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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May 16. 2024

싫은 사람과 잘 지내기

버틸 땐 버텨주어야

취업부장이 뭔가 다급한 통화를 하고 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어도 안절부절 전화를 끊지 못한다. 잠시 후, 그가 갑자기 의자를 끌어당겨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온다.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선생님, 태연(가명)이가 전화했는데요. 큰일 났어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어제 아빠랑 크게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전화해도 받지 않다가, 조금 전 마지막 인사인듯한 문자 메시지가 왔답니다."

"네? 마지막요? 얼른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네요."

"아, 네. 그래야겠지요?"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그도 덩달아 일어섰다. 전화기를 손에 들고 한숨을 크게 한 번 내 쉬더니 다시 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를 이어가던 그가 이번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있어 주고 싶다 이거지? 그럼 차장님께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얼른 엄마한테 가봐. 언니한테도 연락하고, 가급적 엄마가 아빠랑 마주치지 않게 집 밖에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바로 전화하고."


태연이는 회사에서 현장실습 중이다. 총 4주 중에서 현재 3주 차이다. 예정대로라면 일주일 후부터는 채용으로 전환되어 협약서 대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학생 신분이 아닌 정식으로 근로자 신분이 되어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성인 기준으로 보면 3주라는 기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까지 가정이나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방적인 보호를 받으며 생활해 왔기에 3주는 고사하고 하루 8시간을 버텨내기가 버거울 때가 많다. 태연이가 최근 다소 안정적이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혹시라도 이 일을 계기로 흔들릴까 우려된다. 


며칠 전부터 태연이의 실습일지 내용이 달라졌다. 어렵다, 힘들다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요즘 고민이 있어서 상담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마침 순회지도를 나가는 담임선생님이 대신 상담하고 왔지만, 이 정도면 노란불이다. 아직 아이들이라서 매사가 유리그릇 다루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태연은 평소 학교에서도 질문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정확하게 하려고 확인하는 차원일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그런 성격은 꼼꼼하고 치밀한 일 처리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자칫하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자주적으로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경향도 있다.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복교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복교생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기업체와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복교 의견서, 복교 프로그램, 재취업 지도 등 후속 업무가 줄줄이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 취업부의 현장실습생 관리 역량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현장실습생 중에서 태연 이외에도 노란 불이 들어온 학생이 또 한 명 있다. 이 친구는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고, 팀원들하고 관계가 불편하다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은 아직 모른다. 이제 걸음마를 하면서 본인과 맞고 안 맞고를 따질 수는 없다. 향후 어떤 일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르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맞는 일만 골라서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일의 맥락이나 원리 같은 것을 배우는 데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 관계는 문제가 된다. 팀원 중에 좀 못되게 구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전임자도 '노랑머리'로 불리는 그 빌런의 영향을 받아 퇴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한다.


33년 차 직장인 출신의 경험에 의하면 직장 생활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일보다 사람이다. 사람 꼴 보기 싫으면 숨 쉬는 소리도 듣기 싫은 법이다. 그런 사람을 매일 만나야 하고, 하루 8시간 넘게 상대해야 하는 상황은 끔찍하다. 


마음속에 악마를 들여놓으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한다. 따라서 가급적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싫은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다. 싫은 걸 어떻게 미워하지 않느냐고? 그게 된다.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성향이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중에는 내가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나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후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하고 번번이 부딪히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피해서 도망 다니다 보면 내 인생이 흔들릴 수 있다. 


나도 나이가 들어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만 있지 않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볼 때 단점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장점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단점들이 발현되면 '그런가 보다'한다. 특히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지위가 되면 이런 태도가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조직은 회사가 아니라 정당이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 


현장교사인 ***부장님께 말씀드렸느냐고 물었더니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아서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시 찾아뵙고 애로 사항을 말씀드린 다음,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이런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기 벅차다. 게다가 이 친구는 이제 18세의 어린 학생이다. 다행히 현장실습 전 미팅에서 만났던 ***부장은 수용력이 좋으신 분으로 보였다.


이제 학생들 현장실습이 막바지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각난 김에 현장실습생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수 있어요. 처음에 좀 느리다고 낙담할 거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일을 배우는 시간이니까. 모르는 것, 어려운 것들이 있으면 윗분들이나 동료에게 알 때까지 물어보세요. 몰라서 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어디를 가나 나랑 잘 맞는 사람보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중요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 없거든요. 여러분이 성숙하고 지혜로운 직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전원이 하트와 엄지 척을 찍었다. 평소 학생들은 임펄스(implus)에 대한 레스펀스(response)가 느리다. 이렇게 벼락같이 공감하는 걸 보니 그만큼 마음들이 힘들었나 보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기! 사실은 그들의 세 배가 넘게 세상을 살아온 나도 어렵다. 오히려 요즘 나는 '좋은 사람한테만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마음먹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다. 앞으로 수많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하며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다. 좀 힘들겠지만 버틸 때는 버텨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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