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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Nov 29. 2023

나 홀로 군고변

3박 4일

욕조에서 듣는 용두산엘레지

어차피 여행이라는 것은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을 때 좋은 것이다. 군산, 고군산군도, 변산 코스를 3박 4일 일정으로 잡고 숙소를 예약했다. 서해와 저녁노을을 보고,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올 작정이다. 군고변을 포함한 서해안 자동차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느지막이 10시쯤 출발했다. 어차피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은 상시 정체일 것이고, 출근 시간만 살짝 피하면 된다. 지금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차가 밀리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고 출발한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항상 무엇엔가 쫓기며 살았다. 심지어는 그럴만한 상황이 아닐 때조차 스스로 급했다.


거의 모든 휴게소를 다 들렀다. 고속도로의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휴게소 아닌가. 치즈 스틱도 사 먹고,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도 구경하며, 쉬엄쉬엄을 실천했다. 평일 낮의 한산한 고속도로를 좀 내지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름 달리고 있는 내 차를, 다른 차들은 제한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력으로 추월했다. 모두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그래봐야 지나고 보면 국 그게 그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군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좀 지나서였다. 서두르지 않았음에도 오래 걸렸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예약한 숙소는 군산 IC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숙박 시설 밀집 지역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는데, 전반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다. 신축이라는 후기를 보고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공기청정기와 스타일러가 설치된 장점이 있어, 창문을 열면 옆 모텔 건물이 보이는 불편함을 상쇄해 주었다.

     

원래 운전을 즐겨하는 편이 아닌 데다가 꽤 멀리 왔기 때문에 눈이 뻑뻑한 게 피곤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저녁잠을 희생하고 낮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옆 건물 뷰'라서 딱히 볼 것도 없다. 유명한 관광지를 간다든지, 맛집을 찾아다닌다든지 하는 취향은 아니라서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들고 방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근대화 거리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평일 낮이라서인지 사람도 없고 썰렁했다.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데 막상 사람이 너무 없으니 뭔가 허전하다. 특별할 것은 없는 상가 밀집 지역이었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빈둥대는데 배꼽시계 알람이 울렸다.

     

초저녁임에도 주변은 완전한 먹빛 어둠에 덮여 있었다. 길 건너 해장국집의 커다란 간판만이 어둠을 뚫어낼 듯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 다 모여 있나?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맛집인가 보다. 문득 맞닥뜨리는 행운처럼, 가끔은 찾지 않아도 이렇게 맛집을 만나기도 한다.


가게 사장인듯한 거구의 중년의 남자가 나를 곁눈질하더니 거만한 태도로 혼자냐고 물었다. 보면 모르나? 가뜩이나 혼자 앉기가 눈치 보이는데. 입구 쪽 테이블을 대강 가리키며 그쪽으로 앉으란다. 선지해장국 한 그릇을 시켰다. 그리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맛집이라기보다는 지정학적 위치의 특수성 때문이었던 걸로.


룸서비스 안주를 시켜놓고 집에서 가져온 술을 마시려고 메뉴판을 찾았다. 소파 앞, 둥근 탁자 위에 놓인 호텔 안내 책자에 룸서비스 메뉴판이 꽂혀있었다. 마른안주 세트 12,000원, 오징어 감자튀김 세트 15,000원, 모둠 소시지 18,000원, 프라이드치킨 25,000원... 비싸지 않았다. 다른데 비하면 거의 반값이다. 착하네.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했다.


"네, 프런트입니다."

"지금 룸서비스 주문되나요?"

"네, 말씀하세요."

"마른안주 세트 한 개 보내 주세요."

"죄송하지만, 룸서비스는 2만 원 이상 가능합니다."

"네? 그런... 방금 저녁을 먹고 와서요. 그럼 두 개를 시키든지 아니면 배불러도 2만 원 넘는 걸 시키라는 건가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 전화받으시는 분이 죄송할 일은 아닌 거 같고요. 그럼 마른안주 세트하고 맥주 두 병으로 할게요."


졸지에 혼자서 폭탄주를 말아먹게 생겼다. 호텔에 손님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게 단칼에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씁쓸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 내일은 뭘 하지? 아니, 안돼. 그런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 계획하지 말라고! 음악을 듣자. 이런 분위기라면 드뷔시의 달빛? 아니다, 오늘은 트로트가 좋겠다. 혹시라도 옆 방에서 민원 제기할까 봐 이어폰을 꽂았다.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사 계단에 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꽃 피던 용두산아' 용두산 엘레지를 부르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걸쭉한 음성이 뜨거운 물의 온기를 타고 온몸을 훑으며 지나갔다.


욕조 안 명상(?)이 끝난 후, 폭탄주를 마시면서 TV에서 중계하는 축구 경기를 봤다. 사우디가 우승 후보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꺾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의외의 한 방이 있어서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골키퍼에 막히기도 하고, 강력한 태클에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기회가 오면 골을 넣기도 한다. 그래서 축구도 인생도 두 발로 부단히 뛰어다녀야 한다.    


죽으러 온 거 아니거든요

낯선 곳에서 잠을 푹 자지 못하는 평소와는 달리 그런대로 잘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고군산군도로 들어갈 예정이다. 지나가는 섬마다 압도적인 경치가 상상이 되어 마음이 부푼.


뷔페가 아니라 그냥 쟁반에 소박하게 차려 나오는 백반 같은 조식이었다. 손님은 나 말고 젊은 커플 한 팀이 전부이다. 밥을 먹는 게 즐거운 건지, 아니면 같이 있는 게 즐거운 건지, 서로 먹여주고 받아먹고 난리다. 밤새 뭘 하고 아침에 저러나. 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그걸로 됐다. 배가 아픈 데다가 눈치까지 보이면 억울하니까.


서빙하는 직원을 붙들고 '오늘 날씨가 쾌청한데, 좀 걸을 수 있는 한적한 곳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은파호수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세요.' 했다. 나이스 센스!


은파호수공원은 일산호수공원의 군산 버전이었다. 주차한 다음 안내도를 살펴보니 걸어서 한 바퀴를 돌자면 꽤 걸릴듯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라고 했구나. 자전거 대여소가 바로 입구에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서울의 따릉이 대여소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대여 요금 결제 방법이 핸드폰 소액결제 한 가지이다. 그렇다면 핸드폰 소액 결제 정지한 것을 풀고 다시 소액결제 동의를 해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내키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전거보다는 걷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면 나도 걷자. 대신 반 바퀴만.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다. 막대로 쿡 찌르면 파란 얼음이 쨍그랑 쏟아져 내릴 것 같다. 겨울을 코앞에 둔 깊은 가을, 차가워진 손이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찾는다. 옷을 다 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아직 이별하지 못한 마른 이파리 몇 개가 애처롭게 떨고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잔물결 위로 오리 가족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헤엄치고 있다. 사람들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 빠르게 또는 느리게 무심한 표정으로 길 위를 걷는다.


반바퀴 정도 걸었을까? 두 시간 가까이 지났지만,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아, 맞다. 오늘 고군산군도 가는 날이지. 철길 마을, 월명 공원, 초원사진관, 동국사, 근대 역사박물관, 가볼 곳이야 많겠지만 바로 새만금방조제로 향했다.


새만금방조제의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달리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위대하다. 인간의 기술력이 대단했다. 새만금방조제는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고 한다. 길이는 총연장 33.9km인데, 이는 2위인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1.4km 더 길다고 한다.


중간쯤 넘어가다가 해넘이 휴게소에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바닷바람을 맞았다. 고군산군도가 코 앞이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군도(群島)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섬이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를 들어가 보았다. 그냥 인적이 드문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바닷가에 버스카페가 있어 들어가 볼까 했는데 유독 거기만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그냥 통과했다.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낮은 담장마다 그려져 있는 어촌 풍경 벽화에서 마을을 잘 관리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선유도해수욕장 입구에 높다란 집라인 타워가 눈에 띄었지만 타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주차장 근처 식당에 들러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는데 딱 두 젓가락 먹다가 말았다. 엔****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바다가 가장 잘 보일만 한 이 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잔뜩 움츠린 시퍼런 파도가 햇볕 가득 받은 모래에 부딪혀 얼음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다. 들고 간 태블릿을 열었다. 한 페이지 읽고, 바다 한 번 보고. 좋다. 그래 바로 이거잖아?


아줌마 부대가 쳐들어(?) 왔다. 카페 이 층이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직업, 나이, 남편, 둘째 아들, 엊저녁에 끓인 찌개, 우울증, 관절염 특효약...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분들의 구구절절한 라이프 스토리가 끊임없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았던 감흥을 뒤로한 채 카페를 나왔다.


선유도 해수욕장은 해안선이 길고 완만하며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퍼져 있다. 하늘과 바다가 원래 하나인 것처럼 펼쳐진 수평선이 아름답다. 그렇게 바람 소리, 파도 소리에 젖은 채 한참을 걸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던 중이었다. 저만치 앞쪽으로 그들이 보였다. 부대원들이다. 그들도 카페에서 나와 바닷가로 내려온 것이었다. 나는 그 무리를 피해 좀 더 도로 쪽으로 떨어져 걸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누군가를 소리쳐 부른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오라고 손짓한다. 제발 나는 아니기를 바라며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나는 졸지에 불려 가서 그들의 포토그래퍼가 되었다.


선유도를 나와 장자도를 지나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고군산군도의 끝 섬, 대장도에 도착했다. 문자로 안내받은 대로 대장도마트 앞에 주차하고 마트에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 깨더니 단번에 펜션 손님이냐고 물었다. 기둥에 걸어놓은 화이트보드 '예약 현황판'을 확인했지만, 내 이름은 예약 명단에 없었다. 통화를 했던 사모님이 체크를 해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랑인지 비난인지, 본인은 마트 사장이고 사모님은 펜션 사장인데 자꾸 까먹는다며 화이트보드를 검지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다행히 예약했던  203호가 비어있어서 잔금을 치르고 언덕길을 따라 펜션으로 올라갔다. 건물 옆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계단 바로 앞에 물건을 가득 담은 비닐봉지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어림잡아 7~8개는 족히 넘었다. 마트 사장님께서 봉투 하나를 발로 툭 차며, '누가 이렇게 물건을 갖다 놓았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봉투에 찍힌 다른 마트 로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5평 남짓 크기의 작은 방은 복층 구조였다. 방을 가로질러 가 문을 열고 바깥 베란다에 한 발을 내디디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바다와 섬, 하늘과 구름, 바람과 갈매기, 선착장의 작은 배들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의 대장도는 온통 붉은빛에 물들어 있었다.


이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드르륵하면서 옆 방 베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여러 명의 여자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런데 낯이 익다. 아! 선유도해수욕장, 희로애락을 들어야 했고, 포토그래퍼기 되어야 했던 그 사람들이다. 그럼 1층 계단 입구의 어마어마한 식재료 봉투들도?


원수까지는 아니지만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어쩌겠나. 세상에는 이렇게 피하고 싶은 사람, 원치 않는 상황투성이 인 것을. 지금 고개를 쳐들고 있는 어떤 불길한 예감만은 최소한 틀렸기를 바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경치고 뭐고 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다.


근처를 둘러볼 겸 밖으로 나가다 보니 마트 사장님이 펜션 앞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나를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것저것 캐묻는 게 이상했다. 관심이 좀 과하다 싶었지만, 손님이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다음 날 퇴실할 때 인사차 마트에 들렀을 때서야 그 이유를 일았다. '남자 혼자서 죽으러 온 게 아닐까?’ 걱정했다는 것이다. 아뿔싸! 남자 혼자서 여행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그 섬에서 유명하다는 호떡집에 들러 호떡을 샀다. 별로 내키지 않는 횟집을 제외하고는 문을 연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 물과 라면, 그리고 캔맥주를 샀다. TV에서는 어제처럼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처럼 일본이 독일을 격파하는 이변이 또 일어났다.


밤새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어쩌면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저 다섯 명이 이 순간 누리는 해방감을 누구라서 막겠는가.


모든 이 소생하소서

일출을 보고자 했었으나 잠을 심하게 설친 관계로 눈을 떠 보니 7시가 넘었다. 일출 시각은 7시 15분인데 다행히도(?) 날씨가 흐려 어차피 시간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계단으로만 쭉 오르는 해발 145m의 대장봉에 올랐다. 사진 속에서 많이 본 그 풍경이다. 섬마을 아침 바다를 오롯이 나 혼자 내려다보았다.      


신시도에서 새만금무궁화공원과 가력도를 넘는 바다 위 길을 지나 30번 도로로 이어지는 곳에 변산반도가 있다. 산의 변산인 내변산과 바다의 변산인 외변산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내변산의 내소사로 방향을 잡았다.


엊저녁에 라면 한 개 먹었고, 아침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입구에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서 산채 비빔밥을 주문했다. 먹다 보니 이름만 산채 비빔밥이고 실제는 산채 빠진 비빔밥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다. 배고픈 김에 된장국 두 그릇과 함께 배를 채웠다.     


내소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하였다가 인조 때 다시 지었다고 한다. 내소사의 내소(來蘇)는 다시 소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찰 건물 옆에 '모든 이 소생하소서.'라고 쓰여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나도 다시 소생할 거 같다.

대웅보전 후불벽에는 유명한 ‘백의관세음보살좌상’이 있다.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白衣)를 입은 관세음보살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눈을 보면서 이동하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벽화 속 시선이 따라 움직이는데 이렇게 관음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웅보전 입구에 앉아있는 보살님이 기웃거리는 나를 보더니 혼자 오셨느냐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안내까지 해 주었다. 덕분에 실제로 부처님과 눈이 마주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물론 소원도 빌었다.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모자를 맞춰 쓴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고요했던 산사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절 마당에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고와서 잠시 앉아 있다 가고 싶었지만,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어젯밤의 악몽이 떠올랐다. 내소사의 소생하는 좋은 기운도 받고, 관세음보살님께 소원도 빌었으니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


격포항과 채석강을 들르려던 마음을 접고 변산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근처에 전망이 괜찮은 이 층 카페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바닷가를 산책한 다음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체크인하고 짐을 풀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해변을 따라 횟집이 늘어서 있었다. 좋아, 오늘 저녁은 회를 먹자. 호객하는 가게 몇 개를 지나, 중년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호객을 하지 않는 게 좋아서 들어갔는데, 딱 봐도 사람들이 좋다. 아주머니가 나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어제 대장도 횟집에서 8만 원 부르던 회 한 접시를 4만 원에 포장해서 들어왔다. 보기에도 훨씬 양이 많다. 막걸리도 한 병 샀다. 그런데 들어오고 보니 주문했던 공깃밥이 빠졌다. 어떡하지? 이가 시리고 아파서 회를 밥에 얹어 먹어야 하는데. 귀찮지만, 다시 나갔다. 횟집 사장님께서 그렇지 않아도 가고 나서 빠진 걸 알았다. 가져다 드릴 방법이 없어서 걱정했다며 미안해했다. 밥값을 안 받겠다고 했지만 카운터 위에 놓아 드리고 나왔다. 이분들 장사가 잘되셨으면 좋겠다.


술과 안주가 완벽하게 세팅되었다.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는 회는 꿀맛이었다. 막걸리 한 잔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내일은 눈 뜨자마자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다. 3박 4일간의 군산, 고군산군도, 변산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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