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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Dec 29. 2021

버블티 컵, 제대로 버려봤습니다.

잘 버리면, 재활용이 되겠죠?

 버블티를 처음 먹은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두꺼운 빨대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먹어도 되는 게 맞나 싶게 생긴, 검정색 고무 공 같은 걸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씹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버블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버블티는 한 달에 1~2번 정도 마신다면, 커피는 일주일에 3~4번은 사서 마시는 것 같습니다. 자주 마시다 보니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담아 마시는 데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스테인레스 빨대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버블티는 텀블러에 사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텀블러는 입을 대고 마시는 방식이다 보니 버블티를 텀블러에 담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겠지요.

찾아보니 버블티 전용 스테인레스 빨대나 유리 빨대도 많이 팔고 있었습니다.

 

 일단 마시고 남은 컵을 잘 버리기로 결심하고 버블티를 샀습니다. ‘버블티 컵’을 잘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검색을 해봅니다. 검색창에 ‘~ 버리는 법’을 입력해 찾을 수도 있지만, ‘쓰레기백과사전(https://blisgo.com/)’을 이용하면 등록되어 있는 쓰레기들에 한해서 – 미등록 쓰레기는 등록 요청을 할 수 있으며, 사이트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분리배출 규정에 맞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블티 컵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분리배출 방법을 모르는 경우에는 다음 4단계를 따릅니다.


1. 비운다. 2. 헹군다. 3. 재질별로 분류한다. 4. 섞지 않는다.


이 4단계는 간단하지만 아주 강력한, ‘재활용 4대 원칙’입니다. 환경부에서 배포한 ‘재활용품 배출 가이드’에서 기본이 되는 원리입니다. 이 4단계를 따라 버블티 컵을 잘 버려보았습니다.


1. 비운다. – 컵 안에 있던 버블티를 다 마시고, 컵 위에 붙어 있는 비닐을 일부 뜯어서 남은 얼음은 싱크대에 버려주었습니다.

2. 헹군다. – 컵 안쪽에 묻어 있는 음료를 물로 헹궈주었습니다.

3. 분리한다. - 컵의 윗면에 붙은 비닐이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뜯어 주었습니다. 비닐과 컵이 붙어 있는 부분은 잘 떨어지지 않아서 가위로 잘라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잘 분리된 쓰레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재질별로 잘 분리한 결과입니다. 

4. 섞지 않는다. - 이제는 버릴 차례입니다. 비닐과 컵이 붙어 있는 부분은 두 가지 이상의 재질이 붙어 있으므로 여지없이 일반 쓰레기입니다. ‘빨대는 일반 쓰레기다‘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어 빨대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컵과 비닐은 재활용 쓰레기로 버립니다. 주택가에 살고 있어 재질별로 분류하진 않았습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짜에 맞춰 집 앞에 내놓으면 제 역할은 끝입니다. 잠시 기다리면 청소노동자께서 쓰레기를 차에 싣고 갈 것입니다. 일반 쓰레기는 적절히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재활용 시설에 도착한 컵과 비닐은 녹여서 새로운 컵과 비닐이 되겠죠? 해피 엔딩!


 이렇게만 되어도 참 좋을 텐데, 현실은 해피 엔딩이 아닙니다. 운이 안 좋으면, 제가 버린 쓰레기는 전부 소각, 매립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미세 플라스틱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분명히 ‘잘’ 버렸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우선 음료 컵은 플라스틱 중 하나인 폴리프로필렌(PP)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PP는 투명하고, 내열성이 좋고, 열을 가해도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의료용으로도 쓰이는 안전한 플라스틱입니다.[1] 하지만 모든 음료 컵이 PP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PET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PS로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재질이 투명하고, 컵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재활용 단계에서 분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재활용할 쓰레기를 수작업으로 선별합니다. 방대한 양의 쓰레기가 컨베이어 벨트로 쏟아지면 각자 맡은 재질의 쓰레기를 집어서 모으는 방식입니다. 

2021년 2월 16일에 찍은 서울 송파구 장지동 송파자원순환공원의 모습 [2]

 무게나 쓰레기 종류를 보고 재질을 구분할 수 있는 베테랑이 아닌 이상 음료 컵 바닥에 쓰인 재질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매장에서 단일 재질로 대량 버리면 쉽게 재활용할 수 있지만, 가정에서 재질 구분 없이 버린 음료 컵은 재활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컵 윗면에 붙어 있던 비닐은 어떨까요. 일단 분리배출 표시가 없어 재질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실링 필름’을 검색해보니 PET, PP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지고 있어 재질을 그대로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비닐의 크기가 크지 않으면 선별 과정에서 분류되지 않고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컵에서 비닐을 뗄 때 최대한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했으나, 비닐이 돌돌 말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가 된 것을 보니 재활용은 어렵겠다 싶습니다.

펠렛 형태의 폐기물 고형 연료(Solid Refuse Fuel)

 그래도 재질을 알 수 없는 폐비닐이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태우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소각과 다른 점은 태우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분류 과정을 거친 폐비닐과 플라스틱만 모은 뒤 뭉친다는 점입니다. 플라스틱과 비닐 모두 석유를 가공해서 만들기 때문에 태우면 많은 열이 발생하는데, 그냥 태우기보다 잘게 분쇄하거나 뭉치면 더 잘 타게 만들 수 있고 이렇게 만든 연료를 폐기물 고형 연료(Solid Refuse Fuel, 이하 SRF)라고 합니다. SRF를 태우면 일반 소각장에서 다양한 재질이 섞인 폐기물을 태우는 것에 비해 열 발생 효율이 높습니다. 하지만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된다는 것과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을 필터링하는 후처리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일하며, 무엇보다 선별장에서 비닐이 잘 선별되어 SRF로 가공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지금까지 버블티를 사서 마신 후, 다 마신 컵을 잘 씻어서, 재질별로 잘 분리한 후, 분리배출 가이드를 따라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나눠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배출한 쓰레기가 수거된 후 선별장을 거쳐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재활용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쓰레기는, 놀랍게도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실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다음 번에 버블티를 사러 갈 때는 텀블러를 챙겨야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출처

[1] GS칼텍스 미디어허브 https://gscaltexmediahub.com/energy/energylife-product-polypropylene/

[2] [포토오늘] 코로나 19로 더욱 바빠진 재활용 선별장 https://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174

[3] 미운오리새끼 취급받는 고형연료(SRF) - 금산군 추부면 사례 https://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599921698172 



베일리 Bailey

사람을 위해 환경을 공부하고 있는 공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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