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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Nov 23. 2023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무탈하실 거죠

사람이 8시간 잠을 잔다면 그중 4~5회 렘수면을 하게 된다. 그 얕은 수면 동안 꿈을 꾸게 되는데 보통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억이 남는 경우는 많아야 1~2번 정도라고 한다. 즉,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반면, 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스트레스, 불면증, 카페인이나 알코올, 유전 등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내 경우는 생각이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 탓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수면 중 자각 증세가 있다. 잘 자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느닷없이 잠을 깨는 증상이다.


어젯밤에도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그와 그의 여친이 며칠째 꿈에 나타나고 있다.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가 베트남에 놀러 와서 일으켰던 기상천외한 해프닝떠올랐다. 지금부터 1년 전쯤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제 먹은 뚝배기 쌀국수가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들고 그 식당을 찾아갔어. 어딘지 잘 기억이 안 나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헤매다가 겨우 찾았어. 가서 자리 잡고 메뉴판에 있는 뚝배기 쌀국수 그림을 탁 찍었지. 그런데 음식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한 거야. 에라 모르겠다. 먼저 한잔하자는 생각으로 막걸리병을 들고 살살 흔들었어. 우리 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다음 뚜껑을 따려고 살짝 돌렸어. 아주 조심해서 살살. 그런데 그 순간에 일이 터져 버린 거야."


막걸리병 안의 탄산은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되어 있는 동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식당을 찾는다고 헤맨 시간을 포함해서 최소 20분 이상, 섭씨 30도의 펄펄 끓는 날씨에 막걸리병이 노출되자, 탄산은 양껏 팽창하였다. 게다가 '살살' 흔들기까지 으니, 그 순간 터져 버린 것이다. 대폭발이었다. 파편은 파편대로, 냄새는 냄새대로 비산(飛散)했다. 사람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고, 식당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 막걸리 폭탄 사건의 주인공은 나의 25년 지기 형님인 강성곤(가명)이다. 장소는 베트남 호찌민 7군 지역에 있는 나름 유명한 쌀국수 식당이고, 식당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 막걸리의 위력을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그가 드디어 시간을 냈다면서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에 놀러 왔을 때, '멀리 벗이 있어 나를 찾아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바로 그 심정이었다. 호텔을 잡아 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며 굳이 내가 사는 아파트의 평소 쓰지 않던 방에 머물렀다. 회사가 한창 바쁠 때라서 평일 낮에는 출근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했었는데 바로 그 평일 낮에 이런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베트남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하면서 차로 두 시간 걸리는 붕따우를 무려 300만 동이나 내고 다녀왔다는 '용감무쌍 바가지 택시 여행' 이후 돌발 행동을 자제하는 듯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술로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술병을 입에 물고 살았다. 그렇다고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다. 아니, 그 정도면 중독자인가? 어쨌든 술을 좋아한다. 쉬는 동안이라도 술을 실컷 마셔야 한다고, 그게 쉬는 거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나도 술독에 빠져 지냈지만, 타국에서 외로움에 절어 있던 나에게 그의 방문 기간은 큰 위로가 되었다.


오전 내 뒤숭숭했던 꿈이 신경이 쓰였다. 전화해서 안부를 확인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긴 신호 끝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진짜 어디 아픈가? 더 불안해진 마음에 조바심이 났고, 그의 전 여친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냐'는 담담한 질문이 답으로 왔다. '그런가 보다' 쯤으로 생각을 정리할 때쯤 징하고 진동이 울렸다.


"네, 형님. 접니다."

"아이고, 오랜만여."

"형님 별고 없으셨죠. 전화를 안 받으셔서 걱정했어요."

"나는 괜찮아. 어떻게 지내시나."

"네.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취업 지도하는 아르바이트 계속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퇴직하고도 쉬지를 않네."

"말까지 계약이에요. 그나저나 형님, 제가 뭐 섭섭하게 해 드린 거 있나요? 연락이 뜸하셔서요."

"아니야. 바빠서 그래. 직원 한 명 내보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통 시간이 안 나."

"한 번 뵙고 막걸리 한잔하셔야죠."

"근데 내가 술을 끊었어. 술친구 못해줄 거 같아서 연락을 못 한 것도 있어."

"아, 그러셨군요. 술 끊으신 거 잘하셨어요. 뭐, 우리가 술친구만 되나요? 식사하시면 되죠."

"그래. 다음 주에 새로 공사 시작하는 거 있는데, 그거 시작해 놓고 연락할게."


몸이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부산에 근무할 때였다. 그는 협력사 사장이었다. 처음에는 속칭 내가 갑이고 그가 을이었으므로 나로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당시 나는 부산에 발령을 받고 혼자 내려가야 했다. 회사에서 숙소 대신 전세 보증금을 제공해 주었다. 대출 형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세 계약을 회사 명의로 하는 것도 아니어서 '제공'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필요한 만큼 전세 자금을 받아 보증금으로 지불하고, 개인 명의로 전세 계약을 했다. 따라서 계약이 종료되면 보증금을 회수하여 회사에 입금해야 했다. 뭔가 해주다 만 것 같이 찜찜한 직원 복지 정책이었다.


3년 후 나는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났다. 이번에는 살던 원룸을 빼야 했지만 이게 빨리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일단 서울에  올라와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해결이 더 늦어졌다. 3개월이 지나자 회사에서는 급여에서 공제하겠다는 독촉장을 보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던 차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근처 복덕방은 물론이고 몇몇 지인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소문이 그의 귀에까지 들어갔나 보다. 마침 공장 직원 숙소를 구하고 있었다면서 전세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급여 공제라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일 년 사용하고 무사히(?) 정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서울로 나를 찾아왔다. 이혼하고 사업 근거지를 서울로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그를 도와주었다. 그 덕분인지 그는 쉽게 서울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업종을 전환하여 경기도 **시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다. 독신이면서 서구형 외모에 매너가 좋고 골프를 잘 쳐서 특히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좋다. 반면, 산만하고 무뚝뚝한 성격에 뭐든 양다리를 걸친다. 견고하지 못한 현재 삶에 늘 대비해야 하는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베트남에서 귀국한 이후로도 종종 만나서, 늘 그랬듯이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화제는 '나이 듦'이었다. 나의 은퇴 후 라이프 플랜에 대해 적극 공감을 표하며 동참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누구와 어떤 일을 같이 도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나왔다. 앞으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만, 가끔 만나서 막걸리 잔을 나누는 좋은 친구로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가 변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끊었고, 머리 염색을 더는 하지 않는다. 아무 의욕이 없는 백발노인이 되었다. 사람이 욕망을 잃으면 도 닦는 사람 아니면 죽은 사람 아닌가? 그의 '여성 팬'들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추억을 먹고살겠단다. 그 나이가 되면 어쩔 도리 없이 그렇게 변하는 건가? 그럼 나도 곧 그렇게 된다는 말인데, 멍 한 백발노인이라니! 서글프다.


다음 주에 공사 시작해 놓고 연락을 하겠다는 말도 공허하게 들렸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처럼 관계의 종말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인연을 놓아야 하는 순간 말이다. 그렇다 해도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세월이 남겨주는 또 하나의 슬픈 진실인 것을.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심리적으로도 멀어지다 보니 어쩐지 점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돼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그가 독신을 면할 기회가 더는 없을듯한데, 많이 쓸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쁘다 해도, 연락이 뜸해도 좋으니 부디 무탈하기를 바란다.


오늘은 '혼술각'이다. 막걸리 한 병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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