학교에 청구한다고 그냥 가라던데요?"

"네... 지금 논의 중인데,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논의 중이라고? 뭘 논의한다는 거지? 모르겠다. 시키는 대로 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팔의 둔한 통증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발걸음 위에 얹혔다.




다음 날이었다. 뭔가 교무실 기류가 어수선했다. 나를 둘러싼 이슈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에 이어 나의 잠복결핵검사와 관련된 '논의'가 교사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는 눈치였다.


보건교사가 올린 잠복결핵 검사비 3만 원 지출 기안을 교장이 반려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유는 내가 채용 전에 검사하고 왔어야 하므로 학교에서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전에 이와 관련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였고, 더욱이 지금은 출근을 시작한 지 이미 8개월이 지나고 있다. 기안을 반려한 이유가 옳다 해도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어쩐지 좀 어색하다.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왜 검사 확인서를 챙기지 않았는가? 이제 와서 이 검사를 하라고 한 것은 적절했는가? 타이밍이 이러하니 검사를 하지 말게 했어야 하는데 왜 중단되지 않았는가? 이런 얘기들이 교장, 교감, 보건교사, 취업부장 사이에서 오전 내 오고 갔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드디어 교감이 취업부장에게 와서 최종 결론을 통보했다. 학교가 부담할 수 없다. 취업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어쨌든 학교가 잘못한 것이므로 학교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요, 근데 안된다잖아."

"그렇다고 개인 부담을 하라면 안되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러다가 교감이 갑자기 나를 대화에 끌어들였다.


"지원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모적 논쟁이다. 피곤하다.


"아, 네.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바쁘신 분들이 너무 시간 뺏기시는 것 같아요. 이제 그만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나중에 식사라도..."

"아닙니다. 교감선생님,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서둘러 '논의'를 정리하려는 나를 보며 취업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너무 나섰나? 그래도 내 편이 되어주려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해명이 필요할 듯하다. 취업부장에게 취업지원실에서 잠깐 보자고 면담을 청했다.


"부장님, 혹시 제가 부담하겠다고 정리해서 기분 안 좋으셨어요?"

"너무 화가 나요. 이번 건뿐만 아니라 매사에 일처리가 이런 식이니..."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쉽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괘념치 마시고 부장님도 잊어버리세요. 가뜩이나 여러 가지로 복잡하실 텐데."




며칠 전, 부장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취업부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내막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잘못 이해한지도 모르지만, 취업부장이 왜 그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3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다 겪어보았다. 이제는 척 보면 대충은 안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서부터 나름대로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기다려준다. 위에서 보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 눈앞의 직원들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재촉하거나 몰아붙이면 사기가 꺾이고 위축된다.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줘야 한다. 필요할 때만 넛지(nudge)하면 된다. 그래야 부족함을 스스로 극복하고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직원으로 거듭난다.


둘째, 균형을 잃지 않는다. 만약 윗선에서 특정인을 편애하거나 차별하는 신호를 보내면, 조직 내에서는 파벌이 조성된다. 추종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의 불협화음이 생기면서 일의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사람들은 수싸움이나 편 가르기에 몰입하게 된다.


따라서 윗사람은 본인이 선호하는 방향이나 결론이 있더라도 가급적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정명제(테제, thesis)와 반명제(안티테제, antithesis)를 사용하여 모순되는 주장들의 합명제(진테제, synthesis)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변증법적 사고의 일환이다. 자정 작용을 통해,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합의된 결론에 이르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건강한 조직을 만든다.


셋째, 내 일에 먼저 충실한다. 조직에서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이를 '노릇'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만약 CEO가 CEO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직원들만 들들 볶는다면 회사 꼴이 뭐가 되겠는가.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직원이 하는 일에 말을 보태기보다는 대외적인, 미래 지향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내 역할에 충실해야 조직을 발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동안에는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참았어요.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휴직을 했었고요. 복귀하면서 결심을 했거든요. 이제는 그렇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취업부장의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 들어차 있다. 누군가 자신을 들들 볶으며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싸우실 거예요?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분들에게도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좀 가다듬어 보는 거죠."


취업부장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옳으니 결연히 맞서 싸우라고 전투 의지를 북돋아 줄 것으로 예상했나 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였다. 분명히 무능한 상사였고 적절치 않은 지시들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항의했다. 아랫 직원들의 불만을 대변한다는 측면도 있었다. 즉각 그 윗사람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 반동(反動)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만약 싸우려면 모든 것을 걸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고,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진리는 승자독식이다.


취업부장의 고독한 싸움도 옳고 그름을 떠나서 승산이 없어 보인다. 계란 하나로 바위를 쳐부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도 나처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행복하시려고 이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악마를 담아두고 세상을 대하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려니 얼마나 힘들어요.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적당한 균형점과 타협안을 찾아보시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 마음을 먼저 바꾸지 않으면 상대방도, 세상도 바뀌지 않더라고요."


취업부장의 눈에 물기가 살짝 비쳤다.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겠는가.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선생님, 울지 마세요. 부디 자중자애하시길 바라요. 그리고 힘내세요.


그렇게 긴 대화가 끝나고 취업부장과 나는 웃으면서 취업지원실을 나왔다. 그러나 나는 바로 후회했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자'라고 퇴직하면서 다짐했던 원칙을 어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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