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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Dec 12. 2024

나름 텃밭 농부랍니다

일 년 차 초보 농부 분투기

고구마가 없다


가득 차 있어야 할 바구니가 텅 비었다. 애써 나를 위로하는 아내와 아들 부부도 내심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벌레 먹은 걸 빼고 그나마 쓸만한 것을 골라보니 열개 남짓? 그조차도 크기와 모양이 들쭉날쭉하다.


당초 예상한 수확량은 70~80개 정도였다. 일주일 전, 속에 들어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되는지 감을 잡기 위해서 두 줄기를 뽑아 보았다. 맥주 캔만 한 고구마가 두세 개씩 달려있었다. 이걸 근거로 추측한 것이다.


수확한 고구마는 아내와 내가 먹을 소량을 남기고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이었다. 받았을 때 보기 좋게 하려고 10kg들이 고구마용 종이 상자 몇 개를 따로 주문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아들 내외에게 SOS를 요청했다. 아무래도 혼자 캐기에는 힘이 부칠 것 같았다.


10월 첫 주말, 아내와 아들 부부와 함께 텃밭으로 향했다. 여름이 멀리 떠나갔음에도 여전히 햇빛은 뜨거웠고 날씨는 더웠다. 자외선 차단을 위한 중무장은 물론, 모기와 진드기의 공격에 대비해 기피제를 챙겼다. 여름내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내어주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안된다. 흙투성이가 될 것이므로 작업용 신발과 옷을 따로 준비하도록 했다.


이웃 분들이 지나가면서 '이 집은 가족들이 총출동했네',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네요' 라며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냈다. 아마도 아내와 젊은 아들 부부의 텃밭 출현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새로 구입한 낫으로 줄기를 걷어 내고 멀칭 비닐을 벗겨 낸 다음, 캐는 요령을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 주었다. 사실 나도 너튜브를 보고서 배운 지식이다. 셋이면 충분할 것 같아서 나는 김장 채소를 심은 곳으로 향했다. 제법 자란 배추와 무에 목초액을 뿌리면서 언뜻 바라보니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어째 조용하다. 가끔 탄식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구마밭에 가 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파느라 애를 쓰고 있을 뿐 수확한 고구마가 보이지 않는다. 잘못 캐는 거지 싶어서 직접 해보았으나 결과는 같다.


고구마밭을 전부 헤집었으나 결국 고구마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냉면 집에서 열을 식히는 내내 아내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괜히 쉬는 날 애들 고생만 시켰다고. 당연히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꾸만 냉면 가닥이 고구마 줄기처럼 보였다.


지나치게 웃자란 줄기를 보면서 정작 고구마가 달리지 않을까봐 걱정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테스트로 미리 캐보기까지 했는데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150일을 애써 키운 나의 고구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장 채소로 만회를


고구마를 캐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추와 무를 하나씩 뽑아 보았다. 배추는 보통 사이즈의 1.5 배였고 속이 꽉 들어차 단단했다. 팔뚝만한 무는 굵고 통통했다. 무더위로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춧값이 포기에 만원을 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나 부자가 된 거야?


토마토가 익을 무렵 텃밭에 도둑이 출몰한다고 단톡방이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배추를 뽑아 갔다는 소식이 올라와 나를 바짝 긴장시켰다. 노심초사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움막이라도 짓고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이런 황망한 짓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설마 서리는 절도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런 좋은 결과가 그냥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김장 채소 재배의 난이도가 상급이라고 들었기에 처음부터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우선 밭 만들기부터 시작했다. 석회, 퇴비, 복합비료를 일주일 간격으로 뿌리고 그때마다 삽으로 흙을 깊게 파서 땅을 뒤집어 주었다. 마지막에 붕사와 토양살충제를 넣고 비닐 멀칭을 했다.


봄에 쌈 채소를 심을 때에는 이렇게 밭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아마도 밑이 들지 않은 고구마의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물론 줄기가 무성하다 싶을 때 과감하게 솎아내는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와 좁은 면적에 심다 보니 욕심이 생겨 밀식을 했던 탓도 있었다.


무는 씨앗을 사다가 파종을 했고 배추는 모종을 사다가 이식했다. 좀 많다 싶었지만, 모종을 6개 단위로 판매하는 바람에 12개를 살 수밖에 없었고 버리기 아까워서 다 심었다. 배추는 전부 잘 자랐고 무는 두 차례에 걸쳐 솎아내기를 하여 14개를 남겼다. 구멍마다 씨앗을 4~5개씩 넣었는데 싹은 1~2개씩 올라왔다.


땡볕이 살을 파고드는 뜨거운 날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2~3일 한 번 물을 주었고, 2주 간격으로 추비와 병충해 방제를 했다. 추비는 가격이 좀 비쌌지만 김장 채소 전용이라고 표기된 것을 주문했다. 가급적 농약을 쓰지 않기 위해 천연살충제인 목초액을 중간중간 뿌려주었다. 특히 어린잎일 때 배추 잎 벼룩이 몽땅 뜯어먹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비가 많이 온 다음에는 탄저병이 생겨 식겁하기도 했다.


이렇게 땀을 흘리며 한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다. 배추와 무는 얼면 안 되기 때문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텃밭 사용 기한이 11월 30일까지이므로 11월 20일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필요할 때마다 순차적으로 뽑기로 했다. 총물량은 배추 12포기,  14개였다. 당근은 싹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고 추가로 씨를 넣었음에도 두 뿌리를 뽑는데 그쳤다.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무거워서 옮기는 데 힘이 들었다. 겉잎을 솎아낸 배추를 신문지로 싼 다음 구매한 양파망에 넣고 이를 종이박스에 담았다. 싱싱한 무청을 시래기로 만들고 싶었지만, 마땅히 말릴 곳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시골집 대청마루 끝에 무청을 주렁주렁 매달아 말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막상 택배로 보내려니 중량이 많이 나가 배보다 배꼽이 클 거 같고 우체국에 가기도 번거로워서 직접 배달하거나 다니러 온 집에는 차에 실어 보냈다.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무는 깍두기와 뭇국으로, 배추는 겉절이와 배춧국, 배추쌈 등으로 지인들의 입맛을 돋워 주었다.


고구마로 당한 망신을 한 번에 만회한 느낌이었다. 퇴직하시고 시골에서 진짜 농부를 하는 매형 부부께서 '초보 도시 농부라고 무시했는데 제법'이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음, 이 정도면 텃밭 농부로 데뷔 성공?



도시농업 텃밭과정


같은 분야에서 부모보다 더 유명 인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피는 못 속여 또는 환경은 어쩔 수가 없어. 나는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눈을 뜨면 항상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께서 계셨다. 집 주변에는 농기구와 농작물들이 산재해 있었다. 틈틈이 도와드린 것이 전부였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환경들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퇴직 후, 넘치는 시간을 소비할 아이템으로 꼽은 것 중 하나가 텃밭 농사였다. 돈을 벌 목적이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순한 소일거리 또는 훗날 귀농에 대비한 연습 정도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시작이 늘 그렇듯이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농사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명쾌한 조언은 없었다. '너튜브 보고 따라 해. 대충 하다 보면 돼.'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살펴본 너튜브는 더 문제였다. 물론 단편적인 지식을 참고로 볼 수는 있지만, 너무 많은 잡다한 정보와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레퍼토리가 난무하고 있어 오히려 혼동을 주었다.


대충 하다 보면 된다는 조언과는 달리 나는 뭐든 대충 하지를 못한다. 검색을 거듭한 끝에 고양시에 있는 N대학 평생교육과정을 발견했다. 집에서 약 40분 거리로 만만치 않았다. 30만 원을 내고 도시농업 텃밭과정에 등록하면 텃밭 6평과 월 1회 텃밭 농사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3월 하순에 씨감자를 파종해서 90일~120일 정도의 생육 기간을 거친 다음, 7월 말에서 8월 초 정도에 수확하면 됩니다."

"교수님, 그런데 감자는 언제 심어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방금 얘기했잖아요. 자, 다시 한번. 감자는 언제 심느냐면...."


교수가 감자 재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 올려 입은 배바지와 헐렁한 재킷, 누가 봐도 시골 노인이 한껏 멋을 낸 모양이다. 하지만 '속 터지는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이끌어 가는 스킬은 능수능란하고 요약 설명 위주의 강의 또한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짐작케 했다.


텃밭에는 00번 000이라고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이 꽂혀있었다. 팻말의 일련번호는 60번까지 이어져 있었다. 강의실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구성은 70~80%가 여성이었다. 드문드문 젊은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50~60대였다.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나처럼 혼자 온 남성은 거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퇴직하고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은 어디를 가나 대충 이런 분위기이다.


자, 이제 땅을 받았으니 뭘 심어야 한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쌈 채소를 선택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상추, 치커리, 깻잎 그리고 아내가 콕 짚어 지정한 방울토마토가 내가 재배할 생애 첫 작물로 결정되었다.



상추 지옥에 빠지다


쌈 채소를 심을 때는 가급적 비닐 멀칭을 하는 것이 좋다. 물을 주거나 비가 오고 나면 흙이 튀어 이를 씻는데 꽤 많은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나는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까짓 거 무슨 큰 차이가 있겠어' 하는 심정으로 하지 않았고 결국 두고두고 후회했다.


모종을 사는데 판매하는 최소 단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당초 심으려는 양보다 많아졌다. 특히 상추는 적상추, 청상추와 함께 종묘상회 할머니가 적극 추천하는 아삭이 상추까지 종류별로 심었다. 자주 먹는 채소이고 마트에서 돈 주고 사던 생각이 나서 '많이 먹으면 되지'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자랐다. 금방 억새 지기 때문에 갈 때마다 뜯어오다 보니 상추를 비롯한 쌈 채소들이 냉장고에 가득 찼다. 두 식구 밖에 없는 우리 집은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드물다. 처음 한두 번은 일부러 밥을 해서 쌈채소를 맛있게 먹었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었고 그것들이 자라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언제든지 쉽게 살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하자면 얼마 되지도 않을 쌈 채소를, 느닷없이 이웃에 나누어 주는 것도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내 마음과는 달리 부담을 줄 수도 있고 그쪽에서 내심 원치 않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몇몇 지인 집에 주말을 이용한 배달 서비스까지 했지만, 양은 줄지 않았다.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무리해서 먹다 보니 나중에는 상추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추 지옥이 이런 거였다.


장마철이 다가왔다. 이제 쌈 채소들은 꽃대가 올라와 잎이 억세지고 쓴맛이 나서 더는 먹지 못한다. 부득이 뽑아내야 한다. 매번 잎을 딸 때마다 뭔가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하물며 뽑아내자니 내가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 미안했다.


쌈 채소를 모두 뽑고 나니 순식간에 밭이 휑해졌다. 김장 채소 전까지 뭐라도 심을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공심채를 알게 되었다. 동남아 여행을 가면 꼭 주문하게 되는 모닝글로리 말이다. 이놈은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딱 적합한 작물이라고 한다. 이게 국내에서도 될까 하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씨앗을 사다가 뿌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며칠 지나자 싹이 고개를 내밀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왔다. 줄기 속이 비었다고 해서 공심채라고 하는데, 잎 모양도 특이하게 생겼다. 이웃들이 지나가다가 궁금했는지 뭐냐고 묻기도 했다. 게다가 수확도, 요리도 너무 간단하다.


두 마디 정도를 남기고 가위로 툭툭 잘라낸 다음, 물에 씻어서 다시 손가락 크기만 하게 자른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굵은 줄기 부분부터 투하해서 휘리릭, 잎 부분을 넣고 휘리릭, 참기름과 굴 소스 약간 넣고 휘리릭, 접시에 담아 참깨 톡톡 하면 끝이다. 먹어보니 맛이 있다. 동남아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다.



벌레들도 좋아한다고?


방울토마토는 벌레와의 전쟁이었다. 모종을 심고 나서 30cm 정도 자라면 지지대를 해 주어야 한다. 처음에 45cm 지지대를 설치해 주었는데 이 녀석은 금세 이 높이를 훌쩍 넘어 버렸다. 2m짜리 지지대를 구입하여 다시 설치해 주어야 했다.


아랫부분부터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특유의 강한 향을 뿜는데 이 냄새가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고 한다.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달린 모양이 어찌나 신기하든지! 계속해서 뚫고 나오는 곁순을 솎아내면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밑동의 마른 잎을 제거해 주었다.  


단톡방에서 어떤 이웃이 토마토를 심었는데 빨갛게 익기 시작하면 누군가 영락없이 따간다고 한탄했다. 절도 방지 대책을 요청하였으나 학교 측에서는 CCTV를 설치할 수는 없다며, '정성껏 기른 소중한 작물입니다. 남의 작물에 손대지 맙시다.'라는 경고문을 두세 군데 세워 놓는 걸로 갈음했다.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체 면적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던 내 텃밭은 다행히 손을 타지 않았다. 덕분에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방울토마토를 몇 번 따다가 먹었다.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단맛이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담담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방울토마토가 변하기 시작했다. 꽃 피는 위치가 위로 올라오면서 열매의 사이즈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추비를 해주었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크기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벌레의 출현이었다. 작은 나방 같은 것이 보이더니 급기야 열매에 검은 구멍이 생기고 꿈틀대는 작은 벌레가 들어가 토마토를 차지했다.


교수님께서 용법에 따른 적당한 농약은 괜찮다고 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 일일이 벌레를 잡고 벌레 먹은 열매를 제거했다. 결국, 방울토마토는 그놈들과 사투를 벌이다 끝이 났다. 벌레를 보면 기겁하는 편이라서 꽤 불쾌한 시간이었다. 사람한테 달고 맛있는 것은 벌레도 좋아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텃밭은 애정의 화수분


퇴직하고 나면 사회적 관계의 종말이 급속도로 다가온다(필자의 브런치 글 '무덤 앞에 막걸리 한 잔?'). 어디 그뿐인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현직일 때는 넘치던 친구들 또한 경제적인 이유와 개성의 고착화로 범위가 축소되고 소원해진다. 그러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끔은 외롭다.


그렇다고 새로 사람을 사귀거나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용이치 않다. 여성들은 젖은 눈처럼 쉽게 뭉치지만 남성들은 모래알이다. 둘만 모여도 서열부터 정하려는 지배 본능 때문에 쉽게 부딪친다. 세상이 험해지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하고 잘못 엮이게 되면 삶이 고단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공통분모이다. 비슷한 취미나 목표 같은 것을 중심으로 취향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비용이 두 배로 오르는 바람에 포기했지만 제주 올레길 완주 캠프나 텃밭 농사 같은 것이다. 내가 텃밭 농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달랐다. 60명 가까이 들어와 있는 단톡방에서는 조금만 다른 얘기가 나와도 어떤 근엄하신 분이 나서서 '사적인 내용의 글은 삼가 달라'라고 정색을 했다. 그 바람에 늘 썰렁했고 급기야 학교 관계자의 공지 사항 전달 채널로 전락하였다. 이 단톡방은 당초 '이웃끼리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었다.


강의실에서는 모두 공부에 집중했고 수업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텃밭에 나가면 각자 일을 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바로 오른쪽 이웃은 중년의 부부였는데 왠지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 들어 말을 걸어볼 틈이 없었다. 왼쪽 이웃은 할머니와 딸이었는데 농작물에 관한 할머니의 질문 공세에 내 어설픈 지식을 말씀드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텃밭에 갈 때마다 자주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이 분은 자신의 SUV를 좁은 농로에 바짝 대놓고 음악을 틀어 놓는다. 음료와 간식거리를 그늘막에 차려 놓고 먹기도 하고, 가끔은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본다. 말을 걸어볼까? 고독을 즐기는 타입인가?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함부로 말을 걸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붙임성이 있거나 사교적이지 못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의례적인 인사 외에는 그냥 내 할 일만 하고 다녔다. 나의 넘치는 관심과 애정을 내가 심고 기르는 작물들에게 듬뿍 쏟아주었다.


"자기야, 나를 위해서 이것도 좀 뜯어 주세용."

"응, 알았어요. 근데 자기 모기 물리지 않게 조심해요."

"알겠어요. 자기는 힘들지 않아용?"

"괜찮아요."

"자기야, 우리 언제 집에 가용?"

"힘들어요? 금방 끝나니까 이것만 하고 갈 거예요."


멀지 않은 이웃 텃밭에서 사랑가가 울려 퍼진다. 제목은 '자기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애교가 철철 넘칠 수가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다. 이들 커플은 서로에게, 나는 내가 심은 작물과 사랑에 빠져있는 이곳 텃밭은 애정의 화수분이다.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어깨동무를 하고, 남쪽에서 온 바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친다. 형형의 색을 머금고 높고 낮은 잎새들이 살랑살랑 넘실댄다. 모든 게 고요하고 평화롭다. 아름다운 날이다.



야심 찬 2년 차 계획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 서둘러 김장채소 수확을 마무리하고 주변 정리를 했다. 이로써 일 년 차 초보 텃밭 농부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났다.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확신이 있을 때까지 쉽게 움직이지 않는 성격에도 과감하게 시작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퇴직 후 많아진 시간의 일부를 재밌게 보낼 수 있었다. 작물들의 성장과 변화를 보며 느끼는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은 문득문득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반면 뭐든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하고 예측 가능성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성격 때문에 일종의 스트레스가 생겼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또한, 각종 모종, 씨앗, 비료, 농기구 구매 비용이 생각보다 쏠쏠히 들어간다. 굳이 경제원칙을 들이댄다면 비효율적이며 적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텃밭 농사를 또 할 것이다. 다만, 올해는 강의 듣는 목적이 있었으므로 이곳을 선택했지만, 내년에는 좀 더 접근성이 용이한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봐둔 곳이 있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던 북한산뷰가 훌륭한 카페 진입로에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그런 곳은 학교와는 달리 '진정한 텃밭 고수'들이 하는 곳이어서 삭막하며, 주인장이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딱딱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때 나도 이제 2년 차인데.


일찌감치 밭 만들기부터 시작하고 가급적 비닐 멀칭을 한다. 쌈 채소는 소량 다품종으로 심되, 시차를 두어 길게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방울토마토는 간격을 충분히 하여 두 그루만 심고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최소한의 농약을 쓴다. 옥수수는 차지하는 면적에 비해 수확하는 개수가 적기 때문에 심지 않는다. 고구마 대신 감자를 조금 심는다. 당근은 씨를 뿌릴 때 흙을 살살 덮고 충분한 생육 기간을 준다. 장마철 공심채를, 김장 채소는 올해처럼 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는 모종이나 씨앗, 비료 같은 것을 공동구매하여 나누고, 만나면 도란도란 사는 얘기도 하면서, 소소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텃밭 이웃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수확한 작물을 부담 없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면 더 좋고.


돌이켜보면, 처음 해보는 밭농사라서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나도 나름 텃밭 농부가 되었다. 내년에는 2년 차 도시 농부에 걸맞게 좀 더 노련해지기로 하자. 내년 시즌의 개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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